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드리는 마지막 편지
고래가 사는 세상
당신은 무슨 마음으로 자기만의 세상을 사셨나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느낀 적은 있으셨나요. 군인 이셨을 때나 제대하신 후나 마찬가지로 몇 달 만에 한 번씩 집을 찾으시면서도 늘 당당했던 당신은 도대체 무슨 뱃장으로 거리낌 없이 집에 오셨을까요.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번 들어보지도 못하고 아버지의 폭력이 두려워 늘 피해만 다녔던 아들에 대한 애정은 조금이라도 가지고 계셨나요. 돌아가실 때 가 되니 너 군대 가는 거는 보고 죽어야 하는데 그 한마디가 그래도 나에게 조금의 위안이 되긴 했습니다. 거보세요 늘 아버지 곁에 있던 많은 여자들 아버지가 아프니 모두 떠났잖아요. 왜 그런 걸 미처 깨닫지 못하셨나 모르겠어요. 50도 채 안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셨으니 모든 걸 알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였는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던 가족을 내팽개친 죗값이라 생각하세요.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들어본 적도 없고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세뱃돈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 아버지에 대한 안 좋은 기억마저 가지고 있기엔 힘들어지는 나이여 선지 그 기억이 점점 흐릿해 지길 바랄 뿐입니다. 지난날 아버지와의 좋은 추억 같은 게 전혀 생각나지 않는 걸 보면 아버지에게 가족은 그저 귀찮은 존재였던 것 같습니다. 오래전 아버지를 용서해 드릴 테니 그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시라고 말로는 그랬지만 내 마음속에 조금의 앙금은 지금 까지도 남아 있었나 봅니다. 고분고분했던 어머니 또한 아버지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거는 아시지요. 가슴 아픈 과거의 일들을 그냥 묻어버리기에는 그때 받은 상처의 멍자국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군요. 내가 너무 이기적이고 옹졸하다 생각은 마세요. 어린 시절 받은 아픔이기에 더욱 선명 한지도 모르니까요. 하지만 용서하는 마음이 있으니 손자의 도움으로 나마 산소를 현충원으로 옮겨드렸잖아요. 그곳에서는 어머니에게 잘하고 계신가요?. 제발 그곳에서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지 마시고 어머니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도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 다 떨쳐 버리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기에 이렇게 아버지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보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에게 부탁드릴 건 딱히 없고 이제 남아있는 자손들 모두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빌어주세요. 저도 이젠 부담스러운 건 모두 내려놓는 나이가 돼버렸습니다. 그래서 제사상도 이제 못 차리지만 일 년에 몇 번 은 계신 곳을 찾을 테니 섭섭해하지 마세요. 오늘이 2023년 크리스마스이브이니 어느새 올해도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 내년도 무탈한 한 해가 되길 바라지만 사실 새로운 한 해 다가올 때마다 두렵기도 합니다. 떠날 때 떠나더라도 모든 걸 잘 마무리 짓고 떠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지요. 어쩌다 아버지에게 하소연까지 하고 말았으니 더 길어지기 전에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게 아버지에게 드리는 마지막 편지가 될것 같으니 부디 하늘나라에서 어머니와 함께 늘 평안하고 행복하게 지내시길 두 손 모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