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와 시장, 그리고 먹거리 공급망이 호르무즈 위기에 대해 말해주는 것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의 현재 봉쇄는, 세계 에너지 시장을 뒤흔들었던 거의 모든 과거의 충격과 곧바로 비교되고 있다. 그런 비교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다만 그대로 포개어 읽기에는 이번 사태가 건드리는 층위가 너무 많다. 지금 위태로운 것은 유가만이 아니다. 선물곡선의 형태, 소비 지출, 원유를 채굴하고 정제하는 기업들의 이익 구조, 세계 식량 공급, 그리고 원자재 거래를 지탱하는 국제 금융의 배관망까지 함께 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이 위기를 이해하려면, 오늘의 불안과 제도를 빚어낸 과거의 사건들로 먼저 돌아간 뒤, 그다음에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 손실이 어디까지 번질지를 가를 현재의 작동 원리를 차례로 봐야 한다.
이번 위기 이전, 기억 속에서 가장 파괴적인 공급 차질은 대체로 두 시대로 나뉘었다. 하나는 1970년대의 정치적 금수조치였고, 다른 하나는 2020년대의 시장 구조 붕괴였다. 두 시대는 서로 다른 교훈을 남겼고, 오늘의 호르무즈 봉쇄를 해석하는 기본 틀 역시 그 두 층이 겹쳐진 자리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1973년 10월, 욤키푸르 전쟁 도중 닉슨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긴급 군사 지원을 요청하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아랍 회원국들은 미국에 석유 금수조치를 가했다. 충격은 즉각적이었다. 유가는 금수조치 이전 배럴당 2.90달러에서 1974년 1월 11.65달러로 거의 네 배 뛰었다. 미국인들에게 남은 기억은 주유 행렬과 배급, 그리고 전후 경제 질서가 소수 산유국의 결정에 붙들릴 수 있다는 사실. 달러 가치 하락과 세계 경기침체가 겹치면서, 서유럽과 일본은 공동 대응보다 각자 아랍 산유국과 양자 거래를 확보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그 결과 대서양 동맹은 균열을 드러냈다.
1973년 위기가 특히 강력했던 이유는 소비국들이 거의 무방비 상태에서 그것을 맞았기 때문이다. 세계 인구의 6퍼센트만 차지하던 미국은 당시 전 세계에서 생산된 석유의 약 3분의 1을 소비하고 있었고, 국내 매장량은 이미 수년째 줄어들고 있었다.
6년 뒤, 문제는 다른 형태로 다시 돌아왔다. 1978년 말과 1979년 초 이란 유전에서 벌어진 파업으로 생산이 무너지면서 하루 약 480만 배럴이 시장에서 사라졌다. 당시 세계 생산량의 약 7퍼센트였다. 다른 생산국들이 일부 공백을 메우면서 순손실은 4퍼센트에서 5퍼센트 수준으로 줄었지만, 심리적 충격은 수치보다 훨씬 컸다. 시장은 공황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이란과 장기 계약을 맺고 있던 원유 구매자들은 대체 물량을 찾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고, 유가는 1979년 중반 배럴당 13달러에서 1980년 중반 34달러로 치솟았다.
1990년 걸프전은 같은 문단에서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세 번째 전형을 제공한다.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때 하루 약 430만 배럴이 하룻밤 사이 사라졌고, 세계의 대응은 1970년대 두 차례 위기 때보다 훨씬 빠르고 더 잘 조율되어 있었다. 앞선 재난들이 낳은 제도들이 마침내 실제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첫 공동 행동을 발동해 전략 비축유를 방출했고, 충격을 완화했다. 유가는 배럴당 17달러 안팎에서 41달러까지 뛰었지만, 연합군이 유전을 확보하자 빠르게 내려왔다. 당시 사람들은 다자 공조가 작동할 수 있다고 믿었다. 2026년의 질문은 더 크다. 그 체계가 지금 요구되는 규모에서도 여전히 버틸 수 있는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기에 또 하나의 장을 덧붙였다. 러시아 에너지 수출에 대한 위협과 유럽의 제재가 겹치면서 원유, 천연가스, 정제제품 가격이 모두 급등했다. IEA는 그해 두 차례 비축유를 풀었다. 문제는 그 비축분이 아직 완전히 다시 채워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사실이 지금 유난히 무겁게 돌아온다.
투자자들은 종종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geopolitical risk premium)이라는 표현을 듣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흐릿하게 넘기는 경우가 많다. 이 프리미엄은 공급과 수요만으로 설명되는 가격 위에 얹힌 웃돈이다. 미래의 공급 차질에 대한 불확실성을 시장이 가격표에 미리 써 넣은 결과라고 보면 된다.
이번 충돌이 본격적으로 격화되기 전부터 분석가들은 미국과 이란의 대치 때문에 이미 배럴당 4달러에서 10달러 정도의 지정학적 위험 프리미엄이 가격에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다. 갈등이 더 깊어지자 골드만삭스는, 트레이더들이 위험을 떠안을 대가로 이전보다 배럴당 약 14달러를 더 요구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더 최근의 평가에서는 이 프리미엄이 배럴당 14달러에서 18달러까지 넓어졌고, 골드만은 그것이 몇 달 동안 지속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문제는 이 프리미엄이 대단히 불안정한 성질을 지닌다는 데 있다. 믿을 만한 휴전이 이루어지거나 항로가 다시 열리면, 그것은 몇 시간 만에도 증발할 수 있다. 위험 프리미엄이 얹힌 가격에 에너지 주식이나 선물을 매수한 사람은 곧바로 본질 가치보다 비싼 자산을 들고 있게 된다. 여러 매도 측 분석가들이 경고해온 안도 랠리의 역풍이 바로 이것이다. 올해 들어 에너지 거래가 화려한 수익을 냈다 해도, 그 반대편에는 칼날 같은 하방이 놓여 있다.
주식에 익숙한 투자자에게 석유 시장은 낯설다. 주식은 하나의 가격으로 거래되지만, 원유는 수년 뒤까지 이어지는 수십 개의 월물 선물 계약으로 거래된다. 이 계약들을 일렬로 세우면 선물곡선이 만들어지고, 그 곡선의 기울기 속에는 시장이 위험을 어떻게 읽는지가 들어 있다.
선물 가격이 현재 현물 가격보다 높고 곡선이 위로 향하면 콘탱고(contango)다. 반대로 현물 가격이 선물 가격보다 높고 곡선이 아래로 기울면 백워데이션(backwardation)이다. 평상시 저장 가능한 상품인 석유는 보관비, 보험료, 금융비용이 후월물에 반영되기 때문에 완만한 콘탱고가 기본값에 가깝다.
지금 석유 시장은 가파른 백워데이션 상태에 있다. 2026년 초만 해도 유가 선물은 콘탱고를 반영했고 근월물 가격은 배럴당 60달러 안팎이었다. 그러나 지금 근월물 WTI는 99달러 부근에서 거래되고, 가격은 2026년 말로 갈수록 70달러대 중반으로 내려앉으며, 2030년대 중반에 가면 50달러대 후반에 가까워진다. 대체로 분석가들은 시장이 이번 공급 차질이 몇 달 안에 해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해석한다. 이 백워데이션은 영구적인 공급 재편이 아니라 일시적 충격을 뜻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다른 해석도 있다. 라이스태드 에너지의 자니브 샤는 지금의 곡선이 2033년 이후까지 강한 백워데이션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세계 각지에서 당장 쓸 원유를 긁어모아야 하는 압박이 얼마나 큰지를 반영하며, 시장이 곡선의 앞부분이 암시하는 것보다 더 오래가는 차질에 대비하고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한 투자 운용사는 교전이 멈춘다 해도 파괴된 에너지 인프라를 복구해 다시 돌리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며, 시장은 그 점을 충분히 가격에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투자자에게 이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백워데이션이 선물을 매수한 사람에게 긍정적인 롤 수익(roll yield)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만기가 가까운 계약을 더 높은 가격에 팔고, 다음 달 계약을 더 낮은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백워데이션이 가팔라질수록 이것은 의미 있는 수익원이 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실물 시장이 지금 극도로 타이트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시장이 당신에게 보상을 주는 까닭은 바로 그 긴박함을 대신 짊어지기 때문이다.
2020년 4월의 사건은 정반대 끝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었다. 팬데믹 봉쇄가 수요를 짓눌렀고, 오클라호마주 쿠싱의 저장시설은 수용 능력의 83퍼센트까지 차올랐다. 만기를 앞둔 WTI 계약을 들고 있던 트레이더들은 매수자를 찾지 못했다. 그 결과 근월물 가격은 배럴당 마이너스 40.32달러까지 추락했다. 37년 계약 역사상 처음 있는 음수 가격이었다. 받아줄 저장 공간이 없는 상태에서 실물을 인수하는 비용이 원유 자체의 가치보다 더 커졌기 때문이다. 현금 결제로 끝나는 브렌트유는 음수로 떨어지지 않았다. 이 괴리는 전적으로 계약 구조의 차이에서 나왔다. 선물 가격은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떠올리는 가격과 얼마든지 멀어질 수 있다.
WTI 음수 사태가 실물 저장 공간이 바닥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었다면, 2022년 런던금속거래소(LME) 니켈 위기는 단일 대형 포지션이 시장의 청산 구조를 압도할 때 어떤 혼란이 생기는지를 보여주었다. 중국의 스테인리스강 생산업체 칭산 홀딩 그룹은 공급 과잉에 베팅하며 니켈 선물에 상당한 규모의 숏 포지션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니켈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자 가격이 급등했고, 칭산의 브로커들은 손실을 줄이기 위해 포지션을 서둘러 줄이기 시작했다. 사흘 사이 니켈 가격은 톤당 2만7080달러에서 10만1365달러를 넘기며 270퍼센트 이상 치솟았다.
LME가 2022년 3월 8일 체결된 모든 거래를 취소하고 거래를 중단하기로 한 결정은 사실상 숏 포지션 보유자들에 대한 구제 조치였다. 반대편에서 거래하던 이들은 격렬하게 반발했고, 거래소가 정직한 가격 발견의 장소라는 신뢰 역시 크게 흔들렸다. 이후 영국 금융감독청은 규제 실패를 이유로 LME에 920만 파운드의 벌금을 부과했다.
오늘의 에너지 시장과 이 사건이 직접 맞닿는 이유도 분명하다. 브렌트 선물은 배럴당 110달러 부근인데, 아시아 일부 지역에서 디젤과 항공유의 실물 인도 가격은 배럴당 200달러를 넘는 수준으로 거래될 수 있다. 종이 위의 가격과 실제 배럴 가격이 이렇게 벌어지면, 원자재 거래 회사와 항공사, 정유사들이 의지하는 헤지 수단이 제 기능을 잃는다. 헤지 수단과 기초자산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베이시스 리스크(basis risk)가 발생하고, 그 결과는 마진콜과 강제 청산, 그리고 2020년과 2022년 사례가 더 작은 규모로 미리 보여준 연쇄적 스트레스다.
2014년의 유가 폭락도 기계적 혼란은 덜했지만 여기서 빠질 수 없다. 미국 셰일 생산이 급증하던 시기, 사우디아라비아는 감산 대신 시장 점유율 방어를 택했다. 브렌트유는 18개월 동안 115달러에서 3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투자자들이 그때 배운 것은 OPEC의 행동이 가격을 떠받치는 쪽에서 억누르는 쪽으로 거의 경고 없이 뒤집힐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하락의 속도 역시 상승만큼이나 난폭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미국 에너지 논의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장은 셰일 혁명이 미국의 중동 리스크 노출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수압파쇄와 수평시추가 결합되면서 2008년 이후 미국의 원유 생산은 급증했고, 순 석유 수입은 전체 소비의 27퍼센트까지 내려갔다. 1985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오늘날 미국의 석유 및 바이오연료 생산은 국내 소비의 80퍼센트 이상을 충당한다.
이 주장은 분명 현실성이 있다. 미국은 더 이상 1973년의 취약한 석유 수입국이 아니다. 그러나 석유는 세계 시장에서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이다. 미국이 그 시장과 연결되어 있는 한, 가격 충격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중동에서 거의 석유를 들여오지 않는다 해도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의 공급 차질은 세계 원유 가격을 끌어올리고, 미국 소비자는 휘발유 탱크 속 물리적 배럴이 어디서 왔는지와 무관하게 주유소에서 그 오른 가격을 지불한다.
셰일 혁명은 미국 외교정책에도 더 넓은 움직임의 공간을 주었다. 에너지 자립은 전략적 선택지를 바꾸었고, 역사적으로 미국의 의사결정을 강하게 제약하던 요소 하나를 약화시켰다. 그러나 그것이 세계적 공급 차질이 미국 가계에 전달되는 핵심 통로, 곧 가격이라는 통로를 없앤 것은 아니다. 수많은 미국인이 지금 매일 주유소에서 다시 배우는 것이 바로 그 구분이다.
2026년 3월, 미시간대 소비자심리지수는 53.3까지 떨어졌다. 2025년 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치솟는 휘발유 가격과 금융시장 변동성이 함께 가계 신뢰를 갉아먹은 결과였다. 연령과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고 소비자 기대는 약해졌지만, 연료비 상승과 주식 포트폴리오 변동성에 동시에 노출된 중상위 소득층에서 하락 폭이 특히 컸다.
대다수 경제학자는 경쟁 지표인 콘퍼런스보드 지수보다 미시간 지수를 미래 소비의 선행지표로 더 높이 평가한다. 휘발유 가격 같은 살림살이의 체감 문제를 더 직접적으로 포착하기 때문이다. 휘발유는 거의 모든 성인이 기억 속에서 곧바로 불러낼 수 있는 가격표다. 그 숫자가 뛰면, 소비자들이 그것이 오래가리라 생각하지 않더라도 단기 경기 전망은 가파르게 꺾인다. 최근 조사에서 그 단기 전망은 14퍼센트 떨어졌다.
정치적 차원도 예외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간선거를 앞두고 휘발유 가격이 지속적으로 급등하면 집권당은 큰 타격을 입었다. 2026년도 마찬가지다. 유권자들은 국내 요인에 따른 가격 상승과 해외 전쟁 때문에 오른 가격을 세밀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유기 숫자를 보고, 거기에 책임을 할당한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처지는 더 곤혹스럽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개인소비지출물가지수(core PCE)는 약 2.7퍼센트로 목표에 가까워졌지만, 에너지를 포함한 헤드라인 PCE는 훨씬 높다. 골드만은 유가가 10퍼센트 오르면 헤드라인 PCE 물가상승률이 약 0.2퍼센트포인트 오르고,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약 0.1퍼센트포인트 깎인다고 본다. 높은 유가가 운송비와 식품, 제조업 가격으로 스며들면 근원과 헤드라인의 간격은 좁아질 것이고, 연준은 1979년 볼커가 맞닥뜨렸던 딜레마 앞에 다시 서게 된다. 약해지는 경제를 향해 긴축을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기대 인플레이션이 고착되도록 둘 것인가. 골드만은 이미 이 유가 충격을 이유로 첫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을 6월에서 9월로 미뤘다.
많은 이들에게 크랙 스프레드(crack spread)는 스쳐 지나가는 용어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숫자들 가운데 하나다. 크랙 스프레드는 원유 가격과 휘발유, 디젤 같은 정제제품 가격 사이의 차이를 뜻한다. 쉽게 말해 정유사의 마진이다. 가장 널리 인용되는 3-2-1 크랙 스프레드는 정유소가 원유 세 배럴을 넣어 휘발유 두 배럴과 중간유분 한 배럴을 만든다고 가정한다.
2026년 3월, 브렌트유가 배럴당 112달러까지 치솟는 동안 정제제품 가격은 그 급등을 따라가지 못했고, 3-2-1 크랙 스프레드는 가파르게 벌어졌다. 더 싼 WTI를 원료로 사들여 브렌트 기준의 세계 제품 시장에 판매하는 미국 걸프 연안 정유사들에게 이 차이는 거대한 횡재성 마진을 안겨주었다. 밸레로, 마라톤 페트롤리엄, 필립스66 같은 하류 기업들은 페르시아만 정제 설비가 멈춰 서자 급격히 넓어진 크랙 스프레드 덕분에 방어막을 얻었다.
아시아 정유사들의 그림은 전혀 다르다. 호르무즈를 지나는 원유 대부분이 아시아로 향하기 때문에, 아시아 원유 가격의 기준이 되는 두바이 연계 원유는 배럴당 160달러를 넘어섰다. 브렌트가 100달러 부근에 머무는 상황과 비교하면, 실제 배럴 가격이 선물 가격보다 37달러에서 40달러 비싼 셈이다. 일본이나 한국의 정유사가 이런 실물 가격으로 원료를 사들여, 정부가 소매가격 인상을 억제하라고 압박하는 국내 시장에 휘발유를 팔아야 한다면 마진은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짓눌린다. 여기에 런던 보험시장의 공동전쟁위원회가 지정한 고위험 해역에 붙는 전쟁 보험료까지 더해진다. 걸프를 통과하거나 접근하는 유조선은 배럴당 몇 달러 수준의 보험 할증료를 떠안게 되고, 이는 수입 의존 정유사의 경제성을 더 세게 죈다.
IEA는 각 회원국이 순 석유 수입량 90일치에 해당하는 재고를 보유하고, 집단적 비상 방출에 참여할 준비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창설 이후 IEA는 여섯 차례 공동 행동을 취했는데, 가장 최근이자 규모 면에서 압도적으로 가장 큰 조치는 2026년 3월 약 4억 배럴을 풀어낸 방출이었다. IEA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동 비축유 방출이었다.
IEA 회원국들은 12억 배럴이 넘는 비상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고, 정부 의무 아래 쌓인 산업 재고도 6억 배럴이 더 있다. 숫자만 보면 든든한 방어막처럼 보인다. 그러나 충격의 크기를 들이대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2025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와 석유제품은 하루 약 2000만 배럴이었다. 전 세계 해상 석유 거래의 약 25퍼센트였다. 현재와 같은 방출 속도로는 이 재고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몇 주, 잘해도 몇 달이다. 1년짜리 교착 상태를 감당할 수준은 아니다.
더구나 연속 위기 시나리오를 적용하면, 24개월 안에 두 번의 대형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경우 현 체계의 공동 대응 능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2022년에 방출된 비축분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생각하면, 이 체계의 여유는 시장이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얇을 수 있다.
에너지 섹터 안에서 어디에 자리를 잡아야 할지 고민하는 주식 투자자에게, 업스트림(upstream), 즉 탐사와 생산 부문과 다운스트림(downstream), 즉 정제와 유통 부문의 차이는 공급 충격 국면에서 특히 중요하다. 지금 이 위기는 두 영역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흔들고 있다.
업스트림 기업은 유가 상승의 직접 수혜자다. 땅에서 원유를 뽑아 시장이 받아주는 가격에 팔기 때문이다. 배럴당 40달러 이하의 손익분기점을 가진 탐사·생산 기업들은 현재 가격 수준에서 막대한 잉여현금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그 돈을 어디에 쓰느냐다. RBN 에너지가 추적하는 43개 주요 상장 탐사·생산 기업은 재투자 비율을 약 43퍼센트까지 낮췄고, 생산량 증가는 정체 내지 한 자릿수 초반으로 묶어둔 채 나머지를 주주 환원으로 돌리고 있다. 상장 탐사·생산 기업들의 현금흐름은 2020년 360억 달러에서 2022년 1270억 달러라는 기록적 수준까지 뛰었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도 2021년 150억 달러에서 2022년 450억 달러로 급증했다.
지금의 횡재 국면에서도 이 패턴은 이어진다. 코노코필립스는 높은 유가로 잉여현금흐름이 더 늘어난다면 자사주 매입과 배당 확대를 통해 더 많은 현금을 주주에게 돌리는 것이 우선이라고 시사했다. 다이아몬드백 에너지는 2025년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32억 달러를 주주에게 환원했는데, 이는 조정 잉여현금흐름의 54퍼센트에 해당했다. 업계는 과잉 투자 뒤 가격 붕괴가 따라오던 사이클을 여러 번 겪은 끝에, 월스트리트가 생산 증가보다 자본 절제를 더 높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태도는 본래라면 가격을 끌어내렸을 공급 확대 반응을 오히려 제한한다.
다운스트림의 그림은 더 복잡하다. 값싼 WTI를 원료로 사들여 브렌트 기준의 세계 제품 시장에 판매하는 미국 걸프 연안 정유사들은 구조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많은 시장 참여자들은 전쟁이 짧게 끝날 것이라고 가격에 반영해두었다. 이제 전투가 장기전의 얼굴을 보이기 시작하자, 특히 소형 정유주들은 마진 기대에 힘입어 거의 포물선을 그리며 올랐다. 그런데 그 마진은 나타난 속도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실제로 PBF 에너지의 내부자들은 주가가 급등하는 와중에도 공격적으로 주식을 팔고 있다. 가볍게 넘기기 어려운 신호다.
4월부터 하루 20만6000배럴을 증산하겠다는 OPEC+의 결정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호르무즈 통과 물량 가운데 약 2000만 배럴이 막힌 상황을 생각하면, 이 증산분은 반올림 오차에 가깝다. 충격의 규모에 비하면 거의 존재감이 없고, 시장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호르무즈 봉쇄의 영향 가운데 가장 과소평가된 영역 하나는, 원유보다 훨씬 덜 주목받는 상품들이다. 국제 거래 비료의 최대 30퍼센트가 평소 이 해협을 지난다. 세계 액화천연가스 거래의 약 20퍼센트, 그리고 거래되는 황의 절반가량도 이 좁은 수로를 이용한다. 석유와 달리 비료 부문에는 공동 전략비축이 없다. 질소, 인산염, 칼륨을 위한 IEA 같은 장치도 없다. 공급이 사라지면, 말 그대로 그냥 사라진다.
비료 공급망을 이해하려면 세 가지 영양소가 서로 다른 기능을 하고, 또 서로 다른 교역 경로를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생산에 가장 많은 에너지가 들어가는 질소 비료는 천연가스를 핵심 원료로 사용한다. 따라서 가스 가격이 뛰면 질소 비료 생산비도 함께 오른다. 호르무즈를 통한 수입 의존도가 큰 나라들에는 이중 타격이다. 인산염과 칼륨은 또 다른 지리적 통로를 따른다. 인산염은 모로코가, 칼륨은 캐나다와 러시아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호르무즈라는 병목이 가장 세게 물어뜯는 부분은 질소다. 걸프 국가들이 천연가스와 요소 같은 질소계 비료의 주요 생산·수출국이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비료 공급망이 흔들릴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미리 보여주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는 함께 전 세계 칼륨 수출의 약 40퍼센트를 차지했는데, 이들이 시장에서 빠지자 비료 가격은 기록적 고점으로 솟았고, 그 여파는 전 세계 식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차이는 더 복합적이다. 호르무즈 차질은 동시에 가스라는 원료, 요소라는 완제품 비료, 그리고 인산염 처리에 쓰이는 황을 함께 건드린다. 공급망의 여러 고리가 한꺼번에 눌리는 셈이다.
특히 카타르는 예외적으로 중요하다. 세계 최대 LNG 수출국인 카타르의 화물은 사실상 이 봉쇄 뒤편에 갇혀 있다. 골드만삭스는 호르무즈를 지나는 LNG 흐름이 한 달간 완전히 멈추면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메가와트시당 74유로까지 오를 수 있고, 두 달 차질이 이어지면 100유로를 넘어설 수 있다고 추정한다. 가스 가격에서 비료 비용으로, 비료 비용에서 식량 가격으로 이어지는 이 연쇄를 경제학자들은 식량-에너지 가격 전이라고 부른다. 그것은 이미 시장에서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개념 자체는 단순하다.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식품을 생산하고 운반하고 가공하는 모든 단계의 비용이 올라간다. 현실에서는 그 충격이 고르게 퍼지지 않는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개발도상국이 가장 먼저, 가장 세게 맞는다.
식량 가격과 정치 불안정의 연결고리는 오래전부터 잘 알려져 있다. 다만 그 인과 메커니즘은 통속적 설명보다 더 복잡하다. 뉴잉글랜드 복잡계 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유엔 식량농업기구의 식품가격지수(FAO Food Price Index)가 210을 넘을 때 치명적 사회 갈등 발생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진다고 보았다. 2008년 이 지수가 180을 넘었을 때는 30개국에서 60건이 넘는 식량 폭동이 일어났다. 이 패턴은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도 반복되었고, 그 시기는 아랍의 봄과 겹쳤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에서는 시위가 정권 붕괴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국제 식량 가격이 자동으로 거리의 분노로 직선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분석은 중요한 완충 장치를 보여준다. 아랍의 봄 정치적 진앙지였던 튀니지는 국제 식품가격지수가 치솟는 동안에도 정부 보조금과 가격 통제로 국내 식품 가격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묶어두었다. 이 사례는 국제 상품 가격과 사회 불안 사이의 연결 고리가, 정부가 비용을 흡수할 수 있는지, 또 흡수하려 하는지에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치솟는 식량 가격은 사회 불안의 단독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권위주의 체제 아래 누적된 불만을 증폭시키는 촉발 조건에 더 가까웠다. 부유한 걸프 국가들이 시민에게 현금을 직접 이전하며 문제를 돈으로 눌러버릴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럼에도 더 넓은 결론은 남는다. 취약한 사회에서는 만성적으로 가난한 계층보다, 짧은 시간 안에 구매력이 급격히 깎여나가는 도시 중산층이 불안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호르무즈를 통한 비료 공급이 사실상 끊긴 세계에서는, 이런 식량 가격발 불안정의 조건이 가장 충격을 흡수하기 어려운 지역들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이번 위기에서 가장 역설적으로 들리는 주장 가운데 하나는, 이것이 석유 수요 정점(peak oil demand)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당길 수 있다는 점이다. 점점 더 많은 분석가들이 이 견해를 자신 있게 내놓고 있다. 논리는 단순하다. 역사상 모든 대형 석유 충격은 소비국들이 대체 수단에 투자하도록 밀어붙였다. 그리고 이번 충격은, 그런 대체 수단이 어느 때보다 비용 경쟁력을 갖춘 시점에 터졌다.
IEA는 이미 2026년 석유 수요 증가 전망치를 하루 60만 배럴로 낮췄다. 이전에는 2029년쯤 수요 정점이 올 것으로 보았지만, 어쩌면 그 정점은 이미 도달했을 수도 있다. 2026년 초 전 세계 전기차 보급은 하루 170만 배럴의 석유 소비를 대체하고 있었고, 위기 촉발형 전기차 수요가 아시아에서 급증하면서 이 숫자는 계속 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빈그룹이 자국 최대 가스화력발전소 계획을 접고 재생에너지로 방향을 틀었고, 한국 대통령은 전환 가속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림 전체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은 아니다. 2026년 베인의 조사에서 800명이 넘는 에너지 업계 임원들은 지역에 따라 크게 갈라졌다. 유럽의 석유·가스 리더 약 절반은 2035년 이전 수요 정점을 예상한 반면, 북미 응답자 가운데 41퍼센트는 그 시점이 2050년 이후일 것이라고 보았다. 메이저 석유회사들 역시 엇갈린 신호를 보낸다. 어떤 곳은 횡재성 이익을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쏟아붓고, 어떤 곳은 자본 절제 시대에 뒤로 밀려났던 저탄소 투자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다. 토탈에너지는 2050년 넷제로 목표를 포기했다. 반면 현재 가격 충격에 가장 크게 노출된 나라들에서 전기차, 가정용 태양광, 전기레인지 채택은 더 빨라지고 있다.
투자자에게 있어 핵심 긴장은 단기와 구조적 변화 사이에 있다. 단기적으로 보면 에너지 주식은 올해의 지배적 거래이고, 탄화수소를 채굴하고 운송하고 정제하는 기업들은 현금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중기적으로 보면 역사적 비교는 하나같이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석유 충격은 대체재를 찾는 속도를 높인다. 1973년 금수조치 이후 각국은 북해와 알래스카, 멕시코의 석유 개발에 투자했고, 오늘 시험대에 오른 제도들도 그때 만들어졌다. 1979년 충격 이후 비OPEC 국가들은 1979년부터 1985년 사이 하루 560만 배럴의 신규 생산을 추가했다. 이번에는 대체재가 단지 다른 지역의 더 많은 석유만은 아니다. 완전히 다른 에너지 기술 체계 전체가 후보이며, 그 성숙도는 과거의 대체 수단보다 훨씬 앞서 있다.
모든 역사적 공급 충격은 결국 끝났다. 1973년 금수조치는 1974년 3월 해제되었다. 1979년 위기는 비OPEC 생산이 늘어나면서 서서히 잦아들었다. 2020년의 마이너스 유가 이상현상은 48시간도 채 가지 않았다. 2022년 니켈 급등 사태는 거래소가 강제로 되감아버렸다.
그러나 각각의 해소 국면은 저마다 다른 위험을 데려왔다. 1973년 금수조치 이후 유가는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인플레이션 피해는 혹독한 통화 긴축을 통해서야 되돌릴 수 있었다. 1979년 충격 이후 볼커의 연준은 금리를 19퍼센트까지 올렸고,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를 불러왔다. 2022년 LME 사태 이후 니켈 거래량은 거래소가 일일 가격 제한과 포지션 감시를 도입한 뒤인 2024년에야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이번 위기의 경우 가능한 결과의 폭은 유난히 넓다. 골드만의 기본 시나리오는 호르무즈 통과 물량이 6주 동안 정상의 약 5퍼센트 수준에 머문 뒤, 한 달에 걸쳐 서서히 회복된다는 가정이다. 이 경우 누적 석유 손실은 8억 배럴을 넘는다. 그 시나리오에서는 브렌트유가 연말에 70달러대 초반까지 내려온다. 그러나 차질이 두 달로 길어지는 위험 시나리오에서는 4분기 브렌트유가 93달러까지 갈 수 있고, 극단적 경우에는 2008년의 기록적 고점인 약 147달러를 넘어설 수도 있다.
어느 시나리오든 결과는 에너지 섹터 바깥까지 길게 뻗어 나간다. 안도 시나리오에서는 프리미엄이 하룻밤 새 증발하고 레버리지 포지션이 무너지면서, 해소의 속도 자체가 또 다른 불안정 요인이 될 수 있다. 장기화 시나리오에서는 비료, 식품, 소비 지출, 인플레이션, 중앙은행의 신뢰, 수입 의존 경제권의 정치적 안정성에 대한 충격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밀어 올리며 증폭된다.
무엇보다 역사 기록이 말해주는 것은 에너지 차질이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여파는 위기가 신문 1면에서 사라진 뒤에도, 제도와 시장과 가계 예산을 타고 몇 달, 몇 년씩 퍼져나간다. 1970년대의 충격에 대응해 만들어진 장치들은 지금 그 설계자들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규모의 시험대 위에 올라 있다. 그 장치들이 버틸 수 있는지 여부가 2026년의 경제 경로를 결정할 것이고, 아주 높은 확률로 그 다음 몇 해까지도 좌우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