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호의 문학공간] 김훈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
두 번째 단편집 '저만치 혼자서' 펴낸 소설가 김훈
노년의 해체된 삶, 조롱당하는 청춘, 역사의 야만
임종을 앞둔 늙은 수녀들의 낮고 쓸쓸한 자세
"세월에 풍화된 '사랑', 무력하지만 아름다워"
'사랑이라는 말은 이제 낯설고 거북해서 발음이 되어지지 않는다. 감정은 세월의 풍화를 견디지 못하고 세월은 다시 세월을 풍화시켜간다. 그렇기는 하더라도 그때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나은희의 온도를 사랑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
사십 년 전 미국으로 이민 간 '나은희'가 아들의 취업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그제야 '나'는 그 시절 그녀와 나누었던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떠올린다. 소설가 김훈이 16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소설집 '저만치 혼자서'(문학동네)에 수록한 '대장 내시경 검사'의 한 대목이다.
나은희는 남녀공학이던 지방 소읍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아버지는 6·25 때 죽었고 엄마가 홀로 우동 장사로 뒷바라지했다. 서울로 진출한 나와 나은희를 두고 시골에서는 현수막을 걸고 '우리 동네 인물'인 '저 두 녀석은 읍내에 동상을 세워야' 하는 인물이라고 경로당 노인들은 자랑했다. 나은희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일하다 미국으로 취업 이민 갔다. 헤어지기 전 그들은 추운 날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가 허름한 여관에 들어가 '작별 의식'을 치렀다.
'나은희의 가슴에는 보랏빛 주근깨가 흩어져 있었다. 주근깨는 골짜기를 건너서 양쪽 젖무덤 위로 대열을 이루었다. 주근깨는 젖꼭지 가까이에 모여 있었고, 멀리 겨드랑 쪽에 혼자서 박혀 있는 것도 있었다.' 이어지던 그날의 대화.
-주근깨가 쫙 깔렸구나.
-왜, 보기 싫어?
-아니, 좋아. 별자리 같아. 푸른색이네.
-봄에는 색이 진해지고 겨울에는 흐려져.
-신기하구나, 니 점은.
-플로리다는 늘 여름이라니까, 진해지겠지.
노년에 이혼한 처지인 '나'는 수면으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려면 보호자가 필요한데 마땅히 청할 사람이 없어 난감했다. 도우미 여자에게 보호자 역할을 부탁해 검사를 마치고 마취에서 깨어날 때, '푸른 주근깨가 별자리처럼 깔린' 가슴을 떠올리며 명왕성을 지나 우주 공간을 영원히 벗어날 보이저2호가 배경에 거느리는 푸르고 붉은 주근깨 같은 별들의 환영을 본다. 산문시처럼 흐르는 이 단편에 대해 김훈은 "슬픔과 고통이 세월에 의해 풍화되면 마음속에는 환영이 남는다"면서 "환영은 무력하지만 아름답다"고 썼다.
김훈은 11년 전 장편 '흑산'을 발표하던 시점에 만났을 때만 해도 "소설에서 지금까지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쓰지 않았다"면서 "글로써 사랑을 말하는 경우는 오히려 사랑의 결핍과 부재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 사이 세월에 풍화된 것인지는 모르되 그가 '사랑'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이 단편은 각별히 눈에 띈다. 이번 소설집은 썼지만 버릴 것들은 버리고, 발표 안 했지만 선택한 작품을 포함해 7편을 담았다.
강건하면서도 세밀한 사실주의 문체가 주는 감흥이 특징인 김훈의 문장은 야만의 현실을 질타하는 굵직한 서사를 실어왔다. 이번 소설집은 문장은 여전하되 역사와 판타지에서 한발 물러나 소소한 이웃 필부들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고 썼다.
노년의 이웃들은 쓸쓸하다. '저녁 내기 장기'에는 공원에 나가 내기 장기를 두는 '이춘갑'과 쓰레기 수레를 끌다가 구청에서 해고당한 '오개남'이 등장한다. 이춘갑은 외환위기 때 이혼했다. 채권자들에게 아파트만은 넘기지 않기 위해 아내 명의로 소유권을 바꾸고 서류상 합의이혼 절차를 밟았다. 도장을 찍던 날 아내는 아홉 살 난 아들을 끌어안고 울면서 말했다.
'괜찮아. 집만 있으면…… 도장으로 사는 게 아니니깐. 그렇지, 영수야?'
채권단이 정말로 이혼했는지 집 주변을 맴돌자 부부는 별거했고, 법률적 이혼과 사실적 별거가 굳어졌다. 아내가 집 판 돈 반을 보내오자 이춘갑은 '이로써 심정적으로나 인륜적으로나 삼인칭 타자가 되었다는 통고였을 것'이라고 돌아본다. 아내는 재혼했고, 미국에서 공부하는 아들로부터 그녀의 부음을 듣는다. '영정 사진 속의 전 아내는 머리 한 가닥이 이마 위로 흘러내려와 있고, 시선은 사진틀 밖 세상을 내다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날려서, 영정 속에 바람이 부는 듯했다.' 뒤에 붙인 '군말'.
"호수공원 장기판에서 나는 해체되는 삶의 아픔을 느꼈다. 저마다의 고통을 제가끔 갈무리하고 모르는 사람끼리 마주앉아서 장기를 두는 노년은 쓸쓸하다. 삶을 해체하는 작용이 삶 속에 내재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서 보았다."
노년의 삶만 있는 건 아니다. 청년과 자라나는 세대의 어두운 구석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영자'는 노량진 '구준생'(9급 공무원 준비생)들의 고달픈 청춘을 드러낸다. '나'는 노량진 십층짜리 주상복합건물에 있는 고시텔 원룸에서 영자와 일 년 동안 동거했다. 고시텔 이름 '집현전'(集賢殿)은 너무 높아서 쓸쓸하다. 시골에서 작은 어선을 팔아 보내준 보증금으로 원룸에 사는 내가 선택한 동거인 영자는 관리비만 낸다. 나는 어렵사리 합격해 산으로 둘러싸인 시골 면사무소로 내려가 노인들만 남은 마을에서 온갖 수발을 드는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영자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이들 삶의 세목을 속속들이 취재해 풀어내는 대목이 이 단편의 전부다. 김훈의 시선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청춘의 사투가 핍진하게 드러난다. 김훈은 "제도가 사람을 가두고 조롱하는 모습을 나는 거기에서 보았다"면서 "인간의 생존 본능을 자기 착취로 바꾸어버리는 거대한 힘이 작동되고 있었다"고 '군말'을 붙였다.
'손'은 부모의 이혼과 방기로 또래의 여자 아이를 강간해 죽게 한 '철호'에 대해 썼다. 철호에게 강간당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는 '연옥'의 아버지는 굳이 딸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고 우긴다. 그 아이를 구조한 119 대원이 아이를 물에서 건질 때 간절하게 구조대원 손을 꽉 붙들었다고 기록한 대목이 안타까운 명분이다.
김훈은 소방사가 물속에서 아이의 손을 잡았을 때의 느낌을 적은 글에서 이 단편을 건졌다고 했다. 그는 "인간의 손은 여전히 나의 소중한 테마"라면서 "노동하는 손, 사랑하는 손, 쓰다듬는 손, 주무르는 손, 주는 손, 받는 손, 부르는 손, 보내는 손, 기도하는 손, 연장을 쥐는 손, 악기를 쥐는 손, 무기를 쥐는 손, 고운 손, 부르튼 손, 그리고 이 세상의 수많은 손잡이에 남아 있는 손들의 자취와 표정에 대해서 나는 쓰고 싶다"고 썼다.
김훈이 줄기차게 써온 역사와 인간의' 야만'을 직시하고 드러내는 이야기는 '명태와 고래', '48GOP'로 변주된다. '명태와 고래'는 동해 어항에서 피난민들과 함께 어쩔 수 없이 인근 남쪽 포구로 피신했다가 금이 그어져 월남민 신세가 된 '이춘갑'의 기막힌 삶을 다룬다. 명태잡이를 하다 안개 낀 날 해류에 밀려 북쪽 고향 포구로 갔다가 인민군에게 붙잡혀 남쪽 포구 그림을 그려주고 풀려났는데, 그는 이후 간첩 혐의로 감옥에서 십삼 년을 살았고 가족은 그 사이 흩어졌으며 나와서는 갈 곳이 없어 고향 포구로 다시 간다. 그곳에서 동네 포구를 그린 그림들을 수협 복도에 전시하는 마지막 날 그의 부친처럼 바다로 떨어져 사라진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를 읽고 이 소설을 구상했다는 김훈은 "제도화된 폭력은 그 야만행위를 자행하는 자와 피해자와 방관자들의 인간성을 심대하게 파괴했고 그 시대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고 썼다.
'48GOP'는 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대치하는 전방을 무대로 전사자 유해 발굴 에피소드를 곁들여 무심한 역사의 야만을 드러내는 단편이다. 실제로 작가가 근무했던 부대를 방문 취재한 뒤 썼다는 이 단편 제목에 '48'이라는 숫자를 붙인 건 그가 1948년 남한 정부가 세워진 해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군말을 붙였다. 그의 부친은 나라를 잃었던 1910년 생이니, 나라를 잃고 다시 세우는 부자의 생애가 이 두 숫자에 좌표처럼 찍혀 있노라고 썼다.
마지막에 배열한 표제작 '저만치 혼자서'는 죽어가는 늙은 수녀들을 수용하는 '도라지 수녀원'을 무대로 전개되는, 막막하고 무연한 죽음에 대한 기록이다. 미군들을 상대한 '특수업태부'들을 돌봤던 손안나 수녀와, 먼 섬에 격리된 나환자촌에서 삶을 바친 김루시아 수녀가 중심이다. 이들의 마지막 가는 길은 담담하면서 지극히 낮은 자세여서 슬픔보다는 허전함이 앞선다. '도라지 수녀원'의 본디 명칭은 12세기 라인강 언덕 자연동굴에 있던 수녀원의 마가레트 수녀 이름을 딴 '마가레트 수녀원'이었다. 마가레트는 죽어가는 자들을 구원이나 인도가 아니라, 동행의 방식으로 임종까지 함께 가서 망자들을 배웅했다. 망자들이 숨을 거두고 나면 마가레트가 늘 하던 기도.
'주여, 저를 이 사람보다 나중에 거두어들이시니 제가 이 사람을 배웅합니다. 주여, 이 영혼을 받아주소서'
임종을 앞둔 늙은 수녀들을 보살피다 마흔 살에 세상을 떠난 양종인 치릴로 신부의 기록에서 이 소설을 끌어냈다는 김훈은 "나는 양신부가 꿈꾸었던 죽음 저편의 신생에 대해서는 쓰지 못했고 죽음의 문턱 앞에 모여서 서로 기대면서 두려워하고 또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표정을 겨우 썼다"면서 "모자라는 글이지만 나는 이 글을 쓸 때 편안했고, 가엾은 존재들 속에 살아 있는 생명의 힘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썼다.
*이 글 UPI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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