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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일권 Oct 23. 2023

하얀 나비

고래가 사는 세상

예보에도 없었던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른 새벽 나는 불을 환희 밝힌 서초동 추모공원 수골실 앞에 서있었다. 잠시 후 고글을 쓴 그곳 직원이 수북한 뼛조각 보여주는 것도 잠시 수분만에 하얀 가루가 되어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들이라 모두 믿기지 않는 듯 주위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울음을 삼키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든 상황은 얼마 전 심장이식수술을 받은 바깥사돈을 먼 곳으로 보내드리는 과정이었다. 곧 회복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올 줄로만 알았는데 갑자기 뇌출혈이 일어나 뇌사상태라는 소식을 며느리로부터 들었고 하루 이틀을 넘기기 힘들 거라고 했다. 홍콩에 살고 있는 며느리는 급하게 연락을 받고 귀국한 거 같았는데 전날밤 꿈에 제비 떼들이 방안 천장에서 날아다니는 꿈 꾸었기에 늘 손주들 태몽꿈을 꾸었던 나는 혹시 셋째 가졌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지금 서울에 있다는 며느리 얘기에 친정아버지의 상태가 급박함을 알 수 있었고 결국 이틀 후에 운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꿈속의 제비들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나마 발인 전날에  아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귀국하여 딸하나뿐인 사돈네 상주 역할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고 마음의 위안을 느낄 수 있었다. 평소 책을 아주 좋아하신 사돈은 나와는 차원이 다른  다방면에 식견이 높은 분이었고 바둑도 아마 고단자로 선비 같은 느낌의 조용한 분이었는데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도 심심하실까 봐 내가 보내드린 글에 대한 평도 해주셨고 꼭 회복되어 손주들 만나러 같이 홍콩 가자는 얘기도 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가시는 걸 보게 되다니 안타까운 마음만 가득하다. 언젠가 내게 애이불비하는 마음으로 사신다던 사돈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셔서 좋아하시던 책과 함께 편안하게 지내시길 빌었다. 나와 사돈관계를 맺은 지 불과 10여 년, 나보다 나이도 적은데 좀 더 오래 사셔서 술친구도 해주시고 그러시지 그러지 않아도 친구들이 하나둘 떠나는 마당에 사돈까지 이렇게 급히 가시니 가슴이  허전하고 인생이 너무 허망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기야 나도 그리 오래 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하니 사는데 까진 술 한잔과 함께 남은 버킷 리스트 한 개더 이룰 수 있기를 꿈꿔 보려  한다. 어제 모처럼 만난 아들과의 과음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른 새벽  시간에 즐겨 듣던 위스키 블루스나 태국 노래가 오늘은 귀에 담기지 않는 걸 보니 머릿속이 다른 생각으로 꽉 차 있는 듯 늘 읊조리던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의미를 또 한 번 되뇌어 본다. 그러고 보면 모든 게 의미 없는 듯 지내는 요즈음 나도 곧 똑같은 절차를 밟게 될 텐데 그런 건 두렵지 않지만 앞으로 남은 사람들의 장례를 아들과 며느리 둘이서만 치러야 할 앞날이 걱정스러울 뿐이며 오랜 시간 아픈 몸으로 고생 많으신 사돈에게 가시는 길에 너무 서러워 마시고 하얀 나비가 되어 가족들을 만나러 오시라는 마음의 편지를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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