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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호 Oct 15. 2022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

[조용호의 문학공간] 김연수 새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9년 만에 새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펴낸 김연수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와 '미래'를 이용

이야기의 힘이란 미래를 상상해 현재를 바꾸는 마법

"달까지 갈 수는 없어도 그 방향으로 걸어갈 수는 있다"


"사람들이 현재를 참으면 좋은 미래가 올 거라는 관점에서 시간을 생각하는데, 그런 인과적인 미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참는다고 좋은 미래가 오지 않는 거는 너무나 경험을 많이 했어요. 살면서 그게 절망의 가장 핵심이더라고요. 아무리 참고 노력한다고 원하는 미래는 오지 않더군요. 미래는 그냥 내가 상상하는 것이고, 바뀌어야 하는 거는 지금 이 순간이구나, 지금 이 순간이 좋지 않으면 참는다는 게 아무 의미도 없구나, 그걸 이제 알게 된 거죠."


오랜 단편의 공백기를 끝내고 펜데믹 국면에서 집중적으로 집필을 재개해 새 소설집을 펴낸 김연수.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김연수가 펴낸 새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문학동네)의 표제작에 등장하는 인물은 '미래를 기억하자'고 주장한다. 시간여행자가 아니고서는 미래를 과거처럼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무슨 말인가. 소설 속에서 외삼촌은 동반자살을 하려는 젊은 남녀에게 말한다.


'과거는 자신이 이미 겪은 일이기 때문에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데, 미래는 가능성으로만 존재할 뿐이라 조금도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생각에 인간의 비극이 깃들지요.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오히려 미래입니다.'


표제작에 등장하는 한 여성은 '재와 먼지'라는 소설을 남겨놓고 죽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녀는 세 번의 삶을 산다. 두 번째 삶은 동반자살을 시도하려는 현재 시점으로부터 자고 나면 하루씩 과거로 이동하는, 그리하여 그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만났던 최초의 지점에 다다르면서 미래가 이토록 기쁘고 가슴 뛰는 것이라는 사실에 전율한다. 마지막 세 번째 삶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삶인데, 이들은 이제 미래도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지금 현재의 삶을 추동할 수 있다는 마법을 체득하게 된다.


"지금 당장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과거도 필요하고 미래도 필요한 거죠. 과거를 통해서는 올가미에 갇힌 것 같은 현재 상태에서 벗어나는 게 어렵더라고요. 미래는 가능성의 영역이니까, 미래를 이용해서 지금 현재의 괴로움을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죠."


전화로 만난 김연수의 목소리는 밝았다. 연전에 북한에 남은 시인 백석의 삶을 장편으로 내놓았지만, 단편을 묶은 새 소설집은 9년 만에 선보이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단편을 쓰기가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무기력해졌고, 문단도 지형이 바뀌는데 점점 세상이 달라져가면서 그 변화를 못 쫓아가는 것 같은 중년의 위기의식도 우울감을 증폭시켰다고 했다. 그를 이 수렁에서 건져낸 건 백석 시인이 자신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해서 '찬양시' 대신 침묵을 지킨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시가 지금처럼 남한에서 살아남으리라는 걸 아는 것처럼 그는 행동했다는 것이다.


이번 소설집은 전체적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쓰는 사람 자신이 위로받으면서 자연스럽게 독자들까지 껴안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표제작에 이어지는 단편 '난주의 바다 앞에서'에는 아이를 잃고 남쪽 섬에 홀로 정착해 사는 여자가 나온다. 그 여성과 신유박해 때 어린 아들과 유배의 길을 가던 정난주의 피맺힌 사연이 교차하거니와, 두 사람은 이른바 '세컨드 윈드'를 받아들임으로써 삶을 지탱해나간다. '운동하는 중에 고통이 줄어들고 운동을 계속하고 싶은 의욕이 생기는 상태'를 일컫는 체육 용어인 '세컨드 윈드'란 고통이 중첩되는 상태에서 다음 고통을 무디게 받아들이거나 이겨나갈 중독 상태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번째 바람'을 받아들이는 한, 삶은 견디어 볼만한 것이 된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세상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변화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는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데, 지금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상상을 해야 될 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주 끔찍한 상상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우리가 할 수 있다면 지금 시점에서 좀 더 나은 걸 상상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김연수는 지금 시점에서 미래를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해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은 고비사막을 찾아가 '모래폭풍'을 만나는 이야기다. 사랑했던 여자 '정미'의 죽음을 짊어지고 사막의 일몰 속에서 새로 태어나기 위한 바람을 맞는다. 남자가 그들의 아름다웠던 한 시절을 다 지나가게 마련인 모래폭풍처럼 '시간의 폭풍'으로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순간, 그는 이제 다른 시공간에서 새롭게 태어날 준비가 된 것이다. 죽은 정미는 "언젠가 세상의 모든 것은 이야기로 바뀔 것이고, 그때가 되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것은 하나도 없게 되리라고 믿는 이야기 중독자였다"고 김연수는 썼다. '난주의 바다 앞에서' 글 쓰는 남자 '정현'의 캐릭터를 묘사하는 대목과도 상통한다.


'아마도, 그 의미 없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의미 없는 것들의 무자비함을. 이 무자비함의 그물에서 벗어나려면 사람은 자기 내면에 의미를 세워 자연을 해석해야만 한다. 그간 그가 읽은 시와 소설들은,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저도 모르게 쓰기 시작한 글들은 모두 그런 노력의 결과물들이었다. 아무런 의미가 없어 무자비할 수밖에 없는 자연에 맞서기 위해 상징을 부여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정현이 평생 몰두해온 일이었다.'


요컨대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란, 바로 적극적으로 상상해서 미래를 '짓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김연수는 "그냥 쉽게 포기해 버리면서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해석을 해서 의미를 부여하고 같은 상황을 여러 버전의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 소설가의 일이 아닐까 싶다"면서 "그걸 차츰 알아온 것 같다"고 말했다. 김연수 식으로 말하자면 이야기의 힘이란, 미래를 상상하여 현재를 바꾸는 마법이다.


김연수는 우울의 늪을 통과하면서 첫 번째 화살을 뽑지 않은 채 두 번째 화살을 맞는 어리석음을 깨달았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진주의 결말'에서 아버지를 죽이고 집에 불을 지른 것으로 세간에 알려진 '유진주'라는 인물을 그는 처음에는 '악녀'로 설정했다고 했다. 이야기를 진행시키다보니, 프로파일러로 등장하는 남자와 진주 사이의 '이해'를 둘러싼 갈등 국면에서, 결국 아무도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방향이 수정되기에 이르렀다고 했다. 진주는 방송에 나와 자신을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프로파일러에게 말한다.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고,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달을 향해 걷는 것처럼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이라고. 그래서 저는 치매에 걸려 우연히 떠오른 생각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믿는 아빠의 마음을,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사전 경고도 없이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처럼 살아보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불을 질렀습니다.'


김연수는 '바람의 박물관'에 다녀온 뒤 깨달았다고 했다. 모든 일은 일어나는 것이고, 사람들은 일어나는 일의 이유를 찾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서 자기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 타인을 이해했다고 여기지만, 정작 그것은 본인을 이해시키기 위한 행위에 불과할 뿐이라고 했다. 달까지 갈 수는 없어도, 희미하게라도 희망의 방향을 안다면 그쪽으로 그냥 걸어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언설이다. 어차피 합리적인 미래는 없는데, 혹은 모르는데, 그 미래를 상상(이용)해서 현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달이 있는 방향으로 더듬거리더라도 한 발짝씩 걸어 나갈 수 있느냐가 중요한 셈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으로도 사랑을 지켜낼 수 있다는 당시의 '사회적 합의'를 담아냈던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와 '사랑의 단상 2014'도 이번 소설집에 수록됐다. 마지막에 배치한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에서는 육신이 아닌, 정신의 삶으로 최소한 3대의 기간을 체감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설파한다.


'정신의 삶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멀어지는 고독의 삶을 뜻하지. 개별성에서 멀어진 뒤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은 얼마간 서로 겹쳐져 있다는 거야. 시간적으로도 겹쳐지고, 공간적으로도 겹쳐지지.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삶이 끝나고 난 뒤에도 정신의 삶은 조금 더 지속된다네.'


이야기의 힘을 새롭게 자각한 김연수는 이제 오래 묵혀온 다음 장편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미래에 대해 적극적으로 상상해서 낙관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건 비관에 더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모르지만, 김연수는 이번 소설집에서 여러 인물들을 통해 그 낙관을 자주 강조한다.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의 한 인물도 이렇게 말했다.


'모든 믿음이 시들해지는 순간이 있어.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그럴 때가 바로 어쩔 수 없이 낙관주의자가 되어야 할 순간이지. 아무리 세찬 모래 폭풍이라고 할지라도 지나간다는 것을 믿는, 버스 안의 고개 숙인 인도 사람들처럼.'


김연수는 "두번째 화살을 맞지 않기 위해서는 만족스럽지 않고 때로는 고통스러울지라도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을 품에 안아야 한다"면서 "그게 바로 첫번째 화살을 뽑는 일"이라고 썼다. 첫 번째 화살을 뽑고 나면 즉각적으로 기쁨이 찾아오는데 "그건 고통이 사라지기 때문에 찾아오는 기쁨, 단순한 기쁨"이라는 것이다.


"제가 가짜 비관주의자였다가 점점 진짜 비관주의자가 됐는데, 가짜 비관주의자는 뭔가 다른 사람이 다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 세상은 정말 나쁜 것 같다, 왜 이런 세상이 있는가, 이렇게 누군가를 원망하는 거죠.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게 내 인생인데 남을 원망하고 이렇게 살 틈이 있는가, 세상이 이렇다는 걸 인정하자, 아무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 이걸 해결하는 수밖에는 없다고 생각하는, 진짜 비관주의자가 된 거죠. 당장 조금씩 고쳐가면 단순한 기쁨이 생기더군요."


김연수는 "다시 소설을 쓰고 책을 내게 돼서 참 다행"이라고 했다. 그가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골든로드'를 인용하면서 기억하는 미래는 빛으로 가득하다. '우리의 삶이라는 힘든 노동은/ 어두운 시간들로 가득하지 않아?/ 빛으로 가득 찬 이 몸들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




*이 글은 UPI뉴스에도 실렸습니다.

https://www.upinews.kr/newsView/upi20221014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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