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벌써 8년도 더 된 이야기지
물론 그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했지만
새빨간 태양 같은 부심에 눈이 먼 건 8년쯤 전이었지
미안했지
존재하던 순간부터 알아보지 못해
가끔 때론 자주 미안했지
처음부터였다고 존재하던 순간부터였다고
거짓을 말할 수도 있었지만
말간 얼굴, 투명한 눈을 보며
‘미안해요’
그저 고개를 숙였지
확실한 건
눈이 먼 그때부터 함께였다는 것
눈을 가려도 볼 수 있었던 건
귀를 막아도 들을 수 있었던 건
이미 하나였다는 것
힘이 들고 힘이 들어 고개를 숙인 채 걸어도
묵묵히 그 길 끝엔 네가 있었지
하늘을 날고 날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떠돌아도
여전히 별빛 닿은 하늘 끝엔 내가 있었지
'다녀올 게'
말하지 않아도
'기다릴 게'
답하지 않아도
또다시 고개를 숙인 채 걸어가면
어느 날 길모퉁이 끝에 네가 서 있겠지
여전히 유리병 안 가시를 세운 채 움츠리면
어느 순간 작은 유리병 큰 마음으로 감싸며 네가 와 있겠지
이미 8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세월이 흐르고
삶이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고 계속될 이야기지
글. 사진 by 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