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散文)의 끝, 운문(韻文)의 시작
<시가 될 이야기 - 신지훈>
속절없다는 글의 뜻을 아십니까
난 그렇게 뒷모습 바라봤네
고요하게 내리던 소복눈에도
눈물 흘린 날들이었기에
많은 약속들이 그리도 무거웠나요
그대와도 작별을 건넬 줄이야
오랫동안 꽃피우던 시절들이
이다지도 찬 바람에 흩어지네
천천히 멀어져 줘요 내게서
나와 맺은 추억들 모두
급히 돌아설 것들이었나
한밤의 꿈처럼 잊혀져가네
날 위로할 때만 아껴 부를 거라던
나의 이름을 낯설도록
서늘한 목소리로 부르는 그대
한번 옛모습으로 안아주오
천천히 멀어져줘요 내게서
나와 맺은 추억들 모두
급히 돌아설 것들이었나
한밤의 꿈처럼 잊혀져가
별빛도 슬피 기우네요
서서히 내 마음 비추던 첫 모습의 당신
아름다웠네 그늘진 날마저
난 한 걸음마다 회상할 테죠
우리 참 많이 미련 없이 커져서
한없이 꿈을 꾸었네
별을 참 많이 세고 또 세어서
시가 되었네
길었으면서도 짧았던 2025년을 뒤로하고, 2026년의 첫 주말을 맞이했습니다. 새해 안부를 전하다 보니 문득 중학생 때 떠나보낸 외할아버지 생각이 깊게 밀려왔습니다. 어린 시절,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저는 늘 사촌과 함께 조부모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자상했던 할머니와 달리, 외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옛 어른이셨습니다. 엄격하고 무서웠던 그분 덕분에 제가 지금까지 예의 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유독 저에게만 틈을 내어주셨습니다.
매년 여름의 끝자락이면 현관 앞 무화과나무에서 잘 익은 열매를 따다 저를 비상계단으로 몰래 불러내곤 하셨습니다. 계단에 나란히 앉아 무화과를 나눠 먹으며 나누던 시시콜콜한 대화들, 시장에서 사 온 멍게나 굴을 손질하시다 웃으며 제 입에 쏙 넣어주시던 그 투박한 손길이 지금도 선명합니다.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가 멀어져 점이 될 때까지 대문 앞을 지키시던 할아버지의 침묵은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배웅이었습니다. 아마 무서운 할아버지를 피하던 다른 사촌들과 달리, 무엇이든 잘 먹고 당신을 곧잘 따르던 손주가 내심 기특하셨던 모양입니다.
중학교 여름방학 무렵이었습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설명하기 힘든 찝찝함이 엄습했습니다. 지금 할아버지 댁에 가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은 기묘한 예감이었습니다. 결국 발걸음을 돌려 찾아간 그곳에서 할머니는 지나가는 말로 "할아버지가 바지에 실례를 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연세 탓이라 여기며 가볍게 넘겼지만, 그것은 이별의 신호였습니다.
며칠 뒤 할아버지는 뇌출혈로 쓰러지셨습니다. 중학생이었던 저는 그 신호를 놓쳤다는 죄책감에 압도되어 면회조차 가지 못한 채 매일 밤을 울음으로 지새웠습니다. 하지만 끝내 상태가 악화되셨다는 소식에, 저는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고 중환자실로 향했습니다. 그곳엔 제가 알던 강인한 할아버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만큼은 웃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할아버지, 제게 살아가는 법과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생엔 꼭 제 손자로 태어나주세요. 그때는 제가 할아버지를 사랑으로 보듬고 지켜드릴게요."
그렇게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한동안 깊은 슬픔의 터널을 지났습니다. 신지훈의 <시가 될 이야기>를 들을 때면, 주책맞게도 그 시절의 공기와 아픔이 자꾸만 되살아납니다. 이 노래는 누군가에게는 연인과의 이별이겠지만, 저에게는 할아버지와의 못다 한 이야기로 읽힙니다.
오늘 퇴근길, 여러분도 이 노래를 들으며 마음 한구석에 밀려두었던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조용히 꺼내 보시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