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미래
어릴 적 들었던 말이 있다. 나이가 든다고 아픔을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고, 조금 더 내색하지 않고 견뎌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거라고.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힘들면 그냥 울면 되지만, 성인이라는 이름표가 붙고난 후에는 고통은 집에서 혼자 있을 때만 표면적으로 보일 수 있다. 분명 어릴 적의 고통보다는 성인이 되고 나서의 고통이 몇배는 더 센 정도일 텐데, 우리의 성인들은 고통을 참 잘 참는 걸까.
최근 가파르게 치솟는 집값과 물가에 이제 막 20대가 된 대학생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2~3년이 된 30대 사회초년생까지, 2030세대들이 느끼는 고통은 어느정도일까. 서울에 직장이 있다면, 아무리 저축을해도 서울에 아파트는 살 수 없다는 건 기정사실화 되었다. 월 100만원, 200만원 저축하여 차곡차곡 모아 전세살이를 하다가 첫 집을 마련하는 예전 부모님 세대의 자산을 늘려가는 긴 사다리는 이미 끊어진지 오래다. 매일 나오는 경제신문에서는 가계부채가 사상최대를 기록하고 있어 은행의 대출을 옥죄고 있다. 특히 2030세대의 신용대출 및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하게 늘었는데, 어떻게든 끊어진 사다리를 붙잡고 싶어하는 이들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부모의 지원을 받지 않는 이상 2030세대들은 모아둔 돈이 없다. 투자에서는 시드가 중요한데, 이들의 적은 시드로는 치솟는 아파는 가격과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을 수 없다. 끊어진 사다리라도 붙잡고 싶은 이들은 신용대출과 주택담보대출을 최대한 받아 레버리지를 이용한다. 비트코인과 아파트 영끌 현상이 대표적이다.
위의 현상은 자산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출산률 0.8에 달하는 지금, 2030세대들의 결혼에 대한 생각,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에 대한 생각은 사치가 되어버렸다. 당장 혼자 먹기 살기에도 빠듯하다며 연애도 포기하는 세대가 현재의 2030세대이다. 부모의 도움 없이는 서울에 전세 아파트 하나 마련하는 것조차 힘들게 됐고, 영끌을 해서 마련했다고 해도 경제적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나와 똑같은(아마 더 힘들게) 삶을 살아갈 것이 예정된 아이를 낳는 것에 2030세대들은 회의적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앞으로의 양극화는 현재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고, 경제적 변화가 없는 이상 아이의 삶은 현재의 나의 삶보다 힘들 확률이 높다.
현재 나의 나이가 30살, 2030세대의 중심에 속한다. 내가 속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현재 2030세대보다 더 열심히 살았던 때가 있을까. IMF 또는 그 전에 더 힘들었다고 하면 겪어보지 않아서 할말은 없지만, 현재의 2030세대들도 고된 시기에 살고있는 것은 분명하다. 서점에 가면 'N잡러'와 관련한 책들이 베스트셀러이고, 유튜브에는 '스마트스토어'와 관련한 영상이 인기동영상이다. 직장에서 퇴근하면 시간을 쪼개어 임장을 다니고, 부업을 하고, 주말에 배달을 다니고, 자격증 공부를 하며 쉬어야 하는 주말까지 끊어진 사다리를 끄트머리라도 잡기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파이어족'이라는 단어까지 생기며 극단적으로 급여의 90%를 저축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날 정도이다.
직장을 다니며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틈틈이 개인 블로그도 작성하고, 헬스장에서 운동도 하고, 비트코인 투자도 공부하고, 반려동물 산책도 시키며 꽤나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이 무력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마음만 조급해진 것일까. 주말에는 늦잠도 자고 여유도 부리며 이불 속에 있고 싶은데, 앞으로 달려도 제자리이고 가만히 있으면 뒤로 가는 것 같은 기분이라 주말에도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열심히 사는 것과 무력함이 계속 쳇바퀴처럼 반복된다. 현재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모토였는데, 매일매일을 조금 더 나아질 미래를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이 무력함이 조금은 나아질까,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나아질까, 전에 배우던 기타를 다시 배워보면 조금 나아질까, 어떻게 하면 이 무력감을 떨쳐낼 수 있을까 계속 생각하고 새로운 것들은 시도해본다. 꽤나 고민이 깊어지는 비오는 날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