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앱 쓰면 건강해져요!"...라고 말하기 전에

화려한 비전과 차가운 현실 사이, 디지털 헬스케어 개발의 민낯

by Just H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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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으로 암을 정복하겠습니다."

"앱 하나로 불면증을 치료합니다."

"데이터로 만성질환에서 인류를 해방시키겠습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몸담고 있다면, 이런 원대한 비전을 매일같이 접할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뜨거운 열정과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혁신. 하지만 현실의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우리는 종종 전혀 다른 문제와 마주하게 된다.


> "의학적으로 이게 맞는데, 왜 사용자들은 이렇게 안 쓰죠?" (의사)

> "이 간단한 기능을 구현하는 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죠?" (개발자)

> "그래서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벌 건데요?" (기획자)


화려한 비전 아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전문가들의 동상이몽. 그리고 그 안에서 길을 잃는 프로덕트.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이 겪고 있는 성장통의 민낯이다.


사례 1: 완벽한 당뇨 관리 앱의 외로운 출시

여기, 국내 최고 내분비내과 의사와 실리콘밸리 출신 개발자들이 손잡고 만든 당뇨 관리 앱 '글루코-케어(가칭)'가 있다. 의학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이상적인 관리법을 담았다. 매일 4번 혈당을 기록하고, 식단을 사진 찍어 올리면 영양사가 피드백을 주고, 매주 정해진 시간에 운동 영상을 따라 해야 했다. 의학적으로는 '완벽'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사용자들은 하루 이틀 기록하다 이내 포기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너무 귀찮아서.

60대 당뇨 환자에게 매번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수치를 입력하는 것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였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완벽한 기능의 집합이 아니라, '혈당을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만드는 아주 작은 동기부여와 '이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간단한 사용성었다.

이 사례는 우리에게 뼈아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의학적으로 옳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환자가 매일 사용하고 싶은 제품'을 만들고 있는가?


사례 2: 심정지 예측 AI, 그러나 아무도 보지 않는 경고

이번엔 생체신호를 분석해 24시간 내 심정지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AI 솔루션 '바이탈-가드(가칭)' 이야기다. 이 AI는 놀라운 정확도로 위험을 예측했고, 세계적인 저널에 논문도 실렸다. 개발팀은 자부심에 넘쳤다.

하지만 실제 병동에 적용되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AI가 모니터에 "301호 환자, 8시간 내 심정지 위험 75%"라는 경고를 띄워도, 바쁜 간호사들은 이를 즉각 확인하지 못했다. 수많은 알람 중 하나로 치부되거나, "AI가 또 오버하네"라며 무시되기 일쑤였다.

문제는 AI의 성능이 아니었다. '간호사의 워크플로우(Workflow)'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AI는 그저 경고를 띄울 뿐, '그래서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위험도 75%입니다. 지금 바로 담당 의사에게 알리고, 심전도(EKG) 검사를 준비하세요" 와 같이 다음 행동(Actionable Insight)을 제시했다면 어땠을까?

기술적으로 위대한 제품이 아니라, 사용자의 일하는 방식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제품만이 진짜 혁신을 만들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 '팀의 실패' 때문이다

앞선 사례들의 실패는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팀의 실패'다.

* 의료 전문가는 임상적 유효성에 매몰되어 실제 사용자의 삶과 편의성을 보지 못했다.

* IT 전문가는 기술적 구현에 집중한 나머지, 그 기술이 사용될 '현실 세계의 맥락'을 놓쳤다.

* 사업 전문가는 수익 모델과 시장성에만 집중하다, 제품이 사용자에게 주는 근본적인 가치를 잊었다.

마치 각자 최고의 재료를 가져왔지만, 서로 섞이지 못해 비빔밥이 되지 못하고 그저 그런 나물 더미로 남은 것과 같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고, 존중하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하나의 팀'으로 기능하지 못할 때, 우리의 프로덕트는 길을 잃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이 험난한 길을 계속 가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만드는 제품이 누군가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글루코-케어 앱을 포기하지 않고 개선하여, 할머니가 손주에게 보낼 사진을 올리듯 쉽게 혈당을 기록하게 만들었을 때. 바이탈-가드 AI가 간호사의 스마트워치를 살짝 진동시키며 "301호 환자분, 지금 한번 살펴봐 주세요"라고 속삭여, 놓칠 뻔했던 생명을 구했을 때.

그 순간의 가치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오늘도 키보드를 두드리고, 회의실에서 머리를 맞대는 이유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단순히 코딩이나 의학 지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서로 다른 전문가들의 끊임없는 조율과 헌신 위에서 비로소 피어나는 꽃이다. 우리의 비전이 구호로만 남지 않으려면, 지금 바로 옆자리 동료의 언어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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