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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랬지

고래가 사는 세상

by 구일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인가 나는 과외공부가 너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집이 있는 세검정 까지 다니기 힘들어 무교동에서 식당을 하는 고모집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집에서 을지로 입구에 있던 학교 까지는 불과 1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학교 가는 길에는 2층으로 된 유명 빵집과 개성인삼가개 그리고 지금 명동으로 옮긴 하동관 곰탕집등을 비껴 지나갔다. 우리 학교건물벽은 담쟁이로 덮여있고 운동장은 코딱지만 했던 지금 동국제강이 있는 그 자리다. 지금 그때 흐릿한 그림을 떠올려보지만 기억마저 식어가는 중이라 당시의 모습을 전하기엔 한계가 있어 아쉽다. 기억 속에 하나는 마룻바닥을 반들반들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매끈한 자갈 하나랑 손걸래 그리고 양초를 가지고 학교에 가는 날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은 보기 힘들지만 학교 근처 우리 반 친구집 쌀가개에는 멍석 위에 쌓아 올린 쌀더미 위에 홉이나 됫박 혹은 커다란 말쌀을 파는 용기와 계란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의 어머니가 수시로 학교에 들락 거린 걸 보면 개네집은 먹고 살만 했던 거 같다. 그렇지만 나도 식당을 하는 고모 덕분에 도시락만큼은 누구에게도 꿀릴 게 없는 한마디로 진수성찬이라 담임선생님도 부러워할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는 모두가 어렵게 살던 시절이라 반친구들 도시락은 너무 초라했다. 대부분 단무지나 콩자반 정도였고 미국원조 우유가루로 만든 빵인지는 이빨로 갏아 먹을 정도로 너무 딱딱했는데 그걸 점심으로 가져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전에 브랭땅 백화점이 있던 을지로 1가에는 이북에서 피난 내려온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북 오도민촌이라고 있었다. 나는 거기서 과외공부를 마치면 배가 고팠는지 가끔 명동성당 가는 길에 모여있던 수제비 가개에 들려 5원 하던 수제비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집으로 갔다. 지금은 쌀이 남아돈다고 쌀을 어디에 소비할지를 걱정하던데 당시는 쌀이 부족해 알랑미라고 불리던 안남미도 수입했고 분식장려운동에 잡곡밥을 싸 오는지 선생님이 도시락을 검사하는 날도 있었다. 쌀이 귀하던 시절이라선지 주말에 집에 들르면 가끔은 어머니가 콩나물이나 무밥 그리고 칼국수, 술냄새가 나는 부풀린 흰 빵 등을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그때 얘기를 왜 하는가 하면 지금 일본에 있는 친구말에 의하면 일본이 쌀값 폭등으로 인해 난리도 아니라 한다. 1년 전 5kg에 1800~2000엔 정도 하던 것이 지금 최저 4800엔 이상 올라 아이가 여럿인 집은 힘들다고 했다. 그래서 경영난에 힘든 요양원들은 폐쇄까지 생각한다니 심각하긴 심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슈퍼에서 파는 식빵. 소면. 가락국수 스파게티등 밀가루제품이 급상승하는 반면 쌀과자 사케등 쌀로 만드는 제품은 원가상승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고 그랬다. 무료로 리필해 주던 공깃밥도 돈을 따로 받고 있는 형편이다 보니 미국. 호주. 중국뿐만 아니라 안남미라 불리는 인디카 쌀까지 수입하는데 입에 맞지 않아 고생 인 모양이다. 동남아 여행 때면 맛있게 먹던 볶음밥 대부분은 날아다니는 그 안남미 쌀인데 왜 맛이 없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우리도 찰지지 않고 냄새가 난다고 그런 쌀을 기피했던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 여행 왔다가 가는 사람이 쌀을 들고 가다 일본 세관에 걸리는 장면을 tv 화면에서 볼 때는 호들갑 떤더고 생각했는데 소식을 듣고 나니 매우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이게 다 일본 농정정책의 부실 때문이라고 하지만 우리와는 달리 일본인들은 조용히 잘 참고 지낸다고 했다. 건강에 안 좋다는 백색가루 중 하나인 밀가루가 혈당이 나 소화 장애등 건강에 안 좋다는 점만 부각되는 요즈음 우리에게도 그런 일이 생기지 말라는 법이 없으니 그야말로 유비무환의 자세로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 일본이 자랑하는 고시히카리 쌀의 자존심 때문일까 힘들다면서도 우리 쌀은 고양이 오줌만큼 수입해 갔다고 들었다. 우리에게도 이천의 임금님 표 쌀등을 비롯 명품쌀들이 많은데 이럴 때 많이 가져다 쓰지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더 굶어보면 정신 차리겠지 하는 짖꿎은 마음도 든다. 치과 다니는 바람에 한동안 술을 안 마셨더니 담배 끊을 때 힘든 것처럼 컨디션이 엉망이다.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세상사, 흐릿한 낮달이 무심하게 쳐다보는 무료한 하루다. 치료가 끝나면 지평 쌀막걸리에 녹두전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니 입맛부터 다시게 된다. 하여간 기후변화로 인한 대규모 식량난은 우리 모두가 해결해야 할 난 제인건 분명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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