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랑질하지 말라는 그 말

고래가 사는 세상

by 구일권

우리 고교 동창들은 그들만의 단톡방이나 소모임을 통해 친구들과의 소식과 정보를 나누며 소통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이런저런 험담이 오고 갈 때가 있나 보다. 나는 친구들과 가끔 통화를 할 때 길어봐야 몇 분을 안 넘기는데 집사람이 친구들과 나누는 전화통화는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무아지경에 빠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만약 남의 험담을 한다 해도 그 수위가 대단히 높고 험담의 내용 또한 다양하리라 짐작해 본다. 전에 어느 날 집사람이 친구들 모임에 다녀오더니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지난 모임에 가서 여행 다녀온 얘기를 했는데 그중 어떤 친구 하나가 다른 데 가서 내가 자랑질하더라는 얘기가 돌고 돌아 다시 집사람 귀에 들린 거 같았다. 그건 여행을 못 가본 열등감 때문일 거라고 마누라 역성을 들어주며 앞으로 그런 친구는 만나지 말라고 거들었다. 전에 우리 가족이같이 여행을 떠날 때는 짧은 방학기간 동안에 아이와 함께라서 대부분 편한 패키지로 여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퇴직 후 보다 자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다는 집사람의 소원도 있었고 또한 우리 인생에 이런 긴 여행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렌터카를 빌려 한 달 반 동안 이태리. 그리스 등을 돌아다녔다. 그것도 지공도사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 인생말년에 용기 내어 떠난 여행이기에 힘든 여정이었지만 집사람은 무척이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니 친구들에게 자랑도 하고 싶었을 테고 또한 여행 중에 있었던 풀어낼만한 얘기들이 무궁무진했으리라 짐작이 갔다. 그런데 그런 구설수에 오르니 열받을 만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은 우리 동창들 사이에도 있었다. 어느 친구가 와이프랑 유럽에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단톡방에 올렸다가 똑같은 경우를 당했다고 했다. 그런 사진 앞으로 올리지 말라던 어떤 친구에 대한 말들이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더니 결국 안 좋은 뒷말이 오갔고 그 후 그 친구는 송년모임에도 몇 년째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좋은 얘기라면 몰라도 나의 얘기가 다른 사람 입에 오르내리는 걸 알게 된다면 그 기분이 더러운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린 살면서 처신도 잘해야겠지만 조심해야 할게 참 많다. 특히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며 목숨까지 버리게 만드는 남자들의 아랫도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남자들도 나이 들어서 술을 마시게 되면 여자들 못지않게 수다스럽고 시끄러워지는 거 같다. 술만 들어가면 어디가 아프다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단체로 해외여행 가자는 얘기나 맛집 얘기는 늘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얘기에 친구들 모두 끄덕이지만 귀가 안 들리는지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한 얘기 또 하는 걸 보면 마지막 남은 양기가 모두 입으로 모이는 듯싶었다. 그러나 여자들과 달리 남자들은 가족에 대한 자랑은 별로 없고 안 하는 것이 불문율로 돼있는 것 같다. 또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여행에 이력이난 내 앞에서는 여행에 관한 얘기를 하는 친구는 별로 없다. 여행에 관한 거 라면 나도 맞장구치며 추억이 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게 좀 아쉽다. 나 또한 해외여행 얘기 자체가 위화감을 조성할까 봐 군대에서 잘 나갔다는 얘기로 거품무는 녀석들이나 마찬가지로 특별히 물어 오는 경우 외에는 내가 먼저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상대에 대한 존중도 없이 남을 시기 하며 아집만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뒷담화의 제물이 될까 자랑하고 싶은 얘기조차 함부로 꺼낼 수 없으니 답답하지만 입을 닫고 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누구라도 자랑하고 싶은 일들은 많을 텐데 자랑질이라 하더라도 그대로를 받아줄 수 있는 여유로운 세상이 되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늙어갈수록 어린애처럼 변한다던데 우리 모두 어린아이 같이 순수하고 착하게 늙어가는 노인들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점점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말동무해 주는 로봇이라도 하나 끼고 살아야 할 것 같다. 기왕 얘기가 나온 김에 나도 대놓고 자랑질이나 한번 해보고 끝낼까 한다. 내가 지금까지 일이나 여행으로 다녀온 나라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긴 했는데 할 일도 없고 무료한 지금에야 손가락을 꼽아봤다. 대략 28개국 정도였고 들렸던 도시는 계수기가 필요할 것 같아 생략하기로... 그러고 보면 참 많이도 다녔는데 생각해 보니 주마간산(走馬看山) 이란말이 어울릴 같았다. 그래서 자랑할 만큼 기억에 남는 여행은 그리 많지 않았고 그냥 수많은 사진과 함께 상자 속에 묻혀 지낼 뿐이다.

마트에 갔다가 내가 좋아하는 이태리 바를로 와인이 싼가격에 나왔기에 자세히보니 라벨에 얼룩이 묻어 있었다. 가끔가다 맛은 상급 인데 운송중에 문제가있어 싸게 나온

와인들이 있기에 얼른 집어들고 왔는데

차마 버릴수 없어 쓴맛을 삼키고있다.

이름값도 못하는 와인 ,자랑 하는지역

와인이라고 다믿을건 아니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가실 땐 그냥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