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만으로 충분한가

갈고 닦음

by 황올이

요즘 내 마음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더러 있다.

우선 규칙적인 운동과 충분한 수면, 균형 잡힌 식단과 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것이다.

생각보다 자극이 덜하고 지루하기도 하지만, 꾸준히 해 나가는 중이다.

아직 폰을 덜 보고 이런 디톡스에 신경을 안 써서 그런지 도파민에 대한 욕구는 항상 존재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바로 내면의 마음가짐에 대한 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요즘 열심히 참여하는 교양 수업이 있다.

'잠언으로 배우는 삶'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원래는 교수님께서 다른 이름으로 지으시려다, 대학교 교양 이름으로는 부적절하여(아마 너무 단순한 이름이었을 것이다 - 철학토론 이런식)

한 번 거절을 당하고 고심 끝에 결정하셔서 승인된 이름이라고 한다.



나는 기독교적인 성장 배경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신앙심과는 거리가 있던 삶을 살았던 최근에 반성하는 의미에서

잠언이 성경의 그 잠언인줄 알고 이 강의를 신청했다. 실제로 잠언은 교훈을 주는 짧은 글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교회에서 만났던 분들은 대부분 집사님, 권사님들이셨는데, 친구 어머니들같은 느낌이 들었고 실제로도 친구들의 친척분들도 꽤 있었다. 인격적으로 굉장히 좋으셨고, 중고등학교 시절 망나니같던 나와 내 친구들을 다 포용해주시는 사랑을 가지고 계셨다. 그래서 이러한 수업에 관심이 있다면, 그러한 비슷한 좋은 분들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었다.


그 수업이 현재 10주차를 마쳤다. 전체의 2/3 정도 되는 지점에서 돌아보자면,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러한 교양 수업은 내가 대학에 가서 꼭 해보고 싶었던 교양다운 교양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1교시에는 교수님께서 정리해오신 한 명의 철학자에 대해 설명을 듣고, 모둠을 구성해 각자 잠언들을 읽어가면서 생각을 한다. 2교시에는 1시간 가량 각자 인상깊었던 구절이나 들었던 생각들을 나눈다. 마지막으로 3교시에는 한명씩 돌아가면서 앉아서 발표를 하게 된다.


다른 교양 과목은 3시간 내내 교수님의 강의를 듣기만 해야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라면, 철학 수업답게 이 수업은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를 요구한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러한 수업은 다른 어느 대학교에서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역시 경청하는 태도를 가지고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으며, 말하지 못했던 고민, 철학적 사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대화하는 시간이 굉장히 뜻깊다고 느꼈다. 나는 평소에도 성찰을 많이 하고 한 때는 정말 철학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지금도 어느 정도 지속되지만) 나와 잘 맞는 여 교양 수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초반에 같은 자리에 계속 앉다보니 친해진 동생도 있다. 서로 인스타도 교환하고 수업에 대한 이야기도 추가적으로 나누기도 했다.


내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을 챙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과 내에서도 족보를 나누어 준다거나, 같이 수업듣는 친구를 재밌게 해주려고 하고, 초면인 사람들 사이에서도 대화를 조금 나누어봤을 때, 괜찮다는 인상을 받으면 잘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 같다. 그러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상황에서 나 역시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저번 수업에서 '기쁨과 행복을 외적인 요소를 찾지 말고 내면에서 찾아야한다.'와 같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문구가 있었다. 그 때 나는 동의하는 측면에서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냐하면 외적인 요소는 일시적이고, 언제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귀납적으로 당신이 오늘 부자라고 해서 내일도 부자라는 보장은 없다. 오늘 해가 떴다고 해서, 내일 역시 해가 뜬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명제가 참이 되려면 과학적인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결국은 나 혼자여도 괜찮다는 마음가짐을 바탕으로 살아갈 때 독립적인 상태로 다른 사람들과 진정성 있게 교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분께서 본인은 친구들, 가족들과 만나는 게 좋고, 남는 시간에 유튜브, 넷플릭스를 보고, SNS를 하는 것에서 즐거움이 오는 것 같은데 어떡하냐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그 때 당시에는 그렇게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친구들을 만나면 즐겁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가 있으며 온라인에서의 매체 역시 많이 즐기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다는 공감을 우선 해주었고,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기 때문에 나는 방에 혼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음의 최종 방어선(방지턱)을 잡으라고 말했던 것 같다. 혹여나 무언가 갑자기 사라지더라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강조한 것 같다.


하지만 문득 떠오른 생각은 사회에 나가서는, 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사람의 조건을 많이 따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어릴 적 오래 함께했던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동반입대를 했는데, 성향 차이로 갈라서게 된 친구가 있다. 결국 현재 상태가 중요한 것인데, 그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계속 나와 만나준다는 보장이 있을까. 사회는 차갑다. 그렇기 때문에 유지하려고 하는 측면에서라도 본인을 갈고 닦는다는 표현이 아마도 맞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성장은 분명히 주변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굳이 안 할 이유는 아무래도 없다.


나 역시 내가 참여하는 수업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 지 계속 생각해보곤 한다. 그래도 같이 앉았던 분들이랑도 어렵지 않게 친해지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며, 솔직하려고 하며, 듣는 사람 입장을 한 번 더 고려해 최대한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도록 한다. 상대방이 부담스러워할 수 있는 얘기는 자제하려고 하며, 혹여나 그렇다면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수업 중에는 웃는 표정이 자주 나온다.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워지고 행복해져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추가적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칭찬과 인정을 하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항상 리더는 아니지만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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