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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탄고도1330, 그 길을 걷다

여름은 여름이었다

by 맛깔전종만

강원도에 있는 ‘운탄고도1330’에 트레킹을 다녀왔다. ‘운탄고도’는 석탄을 운반한다는 뜻의 ‘운탄’과 높은 곳이라는 의미의 ‘고도’가 결합된 말인 것 같다. ‘1330’은 전체 길 중 가장 높은 곳인 함백산 만항재의 고도에서 따왔다. 함백산은 우리나라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1,573m)으로 트레킹 코스의 한 지점인 만항재 높이와 정상의 차이는 243m이다.

운탄고도1330 5길 끝(우리 행뚜 트레킹 시작점)

운탄고도는 걷기에 최고의 트레킹 코스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우리 ‘행복한 뚜벅이’ 모임도 여러 차례 계획했지만, 그때마다 사정이 생겨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여름에 다녀오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에 기대를 갖고 행뚜 대원 8명이 길을 찾아 나섰다. 운탄고도1330은 영월, 정선, 태백, 삼척을 아우르는 폐광지역의 임도를 걷는 코스다. 총 9구간(미개통 2구간 포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평균 고도는 546m, 전체 길이는 173.2km에 이른다. 영월 청령포에서 시작해 삼척 소망탑까지 이어지는 이 길은 과거 석탄을 실어 나르던 차도(임도)를 따라 걷게 된다. 지자체에서는 광부들의 고단함을 기억하고, 그들이 대한민국 부흥의 주역이었음을 알리고자 이 트레킹 코스를 조성했다고 한다.


우리는 1박 2일로 계획했다. 전체 코스를 완주하려면 여러 차례 방문해야 하기에, 이번에는 4·5코스 약 42km를 걸었다. 청량리에서 아침 7시 20분 무궁화호를 타고 고한역에 도착해, 구수한 청국장과 김치찌개, 그리고 지역 막걸리로 배를 채웠다. 식당 주인장의 말로는 45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계신다고 한다. 음식도 훌륭했지만, 주인장의 구수한 말솜씨와 후한 서비스도 인상 깊었다. 고한읍에서 함백산 소공원 망향재까지 택시로 10km를 이동했고,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쯤이었다. 오늘은 15.7km를 걸어야 했다. 산길을 걸을 때는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어둠이 빨리 찾아와 길을 잃거나, 꽃구경 등으로 지체되면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 길은 석탄을 실은 트럭이 다니던 널찍한 임도라 걷기에 아주 좋았다.

대원들

TV나 유튜브에서는 광부들의 삶과 장소를 이렇게 표현한다. “광부들의 땀과 피가 서린 곳, 석탄을 캐고 갱 밖으로 나오면 탄가루에 뒤덮여 서로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1970~80년대 대한민국의 부흥기, 이들은 분명 주역이었다. 여름을 피해 간다고 선택한 운탄고도였지만 여름은 여름이었다. 서울보다, 그리고 산 아래 마을인 고한읍보다 시원했지만, 500 고지 이상인 이곳도 여름을 완전히 숨기진 못했다. 다만 석탄을 나르던 길은 시원하게 뚫려 있었고, 쭉쭉 뻗은 소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 덕에 쉬어가며 걸을 수 있었다. 간간이 불어오는 고지대의 바람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온몸은 땀범벅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부들의 노고가 서린 이 역사적 현장에서 흘린 우리의 땀방울은 분명 ‘행복한 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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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탄고도 5구간은 만향재(함백소공원)에서 ‘꽃을 꺾는다는 뜻’의 꽃꺼끼재(화절령)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에서는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했던 산중턱의 도롱이 연못, 우리나라에서 가장 고도가 높은 갱도인 1177 갱도도 지나게 된다. 4구간은 화절령에서 타임캡슐공원까지의 코스였다. ‘겨울 같은 여름’을 기대했지만 기대에 못 미쳐 아쉬움이 있었다. 대신 숙소에서의 새벽, 대원들과 이불과의 전쟁(?)으로 만족해야 했다. 나머지 구간은 일정상 다음으로 미뤄야 했지만, 힘들면서도 참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1177갱도

한 대원이 청량리역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을 메시지를 잘못 읽고 서울역으로 가는 바람에, 우리보다 늦게 기차를 타게 되어 우리 반대편에서 걷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서둘러 앞서 가다 길을 잘못 들어 꼭 봐야 했던 1177 갱도를 보지 못한 아쉬움도 남았다. 트레킹을 마친 뒤 숙소나 기차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사북읍 주변 카지노의 개·폐시간과 겹쳐 택시 호출이 되지 않아 꽤 고생하기도 했다. 둘째 날은 택시를 불렀지만, 읍내 몇 대 되지 않는 택시들이 다른 곳에서 운행 중이라 올 수 없다는 소식에는 망연자실했었다. 수소문 끝에 간신히 도착한 택시는 엉뚱한 친절(?)을 베풀었고, 결국은 기사와 함께 약간의 불법(?)을 저질렀지만 감사함이 앞서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었다.(공개할 수가 없어 많이 아쉬움)

산딸기를 간식으로

여행은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기대되고, 또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여행은 때로 기대와 달라 실망스럽기도 하고, 반대로 기대 없이 떠났다가 뜻밖의 큰 감동을 받기도 한다. 이번 여행은 오히려 기대 없이 다녀왔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걷지 못한 나머지 구간도 꼭 완주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여름이 아닌 가을에 다시 걷는다면 더 좋겠다.

넘고넘어 가야 할 나의 길
그늘을 만들어 준 숲
고냉지 배추밭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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