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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잠시만녀 Jun 13. 2024

Miryang




     겨우 십삼 년 살아낸 아이.

고통받는 순간 도움의 손길이 너무도 간절했던 소녀 앞에 진짜 어른이 나타나 주었더라면. 네 잘못은 없다 하며 고개를 들고 나를 아프게 한 당신들 저주한다 나는 용서하지 못하겠다 크게 악이라도 내지를 수 있도록 이 나라가 소녀의 손을 잡아 주었더라면. 폭력을 지독하게 과시하던. 도덕적으로 결여된 무용한 머리를 이고 지껄여 대던 방자하고 야만적인 인두겁  마흔네 마리. 그 뒤에 선 생채기 난 울고 있는 소녀의 행실을 손가락질하는 무뢰(無賴)들 중에 바른말로 기염 하는 참된 어른 따위 없었다.

차라리 잊어버리려 발버둥 쳐도 쉼 없이 찾아드는 서슬 퍼런 눈동자. 비수같이 날아오르는 침 튀기는 전쟁 같은 순간. 시커먼 입술과 뱀과 같은 세 치 혀는 아이를 두 번 찢어냈다. 이십 년의 세월이 흘러도 당신들은 여전하겠지요. 과거 그때처럼 살기 가득한 독을 누군가에게 뿜어내겠지요. 그리 살아왔듯이.

   기울어진 힘과 권력의 횡포가 아이의 심장에 켜켜이 쌓여 찢어지고 깊어지는 상처. 딱지가 내릴 틈도 없이 지옥 같은 모멸을 복기해야 했을 이십 년. 쓰라린 고통의 기억을 감내하기에 꽃잎같이 여리고 힘없는 어린 소녀가 겪어야 했던 수모는 깊은 상흔이 짙게 남는다. 열세 살 소녀의 길고 어렵고 외로운 싸움. 처참했던 악행들을 비웃으며 돌아서던 이기적인 어른들을 견뎌낸 시간. 피 흘리는 피해자에게 여전히 가혹한 이 나라와 아직도 그림자 뒤에 숨어 들쥐 같은 눈초리로 관망하는 냉담한 그 도시. 소녀의 울분과 뜨거웠던 눈물은 지독한 업보가 되어 당신의 영혼 아주 깊숙한 곳에 내려앉길. 가해자와 가족들은 온전히 죗값 치르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언젠가는 아픔을 누에고치 벗어던지듯 세상으로 나와 아름다운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길. 그때 그 아이에게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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