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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Sep 30. 2023

흐릿해지는 그리움

고래가 사는 세상

어느 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형 이번 차례 지내요? 하고 묻길래  이젠 힘들어서 떡 하고 과일에 토란국이나 상에 올리고 간단하게 지내려고 그런다고 그랬더니 그러면 부모님 제사나 차례를 자기가 다니는 절에서 지내는 게 어떻겠냐고 그러기에 동생말이 고마운 얘기 이긴 한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세종시에 살고 있는 동생은 늘 현충원에 계신 부모님 산소를 수시로 찾고 있고 독실한 불교 신자인 동생 부부가 다니는 신원사라는 사찰에서 가족들을 위해 불공을 들인다 걸 알고 있기에 차라리 그게 낫겠다는 생각에 그럼 그렇게 하자라고 말하고 나니 짐을 덜은 것 같은 생각에 마음은 편안해졌다. 일 년에 두세 번 정도는 산소를 찾아가지만 대전 현충원 까지 고속버스로 왕복 4~5시간, 이젠 그것도 점점 힘들어지는 게 사실이라 산소의 꽃을 바꾸고 돌보는 일등 대부분을 동생이 알아서 하고 있으니 고마울 따름이다. 동생도 60대 중반이긴 하지만 나보다는 활동적인 데다 부모님에 대한 생각이 남다르기에 그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이북에서 내려오셨기에 남들처럼 선산이 있다거나 많은 가족들이나 모이는 일이 별로 없기에 남들처럼 애틋한 그리운 정이 식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들도 그렇고 나 또한 아이들 대부분이 해외에 거주하기에 추석이라 해도 영상통화 한번 하는 정도이니 명절이라 해도 딱히 복잡한 즐거움도 느껴본 게 오래전 일이 돼버렸다. 그래도 추석이라고 말끔히 정돈된 산소 주변을 둘러보고 나니 마음은 개운해졌다. 그러면서도 70 이 넘은 내가 이렇게 부모님을 찾아볼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지 생각해 보면 우리 세대 까지라도 부모님의 그리움을 놓치지 않고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터미널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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