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절기 시리즈 – 3. 경칩(驚蟄)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땅 속에서 깨어나는 날

by 루체

지난 설 연휴 내내 즐겼던 과식의 즐거움이 마치 코스피 주가처럼 그 기세가 꺾일 줄 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덕분에 살이 통통 올랐다. 주변에서는 그런 날더러 기름기가 좔좔 오른 제철 생선 같다며, 방어 중의 방어 ‘상방어’라 부르기도 한다. 대방어도 아니고 상방어는 뭐냐며...


본래 개구리가 깨어나는 날로 흔히 알고 있는 경칩은 놀랄 경, 숨을 칩 자로 겨울잠을 자던, 숨어있는 동물들이 천둥소리를 듣고 놀라 움직이기 시작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 옛날 경칩 즈음에는 천둥이 자주 쳤을지 모르겠지만, 2020년대의 개구리들은 과식으로 살이 통통 오른 인간의 기름내를 맡고 깨어날지도 모르겠다.




취미 삼아 명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흔히들 사주명리하면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으로 보거나, “그거 다 통계학이라던데, 그렇게 치면 쌍둥이는? 같은 날 태어난 사람들은 다 기질이 같냐? 운명이 동일하냐?” 등의 비판적인 견해를 많이들 가지시는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명리를 공부하며 가장 먼저 얻은 생각은, 이것이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이 아니라 대응하는 방법에 더 가깝겠다는 통찰이었다. 기본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나의 기질을 바탕으로 자연의 순환과 흐름이 가져다주는 환경과 기운의 변화를 다루어, 결과적으로 나에게 발생할 수 있는 생각이나 사건을 짐작할 수도 있도록 한다.


대응할 수 있다는 건 “잘 대응할 수 있다.”는 말과는 조금 다르다. 아무리 잘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기대했던 만큼의 결과를 얻지는 못할 수도 있다. “뭐야! 아무리 잘 예측하고 준비해도 잘 안 될 수도 있다고? 그럼 뭐하러 공부하고 준비해?” 하는 비관적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으나, 나는 오히려 위안을 얻었다. “어차피 결과가 세상에 달려있는 것이라면, 그 결과라는 것에 집착할 필요가 없겠다. 행복과 안정은 그 결과가 아니라 그저 내 행동과 마음에 달려있겠다.” 도리어 드넓은 평화를 느꼈다. 그렇게 결과에 관계없이, 세상과 자연이 주는 흐름에 따라 나의 변화를 관찰하고 후행 분석하는 것은 명리학을 통해 새로이 경험하는 건강한 환류였다.


날이 따뜻해졌다고 해서 동면에서 깨어난 동물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활동하기 좋은 날씨에 먹잇감이 넘쳐나더라도 누군가는 굶어 죽기도 하고 또 천적에 의해 잡아먹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저 본능에 의해 또 자연의 섭리에 의해 깨어나고 활동한다.



철학, 명리학, 역학 등 여러 분야를 반찬 삼아 마음공부라는 밥상을 차려갈수록 점점 깊어지는 양가감정이 있다. 내가 미천하게나마 깨닫게 된 작고 귀여운 통찰을 주변에 나누어 그들을 돕고픈, 입을 열고 싶은 마음. 동시에, 메시지의 울림은 각각의 시야와 세계에 따라 그 진동이 다르기에 아무리 잘 전달한다한들 와닿지 못하거나 도리어 꼰대가 될 수도 있으니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어야 한다는, 입을 닫아야겠다는 마음.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말해줘 봤자 이해 못 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할 그릇”일 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그런 존재이겠지. “나이 먹을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라.” 는 문장을 다시금 깊이 새기며, 열어야 할 것은 지갑뿐만 아니라 내 머리,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있겠다며 성찰해 본다.


어쩌면 자연은 그동안 내 옆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봐 주며 “아휴, 이 고집불통 꼰대는 언제쯤 내 메시지를 알아보려나?” 하며 기다려줬을지도, 혹은 아직도 멀었다며 계속 기다려줄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천둥소리를 듣고 깨어난 이유는

먹잇감을 ‘많이 가질 수 있어서’가 아니라

먹잇감을 ‘얻을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결과를 계산하며 움직이려 하는 반면

자연은 그저 조건이 되었을 때 움직인다.


경칩은 우리에게 자연이 결과를 약속하지 않음을,

다만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돌이켜보니

세상은 언제나 살아볼 만한 계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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