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상담사와의 인터뷰
"고객님 안녕하세요, oo은행입니다. 나라에 내는 국민건강보험료를 저희쪽 통해 납부하시면 ....혜택이 있는데 변경해도 가능하신가요?
사업자를 내면서 잠시 6개월 유예신청을 해 둔것이 4월부터 재개예정이라 흔쾌히 변경에 동의했다.
"고객님과 통화내용은 녹음되며 ....당사의 이용약관은......" 그렇게 상담원은 기계처럼 내용을 읽어주고는
기존 납부은행건을 해지하고 무사히 잘 변경되었다고 했다. 끼워넣으려는 듯이 전기요금도 이동하는 것을 권유하는 태도에 살짝 불편했다. 괜찮다고 거절하고 끓으려는데 해맑은 상담원의 질문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초등학생 자녀가 있으시면 문학전집도 보내드리고 일부 할인혜택도 드리고 있어요. 고객님. 각종 관리비 납부나 기타 교육비 지출등도 포인트로 돌려드리고 있는데 생각한번 해 보시지 않겠어요? (호호)
"미혼입니다" 다섯글자 대답에 서둘러 죄송하다며 상담원은 전화를 끓었다.
30대 후반, 내가 첫사랑에 실패만 하지 않았더라면 또래 자녀를 둔 엄마이자 아내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겠구나 잠시 상상을 했다. 그런데 상담원은 내게 왜 죄송하다고 사과를 한걸까. 미혼 기혼 결정을 내가 안한건데
나의 상황도 모르고 무턱대로 자녀를 둔 엄마로 판단해서 였겠지. 그렇다고 넘기고 싶다.
상담원은 내 신원정보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나이에서 가족을 이루고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예전 같은 경우라면 단번에 화를 냈을 것이다. 지금은 오히려 상대가 가엽게 느껴졌다고 할까
여자의 삶을 엄마 아님 아내로 결론짓고 그 틀안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 그분에겐 뿌리깊게 박힌 듯 했다.
비단 한 사람에게만 해당 되는 내용은 아닐것이다. 가까이에 있는 내 엄마도 여자가 아직도 시집을 안가서
또 사업상 문제가 생기면 다 접고 결혼을 하라고 잔소리가 이젠 거를 수 있게 되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 우리의 인식은 아직 그대로 자리잡고 있다. 변화를 추구하되 뿌리의 근본은 유지하면 되지 않을까. 무조건 옛것과 옛 사고방식을 강요하기엔 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순 없을 것이다.
예전의 부모님 세대 30대와 지금 태어날 때부터 온라인에 익숙한 30대와 절대로 결이 같을 수 없다. 내가 빗나가는 것이 아니라, 딸의 인생으로 봐주기를 원하지만 나도 그렇듯 엄마의 신념은 바꿀 수 없다
내 글에 불편함을 느낄 누군가도 있을 수 있겠다.
한때 현모양처가 꿈이였던 적도 있었다. 공부도하고 스스로 경제생활도 해 보니 세상은 오히려 신나는 일 투성이였고, 그 당시 결혼하면 모든것이 멈추고 육아에만 매달려야 하는 삶을 받아들이긴 어렵다 판단했다.
결혼이 목표는 아니다. 그랬다면 소개팅남 중에서 아무나 하고 했을 것이다. 아직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고 하는 건 너무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겠지만 원하는 삶의 방향이 같고 뜻이 맞는 이와 동행하고 싶다
어른들 등살에 밀려 가정을 이루고 원래 다 그렇게 사는 거라며 넘기며 살 자신은 없다.
그래서 시집은 어릴때 가야한다고 옛말이 나왔었나보다.
내일 사촌 결혼식이 있다. 엄마와 동생만 보내고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코로나에 인원제한도 있고 어른들 만나면 듣게 될 뻔한 질문에 대답을 한답시고 길게 이어질 릴레이 상황을 마주하고 싶지 않다.
"지금 안가면 애가 더 늦어 질 텐데. 육아는 빨리 시작해야지. 직장은 잘 다니고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어쩌면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하는 어른들의 공통된 패턴일지라도 서로 얼굴이 불편해지지 않으려면 어느 한쪽에선 얼굴을 안비추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본인이 자리에 없어야 질문이 이어질 상황도 애초에 만들지 않게 된다.
5년후 1층에 지금 온라인 숍 네임을 대표로한 '모모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좋아하는 소품들과 문구류로 아기자기하게 꾸민 작업실에서 '그림'을 통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할머니가 될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싶을 만큼 자유로운 생각을 기반을 다양한 도전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내 그림으로 된 소품들도 진열해서 일상이 따뜻한 하루하루에 감사하며 그 다음 10년 후를 그리며
책읽고 공부하며 글도 쓰는 작가 겸 디자이너로 시간적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어릴적 입버릇 처럼 이야기했다. "엄마처럼 살지 않을래" 어린 딸의 말에 엄마는 얼마나 가슴을 쓸었을까.
엄마의 삶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여자의 삶으로 인생을 기획하고 주변사람들과 행복하고 싶다.
올해로 50년째 봉제경력을 자랑하는 김여사(내 엄마)는 아직도 찾는 곳이 많다.
색색거리며 거친 숨소리를 몰며 집으로 돌아오면 침대에 바로 쓰러지는 모습이 안스럽다.
할머니 손에 이끌려 생일날 봉제공장으로 첫 출근 한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는 일-집-자식 밖에 없다. 정작 본인을 위한 건 사치라며 무조건 "괜찮다" 라고만 한다.
"엄마 이제 나가지마, 안벌어도 되잖아!" "그래도 나가면 돈벌고 좋지 뭐"
엊그제 집앞에 커다란 박스 3개가 배달되어 문앞에 도착했다. 평소 내가 챙겨주는 오메가3 콜라겐가루도
유난스럽게 건강 챙긴다고 하더니 건강한 해독주스라며 다 큰 자식들 몫까지 샀단다.
"엄마! 잘먹을께. 검색해 봤더니 엄청 효과 봤다고 강력 추천하던데? 고마워~"
자식 밖에 모르는 엄마가 답답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 알아서 챙겨줄 땐 찐팬을 옆에 둔것 같이 든든하다.
"엄마~ 이제 일 말고 진짜 뭐 하고 싶어? 배우고 싶던 거나 해 보고 싶던거 없었어?"
"사진 찍고 싶어. 여기저기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그럼 하자! 어디 부터 갈까? 아니면 문화센터에서 뭐라도 배울래?"
"배워서 어따 써먹어 되써 귀찮아~"
엄마보다 더 높은 어르신도 유튜브에 블로그에 다방면으로 활발히 세상을 재미나게 사는데 티비만 보는게
그렇게 좋을까 싶다가도 어쩌면 그것이 딱 맞는 휴식방법인 것이다.
그래도 결혼은 아직인 내게 엄마는 웃으며 이야기한다
"넌 생일날 국끓여줄 자식도 없잖아~ 월급 탔다고 용돈 주는 아들 있어? 없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