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어둠이 머무르고 있는 겨울날 이른 새벽 공항버스 정류장 앞, 일용직 노동자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잔뜩 웅크린 표정들로 내 앞을 지나간다. 갑자기 만난 상황에 나까지 휩쓸려 갈듯 몸까지 사리며 이래서 나는 새벽이 싫어 라고 혼잣말을 되뇌었다. 공항 가는 버스 속에서도 어지럽게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내가 정작 우울해진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뭔지 모를 그저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뿐. 비행기가 이륙 후 안전등이 켜지고 그저 그런 와인 두 잔을 거푸 들이켜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래 이런저런 각자 다른 인생이 있는 건데 라며 그들의 모습을 지우려 눈을 감았다. 오래전 IMF 당시 나 또한 앞길이 어떻게 펼쳐질지도 잘 모르는 긴장된 마음으로 미국행 비행기에 오를 땐 휴가가 끝나고 부대로 돌아가던 그때 무거운 발걸음처럼 아까 보았던 그들 보다도 더비장한 각오로 돈을 벌기 위해 떠났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이 뭐 이런가 하는 푸념도 해봤지만 나는 줄 이 끊긴 연처럼 바람에 나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도로에 날리는 신문지처럼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을 전전하다 우연하게 나의 이상에 맞는 도시 싼타페에 일자리를 구하게 되었다.그곳 KONAMI라는 일식당에서 하루 12시간 일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보람 있었고 재미있는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던 일들 중 내가 싫어하는 일은 추운 겨울날 엄청 큰 치킨 데리야키용 냉동 닭다리 껍질 벗기는 것과 연어 해체 후 살 속에 박힌 가시 뽑는 일들이었다. 그래서 그 일에 질렸던 나는 지금까지도 닭과 연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아침에 일어나려면 허리부터 모든 관절에서 나오는 합창 소리와 함께 손가락 마디마디를 펴주는 신음소리와 함께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허지만 저녁시간을 마무리할 즈음 마시는 일본 사케나 와인은 나의 피로를 풀어주는 생명수였고 매주 금요일 늦은 밤에 열리는 직원들과 지인들의 파티는 나를 히피 인양 착각하게 만들었다. 인구도 적은 도시에 멕시칸 들이 팔러 다니는 대마초는 흔해 빠져 갑작스러운 경찰 단속은 수시로 있었고 경찰에 손이 묶인 채 바다에 엎드려 있는 장면들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마 때문에 걸려도 처벌이 약한지 그런 친구들은 늘 주위에 있었고 우리 직원 중에도 아침부터 실실 웃고 다니는 애는 분명 대마초를 피운 듯 보였다. 눈 덮인 산들을 바라보며 두터운 옛날 커피잔에 담긴 진한 커피와 약간 쓴맛의 브라우니 한 조각, 돌아보면 행복했던 한순간이었다. 어쩌면 인연은 술 한잔 할래요부터 시작된다는 주류 광고의 글이 어울렸던 싼타페를 뒤로 하고 나는 지금 원래의 자리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