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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국 초딩 생일파티

탑골프 파티 장소로 인기...스크린의 재발견

by 미스프리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랠리더럼 공항 근처 골프연습장. 이 연습장에는 주말마다 초등학생 생일파티가 열린다. 친구 생일파티에 참석한 아이들이 피자를 먹으면서 골프를 즐기고 있다.


"You are invited to Phoebe's birthday party at Top Golf. Please RSVP to Camila"

(피비 생일파티에 초대합니다. 장소는 탑골프. 카밀라에게 참석여부를 알려주세요.)


얼마 전 딸이 친구에게 생일파티에 초대장을 받았다. 친구 엄마는 같은 학교 선생님인데 골프장에서 생일파티를 한다. 미국식 생일파티도 경험하고, 학교 선생님과 안면도 틀 수 있겠다 싶어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탑골프는 인도어와 스크린 연습장을 섞은 미국의 골프연습장 체인이다. 인도어처럼 잔디밭을 보면서 공을 치지만, 타석에 스크린이 있어서 공의 구질을 파악할 수 있고, 여러 사람과 게임도 가능하다.


피자와 치킨 등 음식을 주문할 수 있고, 맥주를 포함한 술 종류도 마실 수 있어서 저녁이 되면 스포츠바 느낌이 난다. 중년 아저씨 이미지라고나 할까.


탑골프는 미국 중년 회사원들의 회식 장소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대학 직원들도 탑골프에서 모임을 한다.


그런데 여기서 8살 여자아이 생일파티를 한다니 궁금증이 안 생기고 배기나. 그리고 막상 구글링을 해 보니, 탑골프가 초고학년들 사이에서 생일파티 장소로 꽤 인기 있었다.


파티 당일, 오전 11시 40분쯤 골프장에 도착했다. 정문 쪽에 '8' 모양의 금색 풍선을 든 키 큰 여성과 여자애와 남자애가 보인다.


피비 엄마, 그러니까 카밀라 선생님이 생일 케이크와 생일 장식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쇼핑백을 서너 개를 바닥에 두고 아이들과 함께 땡볕에 서 있었다. 워킹맘은 어딜 가나 힘들지.


땡볕에 서 있기를 10분... 생일자(Birthday girl)를 호명하는 직원을 따라서 골프장 안으로 들어갔다. 족히 50미터는 돼 보이는 복도를 따라 드라이버 레인지(베이)가 펼쳐졌다.


각 베이 앞에는 6~8명이 앉을 수 있는 'ㄷ'자 소파나 테이블이 놓여있다. 이 지점에 30개가 넘는 베이가 있는데, 이미 만석이라고 했다. 가족 단위로 온 방문객도 많았다. 스크린 골프를 이렇게 밝게 즐길 수도 있구나.

생일파티에 신난 아이들. 웃긴 표정을 지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우리 자리의 테이블에는 피자와 치킨이 놓여있었다. 피비는 6명을 초대했는데, 5명이 왔다. '골프'라는 키워드 때문인지, 보호자로 아버지들이 많이 오셨다. 그러나 아버지들은 뭐가 부끄러운지 골프채를 아무도 안 잡았다.


카밀라 선생님도 탑골프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리고 골프도 별로 안 좋아하신다고(I am not a golf person...) 그런데 왜 여기로 잡으신 거죠. 선생님? 담임을 맡고 있는 5학년 학생들 사이에서 탑골프가 생일파티 장소로 인기가 많다고 해서 궁금했다고 하신다. 아마 가성비도 나쁘지 않았겠지?


암요 그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일자도 아닌 내가 나서서 아이들과 게임을 세팅을 했다. 그런데... 이게 꽤 새롭다. 아이들은 '슈퍼소닉'이란 게임을 선택했다.


이 게임은 골프공을 특정한 지점에 떨어뜨리면, 슈퍼 소닉이 그 지점으로 굴러가서 지정된 동전을 먹고 결승점을 통과하며 점수를 쌓는 방식이다. 동전을 먹을 때마다 또로롱 경쾌한 음악이 나와서 흥이 난다.


공을 멀리 친다고, 점수가 높은 것이 아니라 일정 스폿을 정확히 때려야 동전을 먹는데, 그 스폿을 일부러 맞춰서 칠 수 있는 실력의 아이는 없어서 게임은 산으로 갔다. 그래도 아이들은 친구들이 골프채를 휘두를 때마다 웃음꽃을 팡팡 터트린다.


지난봄여름 야구 리그에서 선수로 활동한 말릭과 작년에 골프 레슨을 받은 딸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의 공은 힘없이 바닥에 구르기 일쑤인데도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까르르르.


중간에 추가로 주문한 피자와 나초칩이 나오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해치우고는 다시 골프채를 잡는다.


어른 팀에는 피비 오빠인 피터슨과, 나, 피비의 할머니가 겨뤘다. 굴욕의 연속이었다. 흑인이 운동신경이 좋다는 말은 들었지만, 골프채 처음 잡는다는 할머니가 구력 4년인 나보다 더 멀리 공을 보냈다.


그리고 그렇게 2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곳은 골프를 컴퓨터 게임으로 재해석한 인기만점 오락실이었다. 골프채로 공을 맞추는 게 어려워서 아이들이 좀 힘들어했지만 익숙해지니 다들 너무나 즐기는 모습이었다.

사전에 계획했던 카밀라 선생님과의 친분 쌓기는 큰 성과가 없었고, 초등학생들에게 골프 훈수만 두다가 하루가 끝났지만,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카밀라 선생님이 구디백으로 준비한 달러트리 솜사탕과 야광봉도 인상 깊었다. 선생님 엄마는 아이들 마음을 역시 잘 안다.


딸의 생일파티도 탑골프에서 할까 심각하게 고려 중이다. 홈페이지에서 견적을 내 보니 8명~10명 참석 기준, 스크린 골프 라고쓰고 골프오락이라고 읽는다 2시간에 피자 맥주 세트 메뉴 포함해 300~400달러 정도가 든다.


케이크랑 구디백까지 준비하면 500달러는 너끈히 들 거 같은데.. 어쩌나.. 좀 더 고민을 해 봐야겠다.


프롤로그

일주일 전, 아이가 들고 온 핑크색 생일파티 초대장에 내가 뛸 듯이 기뻐했다. 나에게 딸의 생일파티 초대장은 숙원 사업이었다. 교회 친구는 미국에 와서 한 달 만에 생일파티에 초대받았다는데, 딸아이는 초대장을 받는데 9달이 걸렸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초대'는 한 그룹에 일원으로 받아들인다는 사회적 신호다. 올초에는 얼마나 마음이 답답했는지, 생일 파티에 초대받기 전까지는 우리 가족은 '미국'이라는 사회에 발을 들이지 못한 것이라는 황당한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게 획득한 생일파티는 사회적 활동과는 무관하게 엄마와 딸이 신나게 골프채를 휘두르다 온 것으로 끝났다. 막상 다녀오니 '생일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과 함께 '미국 이게 뭐라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이렇게 즐겁게 놀다 가면 된다! 복잡하게 생각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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