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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는 누구인가?

고래가 사는 세상

by 구일권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이렇게 부르던 동요는 오래전 동네 골목길에서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며 부르던 "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하고 부르던 대한의 노래 전반부 랩(rap) 같은 부분으로 기억한다. 내가 이 노래를 기억하게 만든 건 네델란드 동물학자 프란스 드발이쓴 침팬지 폴리틱스란 책에 대해 듣고 읽고 난 이후부터다. 나는 그동안 원숭이가 집단 탈출하여 술을 훔쳐 마셨다거나 인간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일종의 해프닝으로 생각하고 그냥 지나쳐 버렸다.그러나 그들은 오래전부터 발효과일을 먹어 이미 술맛에 길들여진 사실도 모르고 한마디로 그들의 행동을 무시해 버린 셈이다. 그러나 책을 읽게 되면서 알게된건 세상에는 우리가 늘 봐왔던 원숭이들 외에도 안경원숭이나 거미원숭이등 수많은 종류의 원숭이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또 그들과는 다른 침팬지. 보노보와 오랑우탄 그리고 고릴라가 있었다. 이들을 분류하며 알아가자니 벼락치기 시험공부를 하듯 종일 머리가 복잡했다. 글이 써질때는소나기밥처럼 마구 써 내려가는 나도 이건 쉽게 끝낼 내용이 아닌 거 같아 그만 둘까라는 생각도 있었지만 흥미로운 주제에 끌려 마음 고쳐먹고 책상머리에 앉았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얘깃거리들 속에서 먼저 떠오르는 건 혹성탈출이라는 영화였다. 인간존재의 의미, 문명의 종말에 대한 경종이 담긴 내용으로 교만과 윤리적 타락 그런 것들이 엿보였다. 해변에 기울어져 있는 자유여신상 앞에서 챨톤헤스톤이 울부짖는 그 장면은 인류에 대한 성찰처럼 느껴져 가슴이 뭉클했다. 핵전쟁이나 진화된 로봇 그리고 치명적 바이러스로 인한 인간의 몰락 이건 영화에서뿐만이 아니라 언젠가 우리에게 실제로 닥쳐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웠기에 무겁게 가슴을 눌렀다. 후속 편에서는 유전자 조작으로 진화한 시저의 눈을 통한 인류와의 갈등 그리고 침팬지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신뢰와 배신, 정치적 갈등은 인간과 다를 게 없었고 인간과 공존에 대한 문제들을 남긴 채 최종대결 장면들이 돋보였다.


나는 사실 오래전 약장수가 데리고 다니던 원숭이를 비롯 일본의 온천욕을 즐기는 원숭이등을 그저 눈요깃거리로만 봐왔었다. 그러다 90년 초인가 말레이시아 콴탄 이란곳의 동물보호구역에 갔을 때 나의 손을 잡아끌던 오랑우탄에게서 일반 원숭이들과는 다른 인간 같은 친밀감을 처음 느낄 수 있었다. 침팬지와 인류가 진화론적으로 갈라진건 900만 년 전 부터라지만 완전히 갈라진건 500~600 만년 전쯤이라 했다. 그리고 침팬지와 인간의 DNA가 처음에는 98% 까지 일치한다고도 했지만 나중에 나온 결과는 84.3% 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인간과 침팬지 사이의 교배가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는 설을 부정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았다. 그 설을 바탕으로 에이즈를 연구하는 사람들에 의 하면 아프리카 콩고 지역에 사는 침팬지들로부터 시작된 에이즈가 인간에게 감염된 거라는 연구 결과 때문이다. 침팬지와 함께 인간과 가장 가깝다는 보노보는 침팬지보다는 체형이 가냘픈 영장류지만 서로 다른 특징과 진화적 계통이 있었다. 그런데 보노보 가 범인으로 의심이 더 가는 이유는 모계사회로 이루어진 그들의 자유분방한 성생활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시로 성교를 하는 데다 구강성교나 동성끼리 성교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인간과 거의 비슷한 성교자세를 취한다는 보노보는 모든 갈등을 성적행동으로 긴장완화를 풀어낸다고 하니 폭력적 충돌에 의한 서열다툼으로 해결하는 침팬지 와는 또 다른 면이 보였다. 그러고 보면 그들중 원숭이만 꼬리가 있고 생활방식이나 사회성등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인간과 유사한 정치적 행동이나 도구등을 사용을 하는 침팬지 와 온순하고 풍부한 감정 표현을 하는 고릴라 그리고 수목 생활을 하며 조용히 지내는 오랑우탄은 엄연히 서로 다른 종족으로 보였다.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에서 읽게 되는 침팬지 무리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서열 지배구조 그리고 동맹, 협상, 배신, 복수, 포용등 정치적 행위들을 보면 그들의 단순한 본능적 행동이 아니라 전략적 판단을 통해 주고받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권력은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 지지와 연합의 기술이 핵심이라는 걸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인간만이 정치적 존재가 아니라는걸 보여주는 그들은 인간에게 묻어있는 정치적인 뿌리가 인류보다 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인간사회에 대한 풍자이고 반성을 일깨워 주었다. 인간과 이들과의 공통점을 찾아보려면 서구중심의 가족 구조나 도덕기준 보다는 아프리카 부족사회나 아마존 원주민 혹은 몽골 유목민 이나 동남아 지역에 흩어져사는 소수부족 사회에서 다양한 인류문화를 비교해본다면 이해가 쉬울거 같았다. 그러고보니 아담과 이브 그런 얘기는 말고 우리 인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고 어디서 굴러온 건지 더욱 의문 스러워졌다.


동물들 사회에서 벌어지는 권력 구조와 정치행위를 다루는 공통점을 가진 조지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보면 나폴레옹 처럼 권력을 가진 자가 어떻게 이념을 조작하고 거짓 정보를 퍼뜨리고 세뇌시키며 진실을 왜곡하는지를 보여준다. 이상을 내세운 혁명 (계엄)도 잘못된 리더십 하에서는 독재로 변질될 수 있다고 했다. 또한 무관심과 비판 없는 충성은 독재의 비료가 되기에 자유와 정의에 대해 늘 경계하고 성찰해야 함을 일깨운다. 두책들의 접근방식이나 내용은 다르지만 우리 정치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에 오지랖을 떨어봤다. 이 책들을 읽다 보니 불안한 정치 상황 속에서 군주가 어떻게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실용적인 조언서인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까지 다시 들춰보게 만들었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 현명하고 필요한때는 무자비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과 힘과 기만을 모두 사용할 줄 알아야 하며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안전하나 증오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그랬다.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민중의 지지를 받는 것이 중요하며 군주는 도덕보다 결과를 중시한다고도 했다.


모든 국민은 자기들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갖는다고 했다. 나는 이번 계엄으로 촉발된 서부지법 폭동 사건을 보면서 정말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해방직후 3.1절 날 남대문에서 벌어진 좌익과 우익의 집단 난투극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과 함께 보수와 진보의 골이 깊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공권력도 무너질것 같은 현장을 보며 최루탄.물대포 같은 많은 단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이런 갈등을 하루빨리 치유시킬수 있는 강하고 영리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마음마져 조급해졌다.그러면서 몇 년 전 태국 소도시에서 영역과 먹이 다툼으로 있었던 원숭이들의 패싸움, 그건 인간 세상과 다를 게 없는 무자비한 난투극이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전쟁과 갈등을 바라보면서 우리도 아슬아슬한 줄타기 하는 마당에 통일에 대한 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자연 스런 통일이 되면 좋겠지만 과거를 돌아보더라도 강대국들의 틈바귀에서 우리 소원대로 될리는 만무하다는 비감함을 느꼈다. 그저 남과 북이 각자 살아가면서 상대가 어려울 때 도와주는 정도로 조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솔직한 심정이다.

바쁜 기업인들을 시장바닥에 불러 모아 놓고 어묵 먹으며 대통령 놀이에 심취한 모습은 침팬지 우두머리 그 수준 이하였다. 옛날말로 표현하자면 웃기는 짜장 바로 그게 적당한 표현일듯 했다. 시장이 표밭인지는 모르지만 철만 되면 사람들과 몰려다니며 서민과 함께 하는것처럼 코스프레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선거철이니까 하는 이해도 해보지만 늘 봐왔던 구태의연한 행동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뿐이었다. 밤새도록 쓴 글이 어쩌다 순식간에 날아가 버려 힘겹게 다시 정리 하긴 했지만 먼저 쓴 글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오전 내내 찜찜하다. 늘 힘 빼고 순수한 마음으로 글을 쓴다는게 어렵긴 하지만 노욕으로 버티는중이다.


밤새 침팬지 생각만 해서일까 내가 즐겨보는 일본 스모 선수들의 몸동작이나 표정을 보면 침팬지나 고릴라와 유사해 보였다. 특히 요즘 치러지는 스모 여름경기에서 연승을 달리는 젊은 선수 하쿠오호( 伯樓鵬)는 혹성탈출에 나오는 침팬지 우두머리 시저의 몸짓과 얼굴 생김이 무척이나 닮아 있어 나를 더욱 상상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었다.또한 전부터 일본인을 비하할때 원숭이에 비유하는것은 일본 북쪽에 살며 털이많은 아이누족 때문인지 일본에 많이 서식하는 원숭이 때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이유는 궁금 했다. 그런데 일본에 있는 친구 말에 의하면 그런것과는 관계 없고 일본 명치시대 서양문물이 들어올때 일본인들이 그대로 모방하고 따라한데 대해 서양인들이 일본인을 비하한 말이라고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답을 주었다. 그러면서 서양을 따라잡기위해 모방한것은 근대화를 위한 지름길이 었다며 그럴때 구한말 조선은 그런 생각도 없이 "위정척사만 외치다가 망한거라는 뼈아픈 우리의 과거를 말했다. 맞는 말이며 잊고 싶은 역사의 한페이지 였다. 원숭이 얘기 꺼내지도말걸 그랬나 하는 생각속에 침팬지 그들은 과연 우리가 책임지고 보호 해야만 하는 인류의 조상일까!? 내게 남아 있는 궁금증은 나만의 공허한 울림 일지도 모른다 *** 위정척사(衛正斥邪) 구한말 유교적 가치를 지키고 외세를 배척해야 한다며 외국과의 통상을 반대 하고 가톨릭을 물리치자고 내세운 주장 으로 수구꼴통이라는 대원군이 떠오르는 말이다. 어찌됐던 언젠가 우리도 힘있는자들의 굴레에서 벗어나 떠버리 고릴라 같은 트럼프 처럼 갑질 해보는 세상이 오기는 하는걸까 하는 막연한 기대속에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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