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직장인 노력일기 (2) 나를 위한 선물, 시간
해야 하는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정리해서 하나하나 실천해가고 있다.
그 중 나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주일에 반나절은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것.
가족, 일 등에서 벗어나 오직 나만 생각하고, 스스로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갖고 싶은 것들을 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한다.
항상 남의 시선을 신경쓰며 살아오던 내가 나를 더 돌아볼 수 있게 된 시간이 생겼다는 점에서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달려온 삶에서 쉬기 위해 노력한 지금의 시간들은 다시 뒤돌아봐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이번주 나를 위한 시간은 <슬램덩크> 영화보러가기 였다.
슬램덩크 세대의 나이가 되었지만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편도, 과거 슬램덩크 만화책을 본 적도 없었기에 오히려 기대하지 않은 채 예매를 했다.
(5% 정도 스포일러 있을 수 있음에 주의!)
주인공 강백호의 이야기를 주로 다룰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송태섭 시점을 주로 다룬 스토리라인이기에 사람들이 이를 해석하는 관점도 다양했다. 이노우에 다케히코’가 직접 각본과 연출에 참여했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는 의견들도 많았다.
특히 나는 슬램덩크 원작 스토리를 모르는 백지 상태 였기에 더 집중하며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원작에서도 가장 하이라이트였던 북산고 vs 산왕고 스토리를 주로 다루었는데, 모두가 아는 뻔한 결말일지라도 애니메이션의 연출과 음향 효과 등이 몰입할 수 밖에 없을 만큼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원작에서는 주인공도 아니었기에 잘 몰랐던 송태섭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누군가의 그림자로 스스로를 의식하며 사는 삶은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와 형의 죽음의 아픔도 있지만, 형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형과 비교되는 주변의 시선들이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비교하지 않고,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스스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고 아픔을 극복할 수 있다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마지막 몇 분을 남겨 놓고 동그랗게 모여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이번 월드컵 포르투갈 전이 떠올랐다. 스포츠가 재미있는 이유 많지만, 무엇보다 여러 사람이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했을 때, 그리고 극적일수록 그 감동과 여운은 잔잔히 삶의 활력소가 되는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리고 스포츠보다는 덜 극적이지만, 회사에서 흔히들 말하는 <원팀> 문화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서로를 믿고 같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것.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원팀>을 위해 가장 중요한건 서로에 대한 '신뢰'인 것 같다.
TMI) 나는 사람을 쉽게 믿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불신하지도 않는다. 함께 일한 시간이 자연스럽게 쌓여가면 신뢰가 생기는 편.
그런데 내가 <불신>하는 사람이 같은 팀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한걸까? 아직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나도 잘 모르겠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을 위해 그 사람을 신뢰하기 위해 노력한다.
2) 사람을 쉽게 불신하지 않는 스스로를 믿고, (티는 안내지만) 계속 불신한다.
리더나 조직 관점에서는 당연히 1)이 맞고, 지금까지 1)처럼 행동해왔으나, 좋은 마음을 호구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은게 세상이기에 아직도 답은 못 찾은 것 같다. 나의 성숙을 위한 길이라고 모든 것을 포용하기엔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회에는 있기 때문에.
결국 이 고민도 경험치가 쌓이면 언젠가 통찰력이 생기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그 과정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고민에 대한 답은 더 진해지겠지!
같은 것을 보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 상황에 대입하기 마련이기에,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과 대사는 <정우성>의 이야기였다. 정우성은 전국 최강 농구팀 산왕공고의 에이스다. 불패신화를 이어왔던 에이스이지만, 신사에 가서 정우성이 한 기도의 내용이 인상 깊었다.
제가 필요한 경험을 하게 해주세요.
경기에서 꼭 이기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필요한 경험을 바라는 모습에서 성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매일 이기기 위해 살아온 사람은 아니지만, 굴곡 없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 같다.
세상에는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있을 수 밖에 없다.나에게 오는 세상의 경험들은 모두 살면서 나에게 꼭 필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더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아무 기대 없이 보러갔던 영화지만 어쩌면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고민과 생각에 있어 느낌표를 던져준 영화라고 생각한다. (평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