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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창작을 위협한다? 기술이 예술을 보호한다!

AI와 창작하고, 블록체인을 통해 심의하고, 암호화폐로 보상하는 시대

by 루체

1. 들어가며

2024년 하반기, 국내 한 출판 공모전에서 논란이 일었다. AI로 생성한 그림을 활용한 작품이 예선 심사를 통과한 탓이다. 심사위원단은 “표절은 아니지만 창작의 진정성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모호한 입장을 내놓았고, SNS에서는 ‘AI는 창작자인가, 도구인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일었다. 한편에서는 “AI를 잘 다루는 것도 능력”이라는 주장이 나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진짜 창작자들이 피해를 본다”는 우려의 목소리 또한 적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일은 더 이상 드물지 않다. 음악, 영상, 디자인, 글쓰기 등 거의 모든 창작 영역에서 AI는 이미 실력 있는 협업자처럼 활동 중이다. 문제는, 이런 창작물들이 점점 많아질수록 "누가 창작자인가", "누가 저작권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를 판단하는 일이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발 더 나아가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단순히 창작에서 AI를 사용하는 문제를 넘어서,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의 권리를 어떻게 판단하고,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분배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AI와 함께 창작한다면, 그 결과물을 평가하고 심의하는 과정에도 AI가 개입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판단은, 기술적으로 추적 가능한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행해질 수 있는가?"

"판단에 따라 공평하고 적정하게 권리를 제공할 수 있는가? 보상할 수 있는가?


AI, 블록체인, 암호화폐. 이 세 가지 기술은 이제 창작의 흐름 속에서 도구를 넘어 새로운 ‘질서’를 제안하고 있다. 이 글은 그 질서의 탄생 가능성과,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역할을 가져야 할지를 고찰하려 한다.



2-1. AI와 함께하는 창작

AI는 스스로 감정을 느끼지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지도 않는다. 인간이 주어진 재료를 선택하고 편집하듯, AI는 확률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결과를 조합해 출력한다. AI는 ‘창작자’라기보다 ‘생성 도구’에 가깝다. 그러나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프롬프트를 설계하는 사람의 개입은 점점 더 창의적이고 섬세한 기술로 변모하고 있다. 단순히 ‘명령을 입력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도를 가진 설계와 조율의 과정이다. 결국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은 프롬프트 설계자, 모델 개발자, 데이터 제공자, 플랫폼 구조가 총체적으로 얽혀 만들어낸 협업 결과다.


즉, 오늘날의 AI 창작은 단일한 창작자가 존재하지 않는, 다층적 창작 행위에 가깝다. 더 이상 창작이란 단독 서명된 예술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프롬프트에 담긴 인간의 의도, 알고리즘이 생성한 결과, 그것을 다시 조합한 편집의 흔적까지도 모두 ‘창작’의 일부가 되는 시대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저작권의 판단 기준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2-2. 블록체인과 함께하는 심의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가?”, 그리고 “그 기여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이때 떠오르는 것이 바로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은 단지 암호화폐 거래를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 본질은 기록의 불변성과 투명성에 있다. 누구나 열람할 수 있으며, 누구도 조작할 수 없다. 이 특성은 AI와 인간이 협업한 창작 과정의 기록을 추적하고, 기여도 기반의 저작권 판단을 위한 ‘디지털 공증 시스템’으로서 매우 강력한 가능성을 가진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음악 작품이 있다. 이 곡은 GPT 기반 AI가 작사했고, Suno AI가 작곡했다. 프롬프트는 한 사람이 작성했고, 그 결과물을 편집한 또 다른 사람이 있다.

이때 블록체인을 활용한다면, 각 단계마다 ‘누가’, ‘언제’, ‘무엇을’, ‘어떻게’ 기여했는지가 스마트 계약 형태로 자동 기록된다. 이러한 기록은 저작권 판단의 기준점이 되고, 분쟁 시 신뢰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또한 블록체인은 단순한 기록을 넘어서 ‘기여도 평가 도구’와 결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AI가 생성한 결과물과 기존 저작물 간의 유사도 수치, 프롬프트의 창의성 분석, 편집자의 변형 기여율 등을 AI가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그 결과를 체인에 기록하는 구조다. 이렇게 되면 ‘창작성의 정도’를 수치로 표현하는 일종의 디지털 심사가 가능해진다.


물론 이 모든 기술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블록체인은 AI 시대의 저작권 심의 방식이 더 이상 주관적인 판단만으로는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는 당연하게도, 이 기록을 어떻게 보상과 연결짓느냐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2-3. 암호화폐로 이루어지는 보상

기록은 곧 권리이고, 권리는 곧 보상으로 이어진다. 창작물이 자산이라면, 그 자산은 어떻게 나누어져야 할까?


전통적인 저작권 구조에서는 저작자 단일 명시 → 수익 일괄 귀속이라는 방식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AI 시대의 창작물은 애초에 협업적, 복합적, 다기여적이다. 그리고 블록체인은 이 다양한 기여를 정확히 기록하고 추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그 기록을 바탕으로 어떻게 공정하게 보상할 것인가이다.


바로 여기서 암호화폐(가상화폐)가 등장한다. AI 창작물이든 인간 창작물이든, 그 권리를 토큰(token)처럼 쪼갤 수 있다면? 그렇다면 창작자, 프롬프트 설계자, 모델 개발자, 편집자, 플랫폼 제공자 등에게 기여도에 따라 디지털 자산을 분배할 수 있다. 이 자산은 코인이나 NFT 형태로 실시간 정산되며, 2차 사용이 일어날 때마다 자동으로 보상이 재분배된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저작권은 더 이상 정적인 ‘등록’이 아니라, 살아 있는 ‘거래 가능한 자산’이 된다. 이는 결국 창작 그 자체의 인식도 바꿔놓는다. 창작은 고립된 예술 행위가 아니라, 기술과 시스템 위에 구축된 창작경제의 일부가 된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이 새로운 시스템에서 ‘주체’는 누구인가?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 질문을 가지고 우리는 다시 ‘인간’으로 돌아가게 된다.



3. 다시 인간에게로: 기술은 수단일 뿐이다

우리는 AI와 함께 창작하고, 블록체인을 통해 기여도를 판단하고, 암호화폐로 보상을 주는 시스템까지 상상해 보았다. 이 모든 과정은 정교하고 빠르고 투명하게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스템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다.


AI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냈는지를 넘어서, 우리는 그 AI를 "어떤 의도로, 어떤 맥락에서, 누구를 위해 사용했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블록체인이 아무리 정교한 기록을 남기더라도,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다. 암호화폐가 수익을 나눠줄 수는 있어도, 그 분배가 정당한지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기술이 대신할 수 없다.


기술은 언제나 수단이다. 이제, 창작의 주체가 인간인지 AI인지를 묻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이 기술들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그리고 그 결과에 어떤 책임을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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