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용호 Oct 21. 2022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뛰게 하고 싶어요"

[조용호의 문학공간]   에디터 평론가 박혜진


첫 평론집 '언더스토리'와 '엔딩 독서노트' 펴낸 박혜진

문학은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숲의 '언더스토리'

한국문학 해외에서 오히려 더 큰 잠재적 폭발력 지녀

'끝'을 유심히 살펴보는 건 마지막에 대한 예행 연습



비평가이자 에디터로 한국문학 최일선에서 활발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 박혜진(36)의 첫 책들이 나란히 출간됐다. 다양한 서사의 '끝'들을 유심히 살피며 생각을 담아낸 '이제 그것을 보았어'(난다)와 첫 평론집 '언더스토리'(민음사)가 그것이다. 신춘문예(2015 조선일보) 평론에 당선된 이래 써 온 비평들을 모은 첫 평론집은 '언더스토리'에서 연대하는 인간들의 삶을 다루는, 주로 30~40대 젊은 작가를 아우르는 한국문학 일선 복무자의 시각이 섬세하게 담겨 있다.


첫 평론집과 52개 작품의 '끝'을 돌아본 독서노트를 펴낸 비평가 겸 에디터 박혜진.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문학은 언더스토리(understorey)다. 언더스토리는 하층식생 혹은 하목층을 가리키는 말로 숲 지붕과 숲 바닥 사이에 사는 생물을 뜻하는 산림학 용어다. 그늘을 견디기 위해 이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영양을 마련한다. 그 생존 방식 핵심에 '연결'이 있다. 독립된 개체들처럼 보이는 식물들은 곰팡이를 매개로 소통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인간 사회도 식물들의 방식을 닮았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소통하고 영향을 주고 받으며 공동체를 만든다. 그 절실하고 애틋한 심층의 연결에서 이야기가 탄생하고, 이야기는 우리에게 영향과 영양을 준다. 문학은 언더스토리(understory)다.'


숲의 지붕과 지표면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햇볕을 더 받기 위해 애를 쓰는 식물들, 그들은 빛이 적거나 없어도 뿌리를 통해 여러 방법으로 서로 연대하며 살아남는 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함께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것이 '언더스토리'의 숙명이기도 하다. 박혜진은 첫 평론집을 내면서 서두에 '문학은 언더스토리'라는 팻말을 내걸고 "내게 있어 문학은 적은 빛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을 환대하는 집"이라고 썼다. 문학이 삶의 고단한 틈새를 비추는 빛이라면, '언더스토리'를 문학의 영토로 규정하는 시각은 적확하다.


"지붕과 지표 사이 하층과 중간층에서 살아가는 식물들 얘기가 매력적이었어요. 지붕에 가려서 빛이 없으니까 자기들끼리 서로 연결이 돼야 되고, 그러다 보니 뿌리가 다 연결돼서 정보를 교환하고 균을 통해서 영양분을 나눠주기 때문에 나무의 시작과 끝을 알 수가 없다는 거예요. 나무가 한 그루가 있을 때 이 나무가 어디서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끝나는지 사실상 알 수 없는 거죠. 연결된 공동체인 셈인데, 인간 세상에 적용해 보면 인간도 각자 존재하지만 한 사람의 시작과 끝이 머리부터 발끝까지가 아니라 더 연결된 개체인 거죠."



박혜진의 '언더스토리'는 4부로 구성됐다. 지금 이곳에서 다시 해석해보는 인간을 담은 1부 '다시 만난 인간'에서는 한강, 올가 토카르추크, 이장욱, 허연, 김금희, 김숨, 배삼식 등의 소설 시 희곡을 들여다보았다. 2부 '자아의 후퇴'에서는 유계영 강혜빈 서이제 강석희 임선영 신동욱, 3부 '사랑과 우울이 한 일'에서는 이승우 김연수 손보미 양안다 강지혜 백은선을, 4부 '윤리도 아름답다'는 주로 여성 관련 담론이 담긴 구병모 김범 서유미 정용준 김혜진 조남주의 작품에 관한 글을 수록했다. 강남역 화장실 여성 살인에 이어 최근 다시 일어난 신당역 스토킹 살인 범죄를 목도하면서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한 글은 한국사회의 현주소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전문직 남성과 무특징한 여성이 이 소설에서 의미하는 바는 상징적이다. 성별에 의해 발생하는 문제에서 우리가 가장 많이 범하는 오류는 사적인 경향들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거나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82년생 김지영의 문제는 여성의 문제이고, 여성의 문제는 사회의 문제이며, 사회의 문제는 개인을 치료해서 고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바뀌어야 해결되는 문제다. (…)신당역 살인사건 뉴스를 봤을 때 이 소설에 등장한 의사를 생각했다. 환자에게 공감하고 환자를 이해하면서도 끝내 환자의 입장이 될 수는 없었던 의사의 현재에 영장을 기각한 한국 사법 시스템의 현재가 있기 때문이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은 2011년부터 민음사에서 일해온 '편집자' 박혜진을 새롭게 부각시킨 작품이다. 이 소설은 2016년 10월 첫 선을 보인 이래 국내(130만부)는 물론 일본(35만부)을 포함해 해외까지 합쳐서 모두 200만부 가량 판매되는 대형 밀리언셀러로 기록됐다. 처음 원고를 보았을 때 이런 결과를 예상했을까.


박혜진은 "소설의 끝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근시의 인간에게 잠깐만 허락되는 신의 눈"이라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아뇨. 전혀 예상 못했어요. 그런데 이게 사회에 필요한 책이라는 확신은 있었어요. 왜냐하면 읽고 났을 때 저에게 오는 감각이 명료했어요. 내가 그때 겪었던 그게 이거구나, 내가 설명 못했던 그 에피소드와 그 감정이 있었는데 그게 이거구나라는 걸 좀 선명하게 알게 됐죠. 작가를 만나서 이 작품을 쓰게 된 과정이랑 어떻게 이걸 구상을 해서 썼는지를 듣고 나서 확신이 섰어요. 그때는 판매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 굉장히 쉽게 읽히고 가벼워 보이지만 훨씬 더 현실이 많이 반영된, 치밀하게 의도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혜진 장편 '딸에 대하여'는 영국에서 유수의 출판사들이 경쟁해 판권을 가져갔고 프랑스에서는 지난 9월, 명문 출판사 갈리마르에서 출간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다. 한국문학이 갈수록 왜소해지고 독자들이 줄어든다는 윗세대의 걱정 앞에 박혜진은 고개를 흔든다.


"꿈은 더 크게 꿔요. 한국 사람들 다수가 문학 작품을 안 읽는 것 같기는 하고, 국내에서 화제가 되는 작품도 작은 범위 안에서 그런 것 같기는 한데, 잠재적 폭발력은 외국 독자들에게 더 큰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어떤 소설이 나왔을 때 국내보다는 오히려 타겟 독자가 거기에 있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생각하는 범위는 훨씬 넓어졌어요."


박혜진은 한 해가 저물 무렵이면 경전처럼 버니지아 울프의 '등대로'를 꺼내 읽곤 한다고 썼다. 새로운 '한 획'을 긋기 위해.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비평가와 에디터를 겸하고 있는 박혜진의 글쓰기는 독자를 보다 강력하게 염두에 두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그가 이번에 첫 평론집과 함께 나란히 펴낸 '엔딩 노트'는 '관리의 죽음'(안톤 체호프)을 필두로 '등대로'(버지니아 울프),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하인리히 뵐),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헤르만 헤세),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페터 한트케), '일몰의 저편'(기리오 나쓰오) 등을 비롯해 이상 김유정 윤흥길 박완서 정용준 배삼식 등 국내 작가들과 영화까지 아우르는 52개 작품의 엔딩을 매개로 써낸 글들이다. 논증이 필요한 상대적으로 엄격한 평문에 비해 보다 따스하고 친근하게 다가오는 내용과 형식이다.


'평론가로서 작품을 마주할 때는 가능한 한 많은 구조를 살피고 그 구조가 의도하는 메시지를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작가의 의도가 곧 작품의 의미를 결정짓는 것은 아닐 테지만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애쓰는 편이다. 편집자로서 작품을 볼 때는 좀 다르다. 답을 만들어내기보다 다양한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결말을 상상하려고 노력한다. 작품의 마지막은 작가에게 끝인 동시에 독자에게 새로운 시작이다. 작품이 독자에게로 넘어오는 사이에 '끝'이 있다.'


박혜진은 "누구에게나 경전처럼 받드는 소설, 위기에 처할 때마다 돌아오게 되는 소설이 있는데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가 내게는 그런 작품"이라면서 "대체로 이렇게 한 해가 시작될 무렵,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없는 몸이 기우뚱거리고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것처럼 부박하게 흔들릴 때, 마음이 좌표를 잃은듯 캄캄하기만 할 때, 울프의 삶에 중요한 반환점이었던 이 작품을 읽으면 장막 하나쯤 벗길 수 있다"고 썼다. 이 소설의 화자가 오랜 모색 끝에 세상의 모호한 것들을 향해 내뱉는 한 마디 '나는 이제 그것을 보았어'가 이 엔딩노트의 표제로 뽑혔다.


박혜진은 "상대적으로 엄격한 평문과 다정한 에세이 사이로 난 새로운 글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하나의 완결된 끝을 많이 갖고 있어야 예기치 않은 어떤 끝 같은 상황이 왔을 때 그걸 잘 받아들이고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겠더라고요. 끝에서 그냥 이게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건 추상적으로는 이야기할 수 있지만 삶의 한 국면 국면에서 그걸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마지막에 대한 예행 연습을 계속하는 거죠. 관계에서도 잘못 끝나면 어떨까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있었는데, 겁이 없어졌어요. 끝이란 원하는대로 되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도 만들어낸 개념일 수 있어요. 다시 일어나 걸어가면, 끝은 끝이 아닌 거죠."


격월로 발간하는 문예지 '릿터' 편집장이자 매달 두어권의 한국문학을 펴내는 편집자요 원고 청탁이 끊이지 않는 비평가로서 살아내기는 쉽지 않을 터이다. 박혜진은 거의 매일 마감하는 생활을 이어가고 있지만, 오히려 쓰지 않을 때 더 힘들다고 했다. 막강한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가. 그는 "생각을 해서 푼다"고 했다. 찬찬히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받을 만한 큰 일이 아니라는 인식에 논리적으로 이르게 되고, 그러한 상태에서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게 되면 다음 단계로 쉬 넘어가게 된다는 말이다. 궁극에는 어떤 글에 닿고 싶을까.


"누군가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뛰게 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걸 지금 당장 이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글은 너무 그 사람을 반영하는 건데, 제가 가슴 뛰게 하는 사람일 때 그런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길게 보고 지금 이 길을 계속 더 잘 걸어가면서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고 싶어요."




*이 글은 UPI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210200047


작가의 이전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