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반 만에 돌아간 중앙기관은 많이 달라져있었다.
어쩌면 일 년 반동안 중앙기관을 떠나 있지 않았다면 달라졌다고 느끼지 못 했을지도 모른다.
다시 돌아간 그곳은 예전보다 더 삭막하고 인간미 따윈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숨이 턱턱 막히는 곳으로 변해있었다.
무엇이 이곳을 이토록 변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인간미를 앗아갔을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또 그렇게 돌아왔다.
이곳을 떠나기 전 부서로 다시 발령을 받았기에 일 년 반의 공백기가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전과는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다.
내가 맡은 업무 중 가장 중요한 업무는 '국정감사'업무였고 이 업무는 지금, 한 해의 하반기부터 시작하는 업무라 워밍업도 없이 업무는 시작되었다.
7월 한 달간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정신은 아직도 휴직기인데 몸은 미친 듯이 움직였고, 정신과 몸이 다르게 움직이니 생전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대상포진도 앓았다.
대상포진으로 힘이 들든 정신이 여전히 휴직기이든 뭐든 나의 상태와 이유는 핑계, 변명일 뿐이었고 그렇게 나는 또 나 자신을 끝으로 몰아갔다.
눈뜨고 일어나니 8월이 되어있었고 8월은 그나마 정신과 몸이 직장인의 상태로 돌아왔다.
7월 한 달간 눈뜨고 코 베인 적도 몇 번, 순식간에 뒤통수 맞기도 몇 번을 하고 난 후에야, 그렇게 한 달을 맨 몸으로 생채기를 내고 난 후에야 정신과 몸이 겨우 직장인의 상태로 돌아왔다.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긴 후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상사분을 만나 국정감사 업무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상사분은 국정감사 총괄업무를 맡았으니 각 부서의 담당자들을 무섭게 강단 있게 대하라 말씀하셨다.
예전에 총괄담당자들은 다들 그렇게 일을 했다고도 말씀하신다.
'예전에야 그랬겠지,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닌데...' 혼자 생각을 한다.
상사분은 또 한 번 강조하셨다. 무섭게를!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다 알아듣는데. 꼭 그래야만 해?' 혼자 또 생각을 한다.
'무섭게, 강단 있게'라...
강단 있게는 괜찮은데 무섭게라... 굳이?
질문 한 번 하기도 힘들게, 전화 한 번 걸기도 힘들게, 그렇게?
예전에 그렇게 업무를 한 적이 있었다.
예산팀에서 일을 했을 때는 나도 그랬다.
그 당시에는 예산팀 모두가 그렇게 일을 했다.
또 그게 맞다고 생각을 했고 그렇게 일을 하는 팀에 속해 있다 보니 이것이 잘못된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냥 가끔 마음 한편의 묵직함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그 묵직함의 이유를 몰랐고 묵직함의 무게도 몰랐다.
또다시 총괄업무를 맡게 되니 어떻게 이 자리에 있을 것인가 어떤 자세로 어떤 방법으로 이 업무를 이끌어 갈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다.
그때의 묵직함, 마음 한편의 묵직함은 미안함이었다.
'무섭게, 강단 있게'를 이유로 내세웠던 나의 '화냄'에 대한 미안함이 겹겹이 쌓여 묵직함을 만들어냈다.
그 당시 부서에서 예산 업무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이렇게 말을 한다.
'그 사람들은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이 얘기를 예산 부서를 나오고 몇 년이 지나고서야 듣게 되었다.
모욕감을 준 게 나인지 나 아닌 다른 팀원이었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모욕감을 준 팀에 내가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총괄 업무를 맡게 된 지금. 그때의 일들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 우연일까?
또 그때처럼 화내고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하면 득달같이 달려들고 과연 맞는 방법일까?
총괄 업무를 맡게 된 지금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일을 잘하고 싶어서 그리고 문제없이 일을 해내고 싶어서일까?
어쩌면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 더 경력이 많다고 총괄이라는 자리에 있다고 윽박 하듯 일하던 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해서 총괄자의 권위가 서겠냐!'라는 기도 안 차는 말을 듣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그런 방법'이 아니더라도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또다시 예산팀에서 근무했을 적 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때의 나의 모습을 내가 다시 보고 싶지 않음이 커서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의 힘듦을 배려하고 입장을 이해하고 다독이며 이 업무를 이끌어 가고 싶다.
이 방법이 가장 나의 마음이 편한 방법임을 안다.
일 년 반 만에 돌아온 기관에서 맡게 된 총괄 자리에서 '어디 한번 잘하나, 보자.' 하는 수많은 눈 속에서 윽박지름과 화냄이 아닌 나만의 '화합, 협업'의 방법으로 업무를 해나가고 싶다.
우리 기관에도 간혹 있다.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은 그런 분들이.
어쩌면 이곳에 내가 돌아온 이유도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은 그런 분'이 되고 싶어서 인지도 모른다.
상사에게는 믿음직한 담당자로 후배들에게는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서인지도 모른다.
이 기관에 돌아온 이상 앞으로 6~7년은 꼼짝없이 또 쉴 틈 없이 일을 하게 될 터인데
어차피 이 안에서 움직이지 못할 거라면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위해 열심히 또 한 번 달려보자 생각한다.
일도 잘하고 사람도 좋은 그런 분이 한번 되어보자 생각을 한다.
진짜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걸 바라고 돌아온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우물 안 개구리여... 행복하자'
그런 후에 '우물 안 개구리는... 행복했다'로 마감할 수 있도록...
글.그림 by 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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