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이태리

by 여섯달


1

바다를 그리 좋아해 본 적이 없고 푹 빠져본 적 없다

빠져 허우적대며 질겁한 적은 있다

숲과 산이 꼭 맞았지, 천과 호수는 편해

강은 익숙하고, 바다는 너무 광활하다


전연인은 수중에서 떠다니며 깊숙이 들어가길 사랑했다

자궁처럼 고요하고 평안할까

내 절친도 거길 그렇게 좋아했다


나는 헤엄치는 것부터, 물과 살가워지는 것부터 익혀야 한다


2


'크리스마스에 뭐할 거야?'

'음, '


여자애는 사백페이지 가량 자전적 소설을 썼다고, 내년에 펴낼 계획이라 했다

'자신 있어?'

'좋은 책이 될거야'

'어떻게 알아?'

'나는 좋은 독자니까. 좋은 작가가 되려면 좋은 독자가 우선 돼야 해.'

'나는 아닌데.'

나를 그녀가 휙 쳐다본다

'책을 제대로 못 끝내. 요즘은 특히. 여러 책 펼쳐놓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결국 하나를 제대로 끝내지 못해'

'나도 밍기적거릴 때가 있는데, 그래도 꼭 펼치면 끝은 내.'

나는 잠자코 앉아 강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뿌연 하늘과 도시 찌꺼기가 저멀리 뒷편에 걸리는 강을.

무지 배고팠다. 힘이 없다. 카페인이 모조리 떨어져 버렸나.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만들거야?'

'나는 살생 안해'

'조그만 것 가짜 하나 구하면 되지'


'나쁘지 않네'

난 대화를 이을 기력이 없다


'크리스마스, 참 좋지!'

캐롤 음악이 들리는 아늑하고 따뜻한 방, 정겹게 반짝거리는 트리,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핫 초콜릿. 향이 물씬 풍긴다

'핫 초콜릿이 마시고 싶네'

'핫 초콜릿?'

'지금 너무 피곤해서 찾아 마시질 못하겠다'


'너, 어떡할거야'

'집에 갈거야. 글을 끝내야지'

'나 곧 가야해'

'그래, 가자'


우리는 벤치에서 일어났다. 역으로 걸어가는 중에,

'틱톡 안해?'

'그런 거 안해. 난 그 세대가 아니야'

그녀는 춤짓을 하나 해보인다

꼴 사나운 동작이었다

'정말 요즘 세대구나. 너 몇 살이지?스물일곱이었나?'

나는 혀를 찰 것만 같은 얼굴을 지어보였다

'너도 엠지에 속하잖아'

'그렇긴 하지. 가장 끄트머리에. 그래도 난 올드한 걸 좋아해서 요즘 걸 잘 몰라.'

'나도 빈티지 좋아하는데?'

'빈티지, 좋지.'






광화문역에서, 엘리베이터 앞에 늘어선 무리를 본다. 직장인들이 다분하겠지. 맨 뒤에 휠체어 탄 남자도 기다린다. 한참 기다려야 할테다. 저기로 떠밀렸나, 끄트머리에 늦게 도달했을 게다. 사인이 보인다. 노약자와 장애인 우선이라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제 살길이 가장 바쁘다. 특히 퇴근시간대에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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