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등 켜진 동굴에 들어와 랩탑을 켠다
'i apologize for my action'
너를 위해 멈추지 않고 만든 플레이리스트를 함께 보냈다.
내심 답장을 기대하긴 하지만, 그렇게 질척거릴만큼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의 답장이다.
사실 선물이겠지.
너가 혹여나 아프거나 위태롭지 않을까 염려가 들다가도 다시 머릿속에서 지워내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네가 잘 지낼 걸 직관한다.
무엇을 더 두드릴 수 있을까.
이 비좁은 공간에⋯⋯
원하는 게 있냐고 너는 자주 물었다. 그 하루 사이에 우린 서로를 빠르게 알아갔다. 거부감 들지 않게.
'피톤치드 향이 나는 방'
'너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응, 조그만해도 상관없어, 피톤치드 향이 나면 돼'
너는 가슴 깊이 동감했고,
'그리고 차, 좋은 음악 들으며 실컷 드라이브하고 싶어'
네 차가 수리 완료되면 같이 맘껏 음악을 틀고서 돌아다니자고 약속했다
약속이었을까,
우리가 했던 건,
깨어서 꿈을 꾸었던 걸까.
넌 돈을 많이 벌고 싶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소중한 선물을 건네고 싶다고.
그놈의 영화도 찍고⋯ 그래 단 한 편일지라도, 그 완벽한 프렌치 향이 나는 영화를⋯⋯
우린 프랑스 버전의 테넷같은 영화를 찍을 것 같다- 그게 우리에게 어울리니까
네가 웃는 모양이 어땠는지 어렴풋이 잔상에 남는데, 벌써 많이 흐려졌다
딱히 거창한 무엇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의 만남이 그랬으니까
그냥 너랑 다양한 음악을 즐기면 놀고 싶을 뿐이다
이 글을 네가 나중에 볼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영광일텐데,
만약 그렇게 된다면 ENDLESS SUMMER - JOHN SCOFIELD를 들으며 우리는 함께 어디 자연 경이로운 곳에서 여행을 함께 하길 바라
너는 비전이 있는 사람이다 글자 그대로 비전을 보는 사람이야,
무엇에 하나 취하지 않고서 그런 영적인 체험은 너하고 처음이 아닐까
육년만이라고 했다
그토록 교감이 본능적이었던 상대가
프랑스어를 중얼거리는 사람이 저기 바에 앉아있다
너가 옆에 있었다면 내게 번역해 주었을까, 우린 다함께 말을 섞고 재밌는 시간을 보냈을까
16분이 남았다
아마 온전히 너만을 떠올리며 이렇게 글을 써내릴 수 있는 시간은 이게 마지막일지 몰라
촛농이 골반과 엉덩이에 떨어지는 포스터가 붙어있다
페도라를 쓴 검을 뿔테 안경의 조끼 차림의 사나이는 잔을 들이키고 어깨가 뻐근한지 스트레칭을 한다
바로 옆의 또 다른 페도라 사나이는 담배를 멋스럽게 펴댄다
너가 끽연이라고 했나
프랑스의 길거리에 멋드러지게 태우는 여성들을 보며 담배를 피게 되었다 했지
오늘 인사동 한복판에서 노래와 키보드 소리에 감화되어 걸음을 멈춰세웠다
진기한 인연이었어
십오년 넘도록 업으로 그렇게 거리에서 노랠 불렀다
처자식이 있다
10개월 된 아들을 보여주고 그는 연기를 뿜어대며 힐쭉 웃는다
아이가 스무살이 될 때까지 그는 상당히 금욕적인 삶을 구가할 것이다
애가 스무살이 되는 순간 부자는 맞담배를 태울 거다.
담배가 아닐지도 모른다
둘이 사랑하게 될 연기를 허파에 집어넣고는 아름답게 노랠 부를 것 같다
그는 시카고에서 태어났고, 뉴욕에 살았다
국내에서도 꽤 살았다
그런 그의 말투는 미국 교포놈처럼 어눌하다
내 친구가 그가 키보를 치는 폼을 보고는 독특하다고 좋아했다
내가 왜 그에게 끌렸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는 꼭 빌 에반스처럼 건반을 두드리고, 노래를 했던 거야.
그렇게 투박하면서 진솔한 사람을 오랜만에 거리에서 만났다
편의점이든 골목 구석에서든 한 자리에 앉아 줄담배를 푹푹 펴대며
재밌게 말을 이어가는 그가 마음에 무척 들었어
사실 나는 그의 노래를 들었던 적이 있단 말이야
그는 꽤 오랫동안 거기서 노랠 불렀으니까
그래, 봤던 적도 있었어
왜 우린 이제서야 서로 말을 섞고 친구가 된 걸까
다 때가 있는 거겠지?
우리의 때는 언제일까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해도, 그대로 온전한 것 같다
그래도 너와 다시 연이 닿을 수 있다면, 나는 널 이 홍등굴로 데려올 거야
이 안에는 더 깊은 굴이 안쪽에 있고,
우리는 서로가 간직해 온 본능과 욕망에 충실하면 된다
술은 마시지 않을 거야
우리는 여기서 요가를 해도 좋지 않을까
쳇 베이커의 다큐를 본 적이 있어?
그를 사랑했던 여성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
그의 처자식이⋯⋯
2016년 겨울밤에 화포 조종수석에 앉아서 Lament를 들었던 때가 선명해
우리는 쉽게 부서지지 않을거야
별들이 우릴 위해 노래할 거고
시간은 반으로 접힐거야
이게 무슨 뚱딴지 소리냐 할 테지만
물리를 잘 모르는 나로서는 이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시간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대
우리는 서로가 되어, 모든 의식 갖춘 만물이 되어 다시 태어나고 섞이고 죽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