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책을 펴고 하염없이 책장을 넘긴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살고자 넘겼다. 일에 치이고 사람한테 치였다.
그렇게 넘긴 책들은 그저 읽음에 머물렀다.
다시 꺼내 본 내용은 알 듯 말 듯 헷갈렸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책은 자기계발이 아닌가?
사실 책은 돋보기에 불과하다.
돋보기를 손에 든 채 그저 똑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다.
들여다보니 보인 것은 책 내용이 아닌 내 변명이었다.
내면을 본다는 건 불편한 진실을 일부러 들추는 것이다.
나는 돋보기로 드디어 처음 나를 들여다보았다.
이제껏 일에 지쳐 쉬고 싶어서 일을 구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사실 내면에서는 사람이 무서워 일을 구하지 못했다며 울부짖었다.
사실 모르는 척하는 거였다.
내가 순간 홧김에 하는 말들, 입에 버릇처럼 붙은 말들을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 질문에 답이 명쾌하지 않다면 자기기만이 아닌지 들여다봐야 한다.
그때부터 나는 자기기만에 대해 계속해서 팠다.
파면서 알게 됐다. 자기기만을 모른 척하는 것과 모르는 거는 천지 차이였다.
알고 있다는 그것만으로 언제나 고칠 수 있다는 마음이 들 때쯤이었다.
“알고 있으니 언제나 고칠 수 있다.”라는 생각이 변화를 유예시키는 새로운 자기기만이었다.
자기기만은 그저 악인가?
전혀 아니다. 나는 자기기만을 들여다보려 스스로를 몰아세웠다.
그러다 보니 결국 자기비난으로 빠져드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남들도 다 똑같다는 자기기만이 나를 살렸다.
그리고 나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이 날아왔을 때도 “나는 원래 이래”라고 잠시 막았다.
자기기만은 하나의 브레이크이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기만이라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야 잠시 쉬어가는 것이지. 인지하지 못하면 굳어가는 것이다.
아직도 사람들과 대화 중에 욱하게 된다.
순간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 관찰하는 눈이 같이 켜진다.
그 감정에 물음의 답이 명쾌하지 않으면 다시금 자기기만을 점검한다.
나는 여전히 파는 중이다.
명쾌한 답이 없는 곳은 표시해두고 간다.
파야 할 굴은 남아 있고, 타이밍은 내가 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