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 ‘증명’의 시간

: 우리는 왜 여전히 돈을 못버는가

by Just Hang


AI, 데이터, 의료. 세 단어의 조합은 실패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한때 ‘가능성의 시대’를 열었던 디지털 헬스케어는 이제 냉혹한 ‘증명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장밋빛 미래를 외쳤지만, 정작 ‘돈을 버는 기업’은 손에 꼽힌다. 시장의 기대는 차갑게 식었고, 투자자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 글은 뜬구름 잡는 성공 신화 대신,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이 마주한 차가운 현실을 파헤친다. 성공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의 결정적 차이를 비교하고, 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진짜 공식이 무엇인지 숫자를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1. 생존과 증명: 루닛과 뷰노의 엇갈린 흑자 시그널


시장은 더 이상 기술의 ‘혁신성’에 열광하지 않는다. 대신 ‘지속 가능한 매출’과 ‘수익성’이라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한다. 이런 관점에서 현재 국내 시장을 이끄는 루닛과 뷰노는 가장 주목할 만한 사례다. 두 기업은 가파른 매출 성장을 이뤄내며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과 엇갈린 현실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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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닛은 2025년 3분기까지 566억 원이라는 압도적인 매출을 기록하며 외형 성장에 성공했다. 특히 지난해 인수한 ‘볼파라’가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고, 전체 매출의 92%가 해외에서 발생했다. 이는 국내 시장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 특히 미국 시장을 공략한 결과다. 하지만 화려한 매출 성장 뒤에는 여전히 막대한 영업손실이 존재한다. 루닛은 2027년이 되어서야 완전한 흑자 전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규모의 경제’를 통한 수익성 확보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뷰노는 2025년 3분기, 10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비록 분기 기준이지만, 국내 의료 AI 기업이 자력으로 흑자를 낼 수 있다는 첫 번째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뷰노의 성공은 ‘뷰노메드 딥카스’라는 확실한 캐시카우 덕분이다. 일반 병동에서 환자의 심정지를 예측하는 이 솔루션은 병원의 니즈를 정확히 파고들었고, 안정적인 구독형 모델로 이어졌다. 루닛처럼 해외 시장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도 국내 시장에서 수익 모델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기업의 사례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의료기기 인허가(SaMD)’를 기반으로 ‘병원 B2B 구독 모델’을 구축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가야만 생존을 넘어 성장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2. 현실의 벽: 딥노이드와 라이프시맨틱스의 ‘플랜 B’


모든 기업이 루닛이나 뷰노처럼 될 수는 없다. 더 많은 기업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생존을 위한 ‘플랜 B’를 가동하거나, 아예 시장에서 퇴장하고 있다. 딥노이드와 라이프시맨틱스는 그 현실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딥노이드는 의료 AI만으로는 생존이 어렵다는 현실을 일찌감치 인정했다. 이들은 의료 AI 사업을 유지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수익 확보가 용이한 ‘산업 AI’ 분야를 병행하는 투트랙 전략을 선택했다. 2024년 기준 딥노이드의 매출은 오히려 감소했고, 100억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최근 179억 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급한 불을 껐지만, 이는 기술력이나 시장성이 아닌 ‘자본 수혈’로 연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딥노이드의 전략은 ‘순수함’ 대신 ‘생존’을 택한 현실적 선택이지만, 그만큼 의료 AI 단독 사업의 어려움을 방증한다.


라이프시맨틱스의 사례는 더욱 냉혹하다. 국내 1호 디지털 헬스케어 상장사라는 타이틀을 가졌던 이 회사는 개인건강기록(PHR) 플랫폼을 중심으로 사업을 펼쳤다. 사용자는 모았지만, ‘누가 돈을 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결국 지속적인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경영권을 매각했으며, 최근에는 우주항공 분야로 사업을 전환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플랫폼’과 ‘의료기기’는 시장에서 전혀 다르게 평가받으며, 명확한 지불자(Payer)가 없는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다.


3. 보이지 않는 장벽: 왜 우리는 여전히 돈을 못 버는가


개별 기업의 전략 실패를 넘어, 시장 전체를 가로막는 구조적인 장벽이 존재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개발해도, 이 장벽을 넘지 못하면 수익 창출은 불가능하다.


첫째, ‘낡은 규제와 보상 체계’다. 식약처 허가를 받아도 신의료기술평가, 보험 등재라는 첩첩산중이 기다린다. 특히 현재의 ‘행위별 수가제’는 AI 솔루션이나 디지털 치료기기(DTx)의 가치를 제대로 보상해주지 못한다. 의사가 DTx를 처방해도 얻는 인센티브가 거의 없고, 환자 부담은 크다. 현재 6개의 DTx가 허가받았지만, 보험 급여가 적용된 사례는 전무하다. ‘혁신’을 외치지만, 제도는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둘째, ‘데이터의 벽’이다.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은 여전히 폐쇄적이다. AI 솔루션이 병원 시스템과 원활하게 연동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데이터 표준화가 이뤄지지 않으면 AI의 성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셋째, ‘좁은 내수 시장’이다. 낮은 수가와 강력한 규제로 가득한 국내 시장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다. 루닛의 사례에서 보듯, 결국 생존의 답은 미국을 포함한 글로벌 시장에 있다.


맺으며: ‘무엇을 파는가’보다 ‘누가 쓰는가’


국내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은 ‘가능성’의 단계를 지나 ‘증명’의 단계로 들어섰다. 이제 시장은 “우리는 혁신적인 기술을 가졌습니다”라는 말에 더 이상 귀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

“그래서, 병원이 실제로 돈을 내고 계속 쓰는 제품입니까?”


루닛과 뷰노는 이 질문에 조금씩 답을 찾아가고 있다. 그들의 답은 ‘AI 기술’이 아니라 ‘의료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의료기기’였다. 반면 수많은 기업이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쓰러져 갔다.


앞으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기업은 가장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는 회사가 아닐 것이다. 가장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병원과 의사들의 지갑을 열게 하는 기업, 그리하여 마침내 ‘수익’이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만들어내는 기업일 것이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진짜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참고 자료


1.메디칼타임즈. (2025. 11. 17). 매출 노선 확보하는 의료 AI 기업들…적자 수렁 벗어나나. https://www.medicaltimes.com/Mobile/News/NewsView.html?ID=1166050


2.메디칼타임즈. (2025. 12. 24 ). 179억원 자금 수혈한 딥노이드…재무 구조 난제 풀어낼까. https://www.medicaltimes.com/Mobile/News/NewsView.html?ID=1166582


3.더메디컬. (2026. 01. 13 ). 낡은 규제에 발목···디지털 헬스케어 기업들 고사 위기. https://www.themedical.kr/news/articleView.html?idxno=2948


4.이데일리. (2024. 11. 20 ). 1호 디지털헬스 특례 상장' 라이프시맨틱스, 우주항공업 '전환'?. https://blog.naver.com/ewaynews/223835262602


5.동아사이언스. (2025. 02. 16 ). 디지털치료제 5호까지 나왔는데…보험 적용안돼 활용 '난항'. http://m.dongascience.com/news/7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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