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사는 세상
자다가 가위가 눌릴 때 헤어나려고 발버둥 치면 몸이 더 옥죄어 온다는 사실을 경험한 사람은 많을 겁니다. 그럴 때 될 대로 되라는 듯이 몸을 풀며 그래봐야 죽기밖에 더하겠냐 하는 마음으로 나에게 나를 맡겨 버리면 가위가 풀리더군요. 주위에는 중병에 걸려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지요. 그럴 때도 같은 생각으로 죽음을 두려워 말고 자신을 신뢰할 수 있다면 기적도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허기야 모든 게 말은 쉽지만 막상 나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과연 그렇게 의연해질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는 잠시 멈칫거리게 되는군요. 아직은 도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늘 말하는 순리대로 운명에 나를 맡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연스럽게 그 끈을 놓으면 좀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살아온 경험에 의한 넋두리 일지도 모르지요. 죽기밖에 더하겠냐는 말, 그 말의 의미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사람에 따라 죽음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살다 보니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가지 말라고 붙잡아도 매달려도 어차피 떠날 놈은 떠나가기 마련이고 죽겠다는 말을 입버릇 처럼 하던 사람은 결국 죽음을 택하더군요. 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을 볼 때 공수래공수거란 말이 생각나네요. 갈 때는 빈손으로 가는 거니 모든 걸 비우고 내려놓으라는 이런 말, 너무 들어 식상 하긴 하지만 맞긴 맞는 말이기에 늦게나마 따라보려고 노력 중입니다. 위선적인 것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강림이니 윤회니 이런 단어들 은 내게 UFO 가 있냐 없냐라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로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지요. 그야말로 그냥 한번 왔다 가는 짧은 인생인데 미스터리 한 세상사에 대해 뭘 그렇게 복잡하게 고민하며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런 게 인생이라면 할 말은 없습니다. 명동을 거닐 때 불신지옥이란 글이 적힌 판때기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사람들을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일 년 내내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나치지만 어떤 이유로 저 사람들을 극한 믿음에 빠져들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지요. 나름대로 어떤 이유나 계기는 있었을 테지만 그러나 천국에 가기 위해 꼭 저런 과정이 필요한 거라면 천국 갈 생각이 없습니다. 어딜 가던 잘 적응 하며 지내면 된다는 생각이니까요. 전에 잘 나가던 후배 하나가 있었어요. 모든 일에 자신이 있어선지 이혼도 쉽게 하고 늘 주위에는 술과 여자들이 따라다녔지요. 그러나 여러 이유로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더니 결정적으로 팬데믹 이 지나면서 사업은 회생불능 상태가 되고 나니 연락도 끊은 채 은둔 생활에 들어갔어요. 그러더니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연락이 왔더군요. 말투등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변했더라고요. 그리고 이태원 어느 교회에 묻혀 사는 듯 보였어요. 나를 잘 알기에 종교에 관한말은 벙끗도 안 하지만 문자에 늘 주님의 보호 아래 산다는 그런 글이 보이는 걸 보면 원래 심성이 착한 친구라 개과천선이란 말이 어울리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후배의 그런 낯선 모습이 내게는 앙투아네트 증후군 같은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그 친구 말투에서 우울증이나 대인 기피증의 느낌도 받았지만 자신을 믿고 스스로 이겨내야지 어쩌겠어요. 누구나 할 말은 많겠지만 어찌 됐던 사람을 경계하고 편가르는 세상이 너무 싫기도 하고 내가 없어도 잘 굴러갈 것 같기에 사는 동안 그냥 착하게 살다 손 털고 가려합니다.
오래전 어머니가 호스피스 병동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벚꽃 구경이나 하고 싶다고 하시기에 어느 봄날 엄마와 함께 양평과 여주를 한 바퀴 돌 때 봤던 엄마의 행복하고 초연한 모습 그리고는 오월 팔일 어버이날에 영면하셨는데 올해도 그날이 곧 돌아오네요. 엄마 저도 이제 칠십 중반을 넘긴 노인이 됐어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