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아침 무거운 눈꺼풀을 올려 창밖을 보니 새파랗게 날이 선 하늘 사이로 전깃줄이 바르르 떨고 있다. 그 사이로 날아가는 코발트빛 비행기, 오늘이 지나면 묻힐 흔적들 속에 흐르는 시간, 쉽게 버리지 못한 아픔들.. 잠시 생각에 잠겨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다 갑자기 눈이 시려 눈물이 핑 돈다.
IMF 당시 난 일 년 넘게 이곳에 머물고 있었다. LA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 그리고 공항이 있는 앨버커키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을 달리면 도착하는 해발 2000m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인구 8천의 소도시 싼타페를 만날 수 있다. 성스러운 언덕 이라는 뜻의 싼타페는 인디언 보호구역이며 리오그란데 강이 흐르는 뉴멕시코 주의 주도 이며 그곳은 지금도 엄격하게 건물 높이를 제한하고 있다. 나는 그곳의 어느 일식집에서 셰프로 일하고 있었는데 하루 열두 시간의 힘든 일과였지만 나는 평소 요리하는 것을 즐겨하며 맛집만 찾아다닌 자칭 미식가였던 덕에 마치 평생 이직 업을 업으로 삼았던 것처럼 여느 일식집의 셰프 못지않은 능숙한 솜씨로 잘 적응해가며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있어 늦은 밤까지 손님들이 끊이질 않았다. 오하이오 대학에서 미식축구 선수였다는 프랜디 와 콜라 회사 다니는 크리스가 이곳 내가 사는 집의 룸메이트 들이다.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처럼 잘생긴 프랜디는 항상 새로운 여자 친구를 데려와 소개했는데 그 여자들은 하나 같이 보통 미인들이 아녔으며 늦은 시간 일을 마치고 집에 갔을 때 향초 캔들의 향기로운 향이 거실에 가득하면 그날은 여자 친구가 와있다는 알림이었다. 늘 즐거운 표정의 그 친구 여복까지 있으니 그저 부럽기도 했지만 돈에 쪼들려 가끔 내게 돈을 빌려 갈 때면 이 세상 완벽하게 좋은 팔자를 타고난 사람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LA 가 고향인 크리스는 주말이면 텔레비전을 보며 맥주 한 상자에 대형 피자 한판을 놓고 먹는 아주 영혼이 자유로운 친구였다. 내가 오래전 군대서 배운 엉성한 태권도를 그에게 전수해주었는데 주말 아침 이면 내 앞에서 품새를 교정받는 유일하고 훌륭한 제자였다. 그리고 우리 식당서 웨이터로 일하는 폴은 대마를 피운 녀석처럼 아침부터 늘 실실 웃고 다니는 친구인데 그는 여러 종류의 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전당포에서 실탄 세일할 때면 바로 내게 연락이 와 전쟁을 치를 것처럼 많은 실탄을 사서 쟁여 놓기도 했다. 그래서 쉬는 날이면 폴과 먹을걸 싸들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팔이 후들거릴 정도로 사격을 하며 허한 가슴을 채웠고 일주일 묵은 스트레스를 날려 버렸다. 이탈리아 공수 부대 출신이며 피렌체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다 이곳까지 여행하러 와 우리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던 파비노 도 어떻게 지내는지 모두 가끔은 생각 나는 친구들이다. 특히 고기를 좋아하던 파비노는 내가 비프스테이크를 만들다 남는 조각이 있어 접시에 담아주면 어느새 사라져 뒷 주차장에서 허겁지겁 먹는 모습에 마음이 짠해 가끔은 내가 일부러 불러 고기를 건네 주기도 했는데 한참이 지난 후 피렌체로 여행 갔을 때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며 여기가 파비오의 고향인 피렌체라는 생각을 하니 느낌이 남달랐다. 오더 페이퍼를 속여 돈을 챙기다 내게 걸려 싹싹 용서를 빌던 중동 친구, 이름이 생각나진 않지만 나중엔 청소하다 미끄러져 다리를 다쳤다고 주인을 상대로 소송을 했는데 클럽에서 춤추는 장면을 목격한 직원의 신고로 결국 사기로 걸리기도 했다. 내가 좀 우울해 보이면 조용히 내 옆에 와인 한잔을 가져다 놓던 시에라는 손목에 전갈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녀가 70년대 산 나무 무늬 목의 모양을 한 오래된 클라이슬러를 몰고 샌프란시스코에서 이곳 싼타페까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는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같이 지내던 몇 개월은 참 즐거운 시간이었다. 금발의 귀여운 얼굴에 동양인 같은 작은 체형인 그녀는 어딘가 항상 슬픈 미소를 간직하고 있었다. 몇 달이 지난 후 그가 샌프란시스코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황량한 벌판에 홀로 남아 있는 오두막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떠나던 날 도시락 단체 주문이 들어오는 바람에 손 한번 제대로 잡아주지 못한 채 떠나보낸 게 늘 마음속에 미련과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그와의 인연이 거기까지 였는지 그가 적어준 이메일 주소마저 사라져 한동안 공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지내는 동안 내가 동양인이라고 차별이나 무시당한 적도 없었고 말이 별로 없던 나를 직원들은 어려워하며 조심스러워하는 눈치 여서 될 수 있는 대로 그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세상은 다 같은 건데 한국 사람들이 영어만 좀 한다면 크고 살벌한 도시를 떠나 이런 작고 조용한 곳에서 마음 편히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 또한 순박하고 아름다운 아주 작은 이런 도시에서 나는 IMF를 뒤로 한채 아무 생각 없이 지내려고 스님처럼 삭발하고 지냈지만 늘 외로움과 그리움 속에서 나의 마음은 고뇌의 연못 속에 빠져 헤어 나오기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다. 모르는 사람들은 싼타페가 멕시코 국경과 가까워 일 년 내내 더우리라 생각 하지만 그곳은 사계절이 선명하게 있는 곳으로 겨울 에는 춥고 눈도 많이 내리며 계절 따라 변하는 풍경은 그 어디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곳이다. 보석을 뿌려 놓은 듯한 밤하늘의 별과 해가 저무는 석양에 어도비 양식으로 지어진 나지막한 황토집과 산들이 노을에 서서히 물들어 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황홀하다는 탄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밝은 주홍빛이랄까, 아마도 이럴 때 노을이 섦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그 아름다운 빛에 반해 당시 일본 최고 인기 여자 배우 이자 모델인 미야자와 리에(당시 18세)는 이곳에서 누드 촬영을 했었나 보다. 하여간 이런 유명세 덕분에 많은 일본 관광객들이 싼타페를 찾기도 했다. 미국 철도 역사의 중요한 시발점이며 미국 3대 미술 시장 중 하나인 싼타페에서 일요일 이면 고급 클래식 카를 타고 카우보이 모자를 쓴 미국 노인네들이 올드타운을 누비는 모습이 무척이나 부러운 곳이었다. 컨트리 뮤직이 어울리는 이런 곳이 진짜 미국스러운 동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바호족들의 정령들이 살고 있고 UFO가 자주 출몰한다는 이곳 싼타페는 리오그란데 강의 펄떡 이는 메기들과 그림 같은 골프장 그리고 밤이 되면 아름다운 불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작은 카지노들이 있는 명상의 도시로 미국에서 세도나 다음으로 기(氣)가 강한 곳이라 들었다. 힘들었지만 나의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그곳을 잊을 수가 없어 그 지난 추억을 그려본다.
싼타페(미국 뉴멕시코 지명) 제목은 내가 결정했다. 내가 좋아하는 여성 화가 조지아 오키프와 사진작가 알프레드 스티그리츠 가 싼타페를 거점으로 했고... 나에게는 그곳이 창작의 성지였다. 리에는 당시 대단한 처녀 이자 이른바 성녀였다. 성녀를 찍는 다면 성지 싼타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미야자와 리에와 싼타페: 1973년생. 네덜란드 아버지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남. 18세 미성년자 나이로 산타페에서 누드 화보 촬영. 1991년 아사히 출판사에서 발매된 미야자와 리에의 헤어 누드 사진집인 산타페는 115만 부가 팔리는 기록을 세웠다. 그 후 당시 일본 스모의 최고 요코즈나였던 다카노 하나와 약혼 , 다시 3개월 후 파혼을 맞는 등 인생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산타페를 촬영한 사진 감독 시노야마 키신은 그때 당시를 그렇게 회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