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 취향과 관계
어릴 적 내가 처음 접하게 된 SNS는 세이클럽이라는 인터넷 플랫폼이었다. '타키'라는 메신저를 통해 밤새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다 다음날 학교에서는 병든 닭 마냥 시름시름 졸던 것이 일상이었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그 시절, 대면하지 않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방법은 통화와 문자 메시지뿐이었다. 하지만 당시 문자 메시지 발신료는 학생으로서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고, 대부분 학생들이 사용하는 정액제는 하루 50통에서 많게는 100통 내외의 문자 발송만이 가능하였다. 한 통, 한 통이 소중했기에, 고작 80자 내외의 텍스트로 내 감정과 의도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던 시절이었다. 문자를 통해 짝사랑하는 친구에게 겨우 두 글자 "자니?"'라고 물어보는 메시지는, 카카오톡 메시지와 그 무게감을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런 일상을 보내던 와중에 무료로 제한 없이 채팅을 즐길 수 있는 플랫폼이라니. 밤에 잠이 오겠는가? 그 시절의 우리는 매일매일 그렇게도 할 말이 넘쳤고, 밤새 떠들 친구들만 함께 있다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싸이클럽이라는 플랫폼이 등장하였다. 미니홈피라는 온라인상의 개인 공간은 '나'라는 사람을 보여주고 뽐내는 공간이었다. 주로 사진첩과 일촌평, 일기장이라는 게시판을 이용하였는데, 싸이클럽 미니홈피의 주 테마는 '내 주변엔 이렇게 재밌는 친구들이, 즐거운 상황들이 많아.'였던 것 같다. 얼핏 떠오르는 기억으로는, 미니홈피 내에서도 일촌평과 일기장이라는 게시판의 비중이 더 컸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은 친구들이 나한테 일촌평을 남겼어! 내 일기장의 글을 보고 댓글을 남겨주었어! 가 곧 나의 정체성이자 자부심이었다. 이를 통해 내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어떻게 하면 더 유명해질 수 있을까? TODAY(미니홈피 방문자 수)를 늘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그 시절.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최후까지 살아남고 가장 크게 성장한 게시판의 종류는 사진첩이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라는 SNS에서 우리는 주로 이미지를 통해 소통한다. 자연스레 소통의 방향은 이전보다 일방향적으로 변화하였다고 느낀다. 주변과 교류 중심의 플랫폼에서, 정보 전달이나 광고 등의 목적으로 활용되는 비중이 나날이 커졌다. 이러한 콘텐츠의 변화는 나를 드러내는 방법의 변화 또한 야기하게 되었다. 나의 친구나 지인을 통해 '나'라는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이전과 달리, 트렌드를 잘 따라가고 앞서 나가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나'를 드러내는 요즈음이다.
이 와중에 최근 불어왔던 문학 열풍은 개인적으로 아주 아주 반가웠다.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을 기점으로 문학과 독서에 대한 관심이 더 커졌다는 것을 여러모로 체감하였다. SNS에서는 민음사 등의 출판사에서 숏폼,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하여 책을 홍보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도파민이 홍수처럼 넘쳐흐르는 고자극의 시대에서 책이라니! 지적 허세를 드러내는 것이 최근의 트렌드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SNS의 발달과 함께 그동안 내가 누구인지, 내 취향이 무엇인지를 잊고 지냈던 사람들에게, 책은 이를 조금이나마 알게 해 주거나 고민하게 해주는 매개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MBTI를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은가. 겨우 알파벳 4개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간략하게나마 정의하고, 비슷한 성격이라며 반가워하고, 서로 잘 맞는 궁합이라며 호감을 가지기도 한다. 책은 MBTI처럼 명확하게 나를 집단적으로 구분해주지는 않지만 나의 '취향'을 알게 해 준다. 좋아하는 장르, 궁금한 주제, 감동적인 글귀 등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게 한다.
싸이클럽,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사람들 간의 물리적인 거리를 줄이고 소통에 있어서 시간적인 제약을 없애주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을 PR 하고 포장하도록 만들기도 하였다. 아주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는 듯하다. 새로이 등장하게 될 플랫폼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다양한 '내 모습'을 드러내는 건강한 형태의 네트워킹 서비스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명품가방이나 5성급 호텔 호캉스보다 '나'와 '우리'가 언제나 함께 느낄 수 있는 일상의 즐거움이 그 플랫폼을 가득 채우는 콘텐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