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사는 세상
언젠가 서부영화에서 보니 치과와 이발소가 같은 간판 안에 적혀 있는 게 보였다. 옛날에는 이발사가 수술도 했다던데 서부시대에는 이발소에서 치과진료도 겸했던 모양이다. 지금도 치과 가는 게 두려운데 그 당시를 상상해본다면 아마 치료 받으러온 사람에게 버번 위스키 한 모금 정도는 먹여놓고 시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병원 간판이 수도 없이 많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내과와 치과가 유독 많이 눈에 띄는 거 같았다. 저렇게 많은 병원들 그래도 먹고 살만 하니까 운영하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두절미하고 옛날부터 튼튼한 치아는 오복 중에 하나라 했는데 나이 들며 그 복마저 사라져 가고 있는 나는 얼마 전 있었던 치과에 대한 경험담을 적어보려 한다. 며칠 전 집에서 두 시간 걸리는 미아리에 있는 치과에 갔다. 거기까지 가는 이유는 의사를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 10여 년 전 친구 소개로 처음 간 곳인데 내 친구의 K대후배로 우리보다 5년 정도 아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일 년에 두 번 정도는 해외 오지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별 욕심도 없는 듯이 사는 미소가 아름다운 사람이다. 오래전 만들어준 부분 틀니가 헐거워져서 중간에 한번 고치러 간 이후 오랜만에 찾아갔다. 병원은 다행히 그 자리에 있었다. 틀니를 잘 만들어준 덕분에 한 10여 년간은 오징어까지 씹으며 잘 사용했는 데 근간에 걸치고 있던 이 하나가 염증이 심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급한 나머지 동네 치과에서 뽑고 말았다. S대 마크가 크게 걸린 치과인데 생긴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곳이었고 버스가 지날 때마다 버스에서 홍보 방송도 나오는 곳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 웬만하면 여기서 임플란트까지 할 생각도 있었다. 이 동네에는 치과 간판이 한 다섯 군데 보였는데 지난 경험상 장사꾼 같은 치과의 행태에 믿음이 가지 않아 치과를 선택하는데 늘 망설여졌던 기억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새로 생긴 데다 S 대 출신 의사라니 한번 가보자는 생각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그럴듯한 인테리어에 깨끗한 실내와 최신 설비를 갖춘 치과 같았다. 젊은 의사가 이를 뽑자마자 치과의 코디네이터(상담사)라는 여직원이 따로 부르더니 언제 임플란트를 할 건지 물어보며 몇 대를 심어야 하며 브리지가 어쩌고 하더니 바로 비용에 대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의사가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바뀐 거라 이해했다. 예상보다 비싸기에 좀 싸게 할 수 없냐고 했더니 좋은 거로 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현찰로 결제하면 얼마까지 해줄 수가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이라는 생각과 함께 믿고 맡길 수 있는 병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문을 나서자마자 멀어도 미아리의 오원장이 있는 치과로 가는 게 마음 편할 것 같다는 생각에 먼 곳까지 오가게 된 것이다. 집에서 버스로 신논현역에 내려 거기서 전철로 두 번 갈아타고 가는 곳이지만 비용이나 오랜 시술경험등 모든 것에 대해 믿을 수 있기에 피곤을 무릅쓰고 왕복 4시간 걸리는 길음역까지 다닌다. 하여튼 이곳에서의 진단결과 잇몸이 약해 두대 밖에 심을 수 없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니 모든 게 삭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전에 진단했던 치과 두 군데서는 3대를 심는다고 했다. 약한 잇몸 위에 그냥 심어보겠다는 얘기인 건지 잘 모르지만 그러니 내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누구나 돈 벌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텐데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려주는 의사를 다른 곳에서는 찾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용도 다른 곳과 차이가 많이 나니 마누라는 싱글벙글하며 여보 치료 끝나면 오가와에서 생선초밥 사줄까 아니면 봉피양에서 냉면에 고기 먹을래 하면서 아주 신이 났다. 그런 후 며칠 뒤에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힘든 시술을 끝냈고 잇몸이 회복되는 두 달 후에 모든 게 마무리된다고 했다. 내가 잇몸이 약하고 삭아서 시술하는 게 힘들었던 거 같았다. 이럴 거라면 불편하지만 아프지 않은 틀니를 할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허스름한 좁은 건물 안에서 오랫동안 환자들을 치료하며 오늘도 점심시간을 뒤로 미룬 채 진료에 집중하고 있는 오 원장의 친절하고 밝은 그 미소에 모든 사람은 치과에 대한 두려움도 잊게 만드는 믿음을 가졌을 거다. 이제는 오원장도 힘이 부치는지 11시부터 4시까지 일주일에 네 번만 진료를 보고 있다. 같이 늙어 가는 쳐지니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을 일이다. 지금 나는 대학병원 두 군데를 6개월마다 다닌다. 그런데 기본 적인 검사 외에도 비용이 만만치 않은 검사들을 수시로 받으라 하니 안 받겠다고 할 수도 없고 과연 그런 검사가 꼭 필요한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경제적인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고령자들의 마음은 점점 무거워 질뿐이다. 그래서 지내온 경험상 지금도 병원이 장사치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의사의 과실이나 정부와 의대생 문제등 자세히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과연 훌륭한 의사가 나올 수나 있을까 하는 불안감과 의구심만 남는다. 믿음을 줄 수 있는 병원이나 의사가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왜 내가 이렇게 병원을 불신하게 됐는지 우울한 한숨부터 나온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 그 마음 그대로를 끝까지 지켜 주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건 그렇고 어디서 봤는데 자연치 하나가 모든 효과를 감안하여 굳이 가치를 책정한다면 몇천만 원 이라며 우리의 자연치아가 온전한 상태라면 입안에 수억 대 보석을 달고 다니는 거나 마찬가지 라고했다. 그러니 치약도 귀해 치분이나 소금을 사용했던 어린 시절에 지금처럼 치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 못하고 복을 차버리며 살았던 게 사실이라 많이 아쉽다. 어찌 됐던 생각이 많아지는 이럴 때는 故 이 태석 신부를 생각하며 의사들에 대한 불편한 마음을 모두 지워 버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