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터 콜 사울>인간계로 떨어진 악마의 이야기
악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범죄를 다룬 드라마에서 작가가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 중 하나는 악행을 일삼는 대상자에게 동기를 불어넣는 작업이다. 서사가 없이 단순히 폭력과 사기로 점철된 캐릭터는 설득력이 떨어지는 전개로, 매력 없이 소비될 뿐이다.
6개의 시즌, 63부작으로 이뤄진 대서사시 <베터 콜 사울>의 주인공 지미는 손대는 족족 주변인들을 위기로 몰아넣는 악당 그 자체다. 전작인 <브레이킹 베드>의 주인공 월터 화이트 역시 자의든 타의든 모든 것을 파멸시킴으로써 마약계의 거두로 성장하지만 월터는 적어도 명분이랄 게 있었다. 친구와 연인에게 배신당했다는 트라우마와 천재라는 자부심을 짓밟는 비루한 현실은 그 안에 자격지심이라는 괴물을 만들어 낸다. 시한부 판정은 그 괴물을 깨우는 트리거로 작용했다. 공포의 마약 제조자 <하이젠버그>가 되어가는 과정은 그가 진작에 마땅히 누려야 했던 권위를 되찾는 일인 것이다.
순박한 고교 교사 월터가 하이젠버그로 성장하는 과정엔 이처럼 강한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제임스 모건 맥길이 범죄자들의 사이드킥인 <사울 굿맨>으로 변해가는 모습엔 빠진 고리가 무수히 많다. 드라마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의문이 가는 이 지점을 해소해준다. 단호하고 명쾌하게 '맥길은 원래 그렇게 태어난 인간이다'라고.
드라마 초반 갈등 양상의 핵심인 형 척 맥길은 동생의 싹수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본 유일한 인물이다. 동생이 천성이 사악한 '미끄덩 지미'라는 점을 꿰뚫고 있었던 척은 그에게 법률이란 무기가 주어질 시 어떤 파국이 일어날 거란 걸 진작에 알고 있었다. 도둑에게 칼을 쥐어주는 꼴이란 걸 말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속임수를 흩뿌려둔다. 동생을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미치도록 질투하는 양가의 감정을 동시에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조현병까지 안고 있는 척은 지미의 악행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억제제였지만 본인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한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고 만다. 시청자로선 동생의 앞 길을 시시때때로 막아 그를
냉혹하고 잔인한 인물이 되는 계기를 준 게 아니냐는 생각을 품을 수 있다.
그 후 지미는 복수와 성공이라는 방향으로 완벽한 악인의 형상을 띄었지만, 마지막화에서 등장하는 인물 간 대화를 통해 이는 착각임을 깨닫게 된다. 지미는 원래 완벽한 악인이라는 사실을.
지미는 생사를 넘나 들었던 동업자 마이크와 월터에게 각각 '타임머신이 생기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란 질문을 던진다. 대답의 양상은 다르지만 마이크와 월터는 그들을 이전과 다른 존재로 변화시킨 그 시작점에 대해 얘기한다. 지미는 달랐다. 그는 더 많은 돈과 실패한 사기에 대해 말한다. 드라마는 월터의 말을 빌려 피날레가 되어서야 지미에 대해 이렇게 명명한다. "당신은 원래부터 이랬군요?"
아직 말도 배우지 못한 아기가 잠자리의 날개를 뜯으면서 웃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그 악의 본성은 애초에 지미가 살아가는 원동력이었다. 날개를 잡아떼듯 척과 햄린을 갖고 놀았을 뿐, 그 속에 거창한 비밀은 없었다. 단지 그 대상이 잠자리에서 고양이로, 사람으로 스케일이 커져간 것이다.
매우 이성적인 변호사이자 정의와 봉사를 추구했던 킴벌리도 내면에 소악마적인 면모가 있었다. 지미의 장단을 맞춰주다 이후에는 그 자체를 즐기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 세계에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킴벌리. 두 세계를 넘나드는 킴벨리는 지미를 개심하게 할 가능성을 보이는 유일한 캐릭터지만 악에 젖어든 타락 천사로 전락한다.
화려한 로펌의 어두운 지하에서 벽을 마주하며 담배를 나눠 폈던 두 사람. 찰나의 고락을 나누던 이 시간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껍데기만 보여줬던 지미도 자신의 속을 드러낸다. 다만 후회하는 킴벨리를 보듯 둘은 파멸의 유희를 만끽하길 택했고, 뒤늦게 현실을 깨달았을 때는 모든 이들을 망쳐버린 뒤였다.
어느 날 인간 세상에 떨어졌던 악마 지미. 그는 한평생 본업인 악업을 쌓다 킴벨리를 만났다. 함께 한 모든 이들의 삶을 망쳐버렸지만, 사랑하는 한 여성을 위해 자신의 꼬리를 기꺼이 자른 지미.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낼 때 두 사람은 영원의 이별을 맞이 한다. 드라마 내내 그의 몰락을 바랐지만, 개운함보다 먹먹함이 앞서는 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