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마누라가 고양이처럼 신경질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아예 대놓고 하이에나 같이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겁주기 시작했다. 그것도 아주 오래전 일들을 끄집어내면서 시비를 걸어오고 있는 거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게 얼마 전의 일도 잘 기억 못 하면서 수십 년 전의 일, 그것도 안 좋았던 일들만을 세세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했다. 냉면 가개 앞에서 성질부린 일은 단골 메뉴이고 일본 갔을 때 미국 갔을 때 어쨌다는 등 옛날일을 끄집어내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럴 때면 늙은 염소 같은 모습으로 나는 바삐 그 자리를 피해 버리는 게 최선 인듯했고 또 같이 술이라도 한잔 할 때면 언제 또 지난 일로 시비를 걸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긴장한 탓인지 술도 밖에서 마실 때보다 빨리 취해버렸다. 어디서 들은 건 있어서 객지벗 10년이면 친구 라며 말을 놓고 지낸 지도 이미 오래되었고 호탕한 웃음과 하품은 물론 방귀까지 아무 때고 스스럼없이 갈겨 대는 걸 보면 방송에서 본 남성 호르몬의 과다분비로 인한 현상 바로 그거 같았다. 시골 장터에서 뒷짐 진 영감이 이빨 쑤시게 입에 물고 거들먹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마누라에게서 비춰지지만 비아냥 거릴 수도 없는 게 지금 나의 현실이니 마른 양말이나 뒤집고 청소등 자질구래한 일들과 식사준비등을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야말로 이 집안의 노비 같은 처지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는 생각 속에 살고 있다. 모처럼 여행 이 라도 떠날라치면 힘든 일은 모두 내 차지라 여행의 참맛을 느껴본지도 오래됐기에 나는 늘 혼자만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 그래도 여행 중 같이 한잔 할 때만큼은 젊은 시절의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잠시 주종 같은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곧 현실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마냥 분위기에 취해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제 아 옛날이여를 소리치면 뭐 하겠나 봄날은 바람 따라가고 없으니 말이다. 이순 (耳順) 고희(古稀) 어디다 다 팔아먹고이제 희수(喜壽)를 앞두고 있는 나, 이제는 누가 먼저 갈지도 모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이젠 마누라의 폭정도 참고 견딜만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는 그야말로 가스라이팅 당한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많아지는 이른 새벽 음악을 들으며 모아놓은 글들을 정리하는 이 시간이야말로 나로서는 그나마 자유롭고 행복한 시간이 아닌가 싶다. 요즈음 부쩍 늘어난 친구들이나 그 부인의 부고소식을 듣고 나면 나도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그동안 쌓인 미운 정, 고은정 때문이라도 남은 인생 불평 없이 지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마누라가 나보다 먼저 세상을 뜬다는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 그래도 지지고 볶던 47년의 세월이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 내리는 겨울밤 완행열차 차창가에 기대어 술 한잔 기울이며 늘 꿈꾸던 고향을 찾아 떠날 때가 되면 마누라에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 속에 이번생은 이렇게 막을 내리려 한다. 며칠 후 내 생일이라고 전야제까지 생각하는 마누라를 보면 미운 우리 새끼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음생에도 다시 부부로 살고 싶냐고 누가 묻는다면 다음 생에는 스쳐 지나가지도 말자는 말을 늘 주고받은 터라 그건 오랜 시간 고민 해봐야 할 것 같다는 답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