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선택 1이유 : 선택을 단순하게 만드는 방법
사회는 때때로 악기능의 동인이 된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가 내리는 많은 선택은 사실 이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기준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한다. 아침에 알람이 울렸을 때 5분을 더 잘 것인지 곧바로 일어날 것인지와 같은 사소한 선택부터 취업을 할 것인지, 창업을 할 것인지와 같은 인생의 중요한 선택까지. 결국 우리의 삶은 이러한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역설이 존재한다. 분명 선택은 내가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가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무슨 말일까. 우리의 선택은 종종 사회가 만든 기준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사회가 만들어 놓은 가치와 관념, 그리고 군중심리가 우리의 판단을 대신한다. 우리는 스스로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미 만들어진 기준 안에서 선택하고 있을 뿐이다.
살면서 이런 장면을 자주 본다. 자신에게 어떤 길이 필요한지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다른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 말이다. 능력도 있고 의지도 있지만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이유로 꿈을 접는 사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을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좋아 보이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계속 버티는 사람. 이런 모습은 결코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 흔하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이런 선택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어 했다. 스스로도 그 일이 자신에게 더 맞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정적인 직장을 왜 떠나냐는 말, 지금도 충분히 좋은데 왜 위험을 감수하냐는 말. 그 말들은 결국 그의 선택을 바꾸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판단보다 타인의 확신을 더 믿었다.
이런 선택이 반복되는 이유는 대부분 사회적 시선에 있다. 우리 사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동의하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돈, 직업, 외모,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은 어느 순간 우리의 판단 기준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이런 선택을 하게 된다. 도의적으로 어긋나는 일임을 알면서도 돈 때문에 선택하기도 하고 내가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일이지만 더 좋아 보이는 직업,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선택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선택이 결국 나의 삶을 위한 선택이 아니라 사회를 위한 선택이 되는 순간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을 개인의 나약함으로만 볼 수는 없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기 시작한다. 학교, 친구, 직장, 사회. 인간의 삶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에 타인의 영향이 들어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영향이 지나치게 커질 때 발생한다. 타인의 기준이 나의 기준을 완전히 대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된다. 선택은 내가 했지만 그 선택의 기준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중요한 선택일수록 오히려 더 자기중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은 이기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은 결국 나여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하고 싶은지는 사회가 아니라 내가 결정해야 한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수록 사회의 기준은 더 쉽게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래서 나는 선택의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간단한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나는 이것을 ‘1선택 1이유’라고 부른다.
삶에는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선택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뒤섞여 있다. 예를 들어 이직을 고민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직을 고려하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성장이 멈췄기 때문일 수도 있고 연봉이 낮기 때문일 수도 있고 조직 문화가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회사를 선택할 때 이 모든 기준을 동시에 만족시키려 한다면 선택은 매우 어려워진다. 현실적으로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하는 선택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은 기준을 줄이는 것이다.
이 선택을 하려는 이유 중 가장 본질적인 이유 하나만 남기는 것이다. 만약 이직의 가장 중요한 이유가 성장이라면 기준은 단순해진다. 이 회사가 나에게 성장의 기회를 제공하는가 아닌가. 연봉이 조금 낮더라도, 조직 문화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성장이라는 기준이 충족된다면 그 선택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반대로 성장이라는 기준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 보여도 과감하게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기준이 하나로 정리되면 선택은 놀랍도록 단순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선택이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나의 기준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느 순간에는 사회의 목소리를 잠시 꺼두고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인생의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은 사회가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기준으로 선택하느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