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취경전

동경 산책

by 구일권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가위 바위 보도 일본한테 지면 안 되는 일본에 대한 감정의 골은 깊다. 한국은 일본에 대해 2천5백 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일본은 한국에 대해 36년간의 우월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이는 우리가 지난 2천5백 년 간의 일본의 문화 전수자로 현재 일본 문화의 속속들이 우리 문화의 발자취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일본은 제국주의를 앞세워 조선을 통치한 36년간의 우월감을 현재도 의식하며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두나라가 가진 자부심과 우월감의 충돌은 양국 간의 관계에 있어서 영원히 사라지는 날은 오지 않을 것만 같다. 광개토 대왕에 나오는 임번국의 일본 한반도 통 치설, 우리나라의 왕인 박사의 불교와 한자 전래, 백제 귀족들의 일본 통치와 철의 전래 등 역사적 지리적 유전학적으로도 우리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일본일 것이다.

지금은 일본을 일 년에 한두 번 가지만 과거 에는 자주 일본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한때는 미국 방문 시 미국행 기내에서 흡연이 금지되어 일부러 일본을 경유하는 일본 항공을 선택해 나리타 공항이나 간사이 공항 흡연실에서 부족한 니코틴을 채우고 다시 미국으로 떠나기도 했다. 지금은 담배를 끊은 지 10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었지만 연초 삼매에 빠져 있었던 그 무지함에 아직도 몸에서 진저리가 쳐진다. 미국서 돌아올 때 당일 서울 연결 편이 없으면 일본항공에서 STPC라고 공항 근처 일급 호텔 1박을 무료로 제공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비행기의 일본 도착 시간에 맞춰 동경에 사는 친구에게 미리 연락해두어 호텔 도착 즉시 둘이 나리타 시내로 나가 전철 막차 시간 전까지 친구와 한잔하며그동안의 회포를 풀기도 했다. 40년 전 직장 동료로 만나 지금까지 연락하며 지내는 친구는 30여 년 전 동경 지점장으로 왔다가 지금 까지 일본에 살고 있는데 만날 때마다 일본말의 억양이나 행동도 일본 사람처럼 변해 가는 거 같았다. 친구가 가끔 서울에 오거나 내가 일본에 가게 되면 우리는 말이 필요 없이 술집으로 향했고 항상 2차까지 마무리한 후 얼큰하게 취기가 올라서야 작별하곤 했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게 되는 그 친구의 작별 인사는 말버릇처럼 항상 술 좀 적당히 마셔라였다. 이처럼 경유지가 되었던 목적이 방문이든 간에 일본은 우리의 바로 코앞이라서 그런지 다른 나라에서 오는 이질감도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긴 여정의 피로감 같은 것도 쌓이지 않아 마치 옆 동네 온 것 같이 마음이 편해지는 곳이기도 했다. 나는 동경 갈 때마다 대부분 신주쿠 고속 터미널 근처 JR규슈 블러썸이라는 호텔에 묵는데 어딜 가던 교통이 편하고 근처에 내가 필요한 모든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동경을 벗어나기 전에 늘 들리는 곳이 있는데 신주쿠 이세탄 백화점 2관에 슈퍼맨 코너라고 빅사이즈 옷 파는 곳과 대각선에 있는 유명한 찹쌀떡 가개 그리고 다케시마야 백화점 식품 부등인데 여기를 저녁 시간에 가면 참치 등 생선회를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고 또 좋아하는 고등어 초밥도 사려고 들린다. 그리고 사케도 2~3천엔 정도면 훌륭한 맛의 술을 살 수 있어 혼자 있을 때는 그렇게 술과 음식을 준비해 호텔방에서 홀가분하게 먹고 마시다 자면 그만이니 그만큼 편한 게 없었다. 그리고 들리는 곳은 도큐핸즈에 가서 새로운 디자인의 특이한 물건이 있나 보고 그다음 기누쿠니야 서점에 들러 책이나 이것저것 구경하기도 한다. 가끔은 우에노 아메요코도 들려 재래시장의 사람 사는 것 같은 활발한 모습을 즐기고 근처 왕인(王仁) 선생 기념비가 있는 우에노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는데 벚꽃 나무 아래 돗자리 깔고 음식 먹는 사람들 모습은 어릴 적 친척들과 창경원 밤 벚꽃 놀이 갔었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1927년 아시아 최초로 개통된 동경 지하철 중 신주쿠역은 하루 350만 명의 많은 인원이 움직이는 동경 최대의 역이다. 주변도 복잡 하지만 좀 좁다는 느낌도 들었다. 일본의 전철 풍경이 우리와 다른 점은 우리같이 커다란 스크린 도어도 없고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도 또한 바라는 노인들도 없었다. 핸드폰으로 통화하는 사람은 물론 옆사람과 대화하는 사람도 보이질 않는 일본 전철 내의 모습이다. 그러나 숨죽이고 가는듯한 그 모습이나 시부야 교차로 건널목으로 쓸려 가는듯한 사람들의 행렬은 정신적으로 누군가 에게 지배당하는 그런 영화 속 인간들 같았다. 매일 아침 지하철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인파를 보며 종말론을 떠올리게 되는 건 뭔지 모르겠다. 일본은 국철 보다 사철이 많고 무료 환승이 안되니 교통비가 꽤 부담된다. 그리고 일본 국내 신간선 열차 비용은 비행기보다 비싸지만 열차가 멈추는 역에서 파는 도시락(에키벤)을 먹으며 술 한잔 하는 그 맛은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에키벤은 그지 방의 특산물을 반찬으로 넣는데 그 도시락의 종류만 천여 종류가 넘는다고 들었고 그중에 매년 에키벤의 1등부터 100 등 까지 순위를 매긴다고 했다. 그중 10대 안에 들어가는 에키벤을 먹어 봤는데 맛도 맛이지만 정성스러운 그 도시락의 모양은 정말 예술이었다.

을씨년스러운 동경의 겨울날 흔한 아침 풍경은 반바지 차림에 란도셀(일본 초등학생 책가방)을 메고 한 손에는 실내화 가방을 들고 쫄랑 거리며 학교 가는 어린 학생들과 검정 교복에 빡빡머리 깎은 남학생들이 건너편 선배들에게 "옷쓰(남학생들이 선배들에게 사용하는 오하이요 고자이마스 준말)하며 아침 인사하는 모습은 우리 학교 다닐 때 그 모습 그대로였다. 지금도 일본 동네 목욕탕(센토)에 가면 남탕. 여탕 가운데 있는' 방 다이'라는 높은 곳에 앉아 돈 받는 할머니에게 돈을 내밀면 계산하는 동안 방 다이 사이로 여탕을 잠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데 목욕탕의 모습도 옛날 우리와 흡사하다. 오래전 우리는 한 달에 한번 아니면 명절 때나 목욕탕을 다니던 시절 탕 속에서 유유자적 시조 읊던 동네 영감님, 잠자리채 같은 걸로 때를 건지는 사람, 부자간 서로 등을 밀어주던 그 시절은 경제적으로는 어려웠지만 정이 넘치는 그런 모습이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의 멋이 있는데 지금 우리는 옛 목욕탕의 정취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대부분 찜질방이 대신하고 있으니 그 기억마저 아련하다. 집단주의를 제일 우선시하는 일본에서 기업은 부자지만 개인은 살기가 팍팍하다는 일본, 일본은 '다테마에'(격식)와 혼네(본심)를 그들의 긴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사회생활의 지표처럼 이 두 가지를 명확하게 갈라서 사용하고 있다.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는 다테마에를 우선시하고 혼네는 중요하지 않은 그들이다. 만약 조금이라도 자신의 혼네가 집단속에서 읽히는 날이면 이미 그 사람은 그가 속해있는 집단에서 살아남질 못한다. 미국의 어느 사회학자가 일본, 한국, 미국의 비교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일본은 제일 처음으로 집단이 있고, 한국은 가족이 있고 미국은 개인이 있다"생각해보니 뼛속부터 한국인 인 나는 우리 가족 건드리면 목숨 걸고 달려든다. 아니 모든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그러하다. 요즘 일본을 다녀온 많은 한국의 젊은 이들은 일본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들의 혼네를 얼마나 꿰뚫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싸구려만 남아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는 일본에서는 누구도 책임 지려 하지 않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책임회피 의식을 잘 나타내는 오다와라 효조(小田原評定) 란 일본 고사성어에서 지금의 그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돈키호테에서 쇼핑한 물건들이나 음식 사진 올리는 '인스타그레머블' 같은 그런 모습이 아닌 보다 일본 속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평가하는 그런 속 시원한 글을 올리면 좋을 텐데 아직 보이질 않으니 아쉽다. 미워도 다시 만나게 되는 일본, 사요나라~


왕인(王仁):백제 사람으로 일본왕의 초청을 받아 일본으로 건너가 태자의 스승으로 지내며 한문 전수 등 일본 학문발전에 기여한 분으로 일본 여러 곳에서 신으로 모시고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