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직장인 노력일기 (3) feat.영화 초속 5센티미터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나는 정말 많은 일을 겪었다. 부모님의 건강 악화와 겹친 이직 고민, 여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강도 높은 번아웃까지. 바닥을 경험 하다보니 계속 조급해서 였을까? 가족과 나를 돌볼 시간이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휴식 기간에도 계속 뭔가를 하려고만 했다.
그동안 못한 공부부터, 가족들을 챙기는 것까지 의무적으로 다 잘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나는 <휴식>보다 <노력>을 하는데 더 집중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식 기간 동안 나에게 필요한 건 생각 정리와 휴식이었는데, 더 바쁘게 무언가 하려는 스스로가 너무 역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정말 충동적으로 다음 날 떠나는 비행기를 끊고 짧은 여행을 떠났다. 계획 빼면 시체인 계획형 인간이었지만, 푹 쉬고 생각만 정리하다 오는 것을 목표로 현실과 먼 곳으로 떠났다. 확실히 현실과 떨어진 곳에서 맛있는 것도 먹고, 자연 풍경도 보고 하니 리프레쉬가 됬었다.
그제서야 깨달은 건, 지금까지 너무 일에 몰입해서 살았기 때문에 나를 돌보지 않아서 지독한 번아웃까지 온거 겠구나라는 생각이었다. 차라리 조금 힘들 땐 일을 내려놓고 여행을 떠날걸, 내가 좋아하는 것도 하고, 쉬기도 하고, 나를 위해 무언가 해줄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지 다시 복직하게 되면 몰입 보다는 나를 돌보며 일해야겠다 라는 생각이 커지기도 했다.
그렇게 리프레쉬를 하며 즐거운 여행을 하던 와중에, 눈을 의심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도 아닌 해외에서 오래 만난 첫사랑을 우연히 마주칠 확률을 얼마나 될까? 한국인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장소라고 알고 있었기에, 처음 낯익은 옛 연인을 보았을 땐 '에이 설마 닮은 사람이겠지'하고 그냥 지나갔었다. 그렇게 잠깐의 아이 컨택을 하고 스쳐 갔는데, 알고보니 식당이 정말 몇 개 없는 동네였고, 다시 한 번 식당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을 우연히 마주치고 나니 닮은 사람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이 맞다는 것을 확인 사살하게 되었다. 당황한 건 나 뿐만 아니라 그 사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렇게 당황스러운(?) 두번째 아이 컨택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기차에 탔다.
너무 당황해서였을까? 여행을 통해 충분히 회복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오는 기차에서 마음이 굉장히 멜랑꼴리 했다. 옛 연인에 대한 그리움보단 나의 20대가 떠올랐고, 지금의 나를 만든 선택들을 하나 하나 뒤돌아보니 괜히 울적해졌다. 나는 대학생 때, 사회 초년생 때부터 하고 싶은 일, 살고 싶은 삶이 굉장히 구체적인 사람이었는데, 조급한 성격 때문에 기다렸다가 최선의 선택을 하기보다, 항상 빠르게 선택할 수 있는 차선책을 선택해왔다. 울적함의 늪과 같았던 기차를 타고 오니, 앞으로는 속도보단 방향을 생각한 선택을 하며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되었다.
영화 초속 5센티미터 역시 비슷한 이야기 이다. 누구보다 애틋한 첫사랑이었지만, 전학이라는 외부적인 상황으로 헤어지게 되는 두 주인공,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서로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마주치게 되지만 스쳐 지나가는 그런 이야기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도 나와 비슷하게 여러가지 인생의 번아웃 시기를 보내던 시기에 우연히 옛 연인을 스쳐 지나가게 된다. 인사 한마디 없이 철길에서 서로 엇갈리게 되지만, 남자 주인공은 그 엇갈림을 계기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게 된다.
믿고 있는 종교는 없지만 우연에 우연이 겹친 이 경험은 하늘이 내게 준 깨달음의 계기라 생각한다. 나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로 승화시켜 더 행복한 내가 되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