낮술 따라 봄날도 간다

고래가 노는 세상

by 구일권

에미 에비도 못 알아본다는 낮술이지만 이번 코로나로 오랜 시간을 보내는 동안 경험한 낮술과 혼술이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낮에 취해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좀 이상했는데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일상인 것처럼 주변 사람들도 전혀 개의치 않더라는 내 생각이다. 와카코와 술이라는 일본 드라마를 가끔 보는데 술꾼인 여주인공처럼 술은 저녁에 마시는 게 술맛도 좋고 건강상으로도 좋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세월이 말해주듯이 이젠 낮술에 진심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동네에서 마신다면 모르겠지만 먼 곳에서 늦은 밤 까지 마신 후 귀갓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그야말로 객사할 수도 있다는 게 노인이 된 나의 생각이다. 내 주위에는 늘 술을 좋아하는 선, 후배들로 늘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뤘는데 전부 나이가 들면서 건강상 문제로 한 사람 한 사람 연락이 뜸해져 가는 동시에 모임도 줄어 가는 걸 보며 술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에는 공감하며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말이지만 술에 대한 장점 또한 무궁무진하다는 점 도 잘 알고 있기에 이제 술을 끊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건 각자가 알아서 판단해야 할 일이다.그러나 술에 대한 DNA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는 게 확실하다고 단정 할 수 있는 게 내 동생 들은 물론 사촌동생들까지 술에 대한 일가견이 있는데 그건 다 부모님들이 물려준 자산이라는 생각 때문이다.하여간 전에는 회사 동료가 출장 때 사온 죠니워커 레드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는데 이젠 스카치 30년 산이나 고급 몰트 위스키만 찾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 참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만 남는다. 학교 다닐 때 양희은이 통기 타치며 노래하던 명동 OB 캐빈에서 타대학 여학생들과 단체 미팅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 마신 마주앙이라는 화이트 와인에 취해 길거리 가로수를 붙들고 지구가 돌고 있는 겁나는 경험을 한 후 수십 년간 그 술을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전에 홍콩 가는 비행기에서 주는 와인을 마시고는 맛이 괜찮다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나를 겁주었던 마주앙이라는 걸 알았지만 세월도 많이 흘렀으니 그만 옛날 기억을 지우고 언제 한번 집에서 한잔 마셔볼 생각이다. 평소에 내 성격이 까칠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지만 술을 마실 땐 누구라도 술주정만큼은 용납 못하는 나였기에 그런 징후가 보이는 친구들은 단칼에 정리하거나 한번 정도는 갱생의 기회를 주기도 했다. 술은 잘못하는데도 입담으로 술자리를 즐겁게 해주는 사람이나 마시면 마실수록 부처님처럼 온화한 미소로 조용히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경청하며 호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술도 기분 좋게 취하는데 상대에게 시비 걸거나 게거품을 물으며 혼자 주절 거리는 사람과 같이 술을 마신 날 은 엄청 피곤해지고 술도 빨리 취하기 마련이었기에 그런 사람들과의 술자리는 한 번으로 족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과욕 때문인지 세상에 술의 종류는 넘쳐나고 숙취해소제까지 덩달아 묻어 다니며 활개를 치고 있는 데다 알코올 중독 치료에 관한 광고까지 보이니 참 아이러니한 세상인 거 같다. 술로 먼저 떠난 친구가 있었는데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많았고 외국 항공사 서울 지점장 등을 하며 남들이 부러워하는 생활을 했지만 일주일에 적어도 4~5일은 술을 마시며 2차는 룸살롱이 기본 코스여서 몇몇 강남 룸살롱의 VIP로 대접받으며 잘 지냈는데 친구 회사에 투자한 게 잘못되어 모든 일들이 꼬이기 시작한 데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알코올 중독 치료까지 받게 되어 결국 50대 이른 나이에 그야말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오래전 이혼한 부인과 자식들은 미국에 살기에 연락이 닿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평소 그렇게 주위에 들끓던 사람들도 온 데 간데없으니 그 친구 장례식은 쓸쓸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그 친구의 돈이나 지위 때문에 따르던 사람들이었기에 죽은 정승집 개보다도 못하다는 정승의 마지막 장례식 모습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난 I don't care 지금도 술과 멀어질 생각은 전혀 없고 술도 잘 마시면 약이고 과하면 독이 된다는 말은 명심하고 지낸다. 요즘은 내가 책을 냈다고 여기저기서 축하주를 마시는 바람에 이게 밤인지 낮인지 비몽사몽 한 열흘을 그렇게 보냈나 보다. 하여간 술도 술이지만 안주를 중요시 여기는 나는 황태구이는 물론이고 밑반찬 까지 나를 흡족하게 만드는 신포시장 근처 맛고을 이라는 집을 들리려 피곤함을 무릅쓰고 인천 까지 달려간다. 늘 오후 2~3시경부터 시작되는 낮술인데 술 마시고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궁둥이가 배길 정도로 길이 참 멀다는 생각은 늘 하면서도 좋은 친구들과 어울릴 생각에 다시 찾게 되는 仁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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