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돌.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를 돌로 쳐라.”
이 말의 통상적인 해석은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떳떳한 사람만이 비판할 자격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돌은 처벌을 뜻한다.
그렇다면 정말 돌은 던지면 안 되는 걸까?
어두운 마음은 누구나 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 행동이 실현되는 순간 결과로 이어진다.
평생 가정폭력을 당하던 아이가 끝내 아버지를 살해한 이야기를 예로 들면,
이 사건만 봤을 때 “나라도 그랬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그 마음은 공감이 간다. 하지만 그 공감, 즉 이해는 면죄가 아니다.
우리 또한 그런 마음을 가졌기에 공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다. 잘못된 것이라 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 생각은 이해하되, 행동으로 옮긴 결과는 비판해야 한다.
여기서 성경의 돌을 다시 보자.
돌은 국가가 내린 처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 다른 돌이 있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악플, 공개적 망신, 여론 재판 이 또한 또 다른 돌이다.
비판은 판단을 말하는 것이고, 제재는 처벌처럼 피해를 가하는 행위다.
우리는 잊고 있다.
개인은 심판자가 아니다. 심판과 처벌은 국가에 위임되어 있고
우리는 처벌의 권한을 국가에 위임한 시민이다.
심판을 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이 정의를 구현 못하면 어떻게 하나?
그렇다 해도 심판의 자격이 개인으로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법이 문제면 국가를 비판하고 청원을 하여 고쳐야 한다.
당장의 분노가 사적 제재로 번지는 것만은 경계해야 한다.
개인은 여전히 심판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가?
비판을 무조건적으로 못하는 것은 아니다.
지인들과의 사적 비판. 그것은 가능한 범주에 있다.
피의자와 피해자, 그 외 관계자들에게 닿지 않는 비판이기 때문이다.
만약 사적 대화가 당사자들한테 닿는다 하더라도
내가 한 것은 제재가 아니라 비판이었다면, 전달되어 제재가 되는 순간부터는 다른 행위의 책임이다.
내가 던지지 않은 돌을 누가 가져다 던졌는지를 봐야 한다.
이제는 돌을 내려놓는다.
하지만 판단과 책임의 원칙은 놓지 않는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