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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은 유난히도 추웠습니다.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며,

by 루체

내가 사는 울산은 아주 따뜻한 지역으로, 한겨울에도 좀처럼 눈이 내리는 것을 보기 어려운 도시이다. 그런 울산에도 몇 차례나 눈이 내리고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던 날이 있었던 만큼 올 겨울은 유난히도 추웠다. 나에게도 이번 겨울은, 그 추위만큼이나 매섭고 쓸쓸했던 시간이었다.


직장에서 일을 가장 빨리 배우는 사람의 특징 1위는 '직장을 그만둘 계획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배워야 하루라도 빨리 직장을 그만두고 본인의 꿈을 실현할 기회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HR 파트에서는, 일반적으로 한 조직에서 7년 정도의 경력을 쌓게 될 때가 지금으로부터 한 단계 점프업(Jump-up) 할 적기라고 한다. 현재 직장에서 어느 정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다 배우고 이직이나 창업 등을 통해 새로운 경력 개발 경로를 마련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는 것이다.


위 두 가지에 모두 해당되었던 나는,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지, 직장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고민이 끊이질 않았다. 작년 중순부터 조금씩 준비해 오던 일이 있었는데, 준비 단계가 진행되고 마무리되어 갈수록 회사에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도 여러 이슈들이 생기게 되었고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며 내 마음은 더 조급해져만 갔다. 얼른 성공해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수성가한 든든하고 멋진 아들이 되고 싶었고, 조금이나마 부모님의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내 마음과는 달리, 준비하던 일은 여러 장애물에 막혀 당장의 진행이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겨우내 아버지는 생업을 이유로, 어머니는 건강을 이유로, 동생은 취업을 이유로, 나 또한 나만의 고민을 이유로 각자가 서로를 돌볼 여유가 없는 날들이 이어졌다. 늘상 화기애애하고 대화가 잦던 우리 집에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대화가 단절된 적은 없었다. 이 와중에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는 것은... 적절한 타이밍이라고는 절대 볼 수 없었다. 설령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한다 한들 지금보다 더 잘된다는 보장 또한 없지 않은가. 가족을 먼저 생각하자,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자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문하고 노력했다. 지금은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지만, 수개월 간 나름대로의 일을 준비하며 뜨거워진 가슴을 식히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뫼비우스의 띠 마냥 내 생각의 방향과 순서가 뒤엉키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 정리하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2월의 어느 화요일,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이 많았던 탓에 점심시간도 반납해 가며 업무를 보다가 3시가 될 즈음 아주 뜬금없이 휴가를 내고 홀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내 안의 이성적인 나와 마주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가 하는 말을 온전히 받아들일 용기가 생긴 것 같은 날이었다. 마침 날씨는 봄처럼 따스했고 쾌청했다. 온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무척이나 허기졌다.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 가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피자 한 판을 해치웠다. 그러고는 마음의 공허함을 달랬다. 넓은 바다와 하늘을 무대 삼아, 스스로를 꾸중하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며 억눌렀던 울분을 토해냈다.

그리고 며칠 후 부모님에게 이러한 마음을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털어놓게 되었다. 현실을 올바르게 직시하고 더 이상 철없이 굴지 말아야겠다는 선언적인 대화였다. 역시나, 부모님 또한 아직은 내가 더 직장에서 근무하길 바라셨다. 각자의 생각과 계획을 공유하며 지금의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고, 또 서로를 응원하고 의지하며 지금의 어려운 순간들을 함께 이겨내자고 다짐하였다. 마침 이 날은 브런치 스토리 작가로 선정된 다음 날이기도 하다 ^_____^


올해도 어느덧 벌써 3월이다. 봄이 코앞으로 다가왔음을 알려주려는 듯 꽃샘추위가 엄습하고 봄비가 내리는 이번 연휴이다. 언젠가 되돌아보면 2024년의 겨울은 나를 또 한 단계 성장시켜 준 시기였을 것이라 기대한다.

내가 마음을 다 잡고 행동을 잠시 미루는 것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다. 나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을 것이며,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도전과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시기와 기회를 위해, 지금의 실망과 무력함을 한참 이겨내고도 남을 행복을 위해 한 번의 호흡을 더 고르는 것일 뿐이다. 지금 시기에 적합한 노력으로 대체할 뿐이다.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를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언제나 안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래도 이번 봄에는 좋은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내가 생각하는 대로 술술 풀리지는 않겠지만, 지난겨울보다 덜 아프고 덜 고통스러운 날들이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다가올 모든 날들이 행복하고 기쁠 수는 없겠지만, 외롭고 쓸쓸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따스함으로 가득 찬 안온한 날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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