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다시 묻는 일의 가치
학창 시절 당시만 해도 내가 잃어버릴 수 있는 것 중 가장 치명적인 물품은 지갑이었다. 학생이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엔 대부분 그랬다. 현금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늘 현찰을 지니고 있었고 거기에 신용카드 또한 함께 들고 다녔다. 지갑을 잃어버리면 현금은 당연히 누군가 가져갔을 것이라 체념했고, 얼른 카드거래 중지를 위해 카드사별 고객센터에 전화를 돌리는 것이 일이었다. 주민등록증 재발급이 귀찮아서 민증만이라도 돌아왔으면 좋겠다며 빌었었다.
그러다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생긴 이후로는 조금 양상이 달라졌다. 세상은 현금과 카드를 예전만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금전 분실을 우려하던 세상은 정보 분실을 우려하는 세상으로 변했다. 스마트폰에 담겨 있는 연락처, 계좌 정보, SNS, 사진 등 여러 애플리케이션의 세팅과 그 안에 담긴 정보와 역할들.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기간 동안 우리는 늘 당연시하던 대부분의 기능을 상실한다. 활동에 제약이 생기고 세상과의 소통은 강제로 단절된다. 이는 범죄의 변화 또한 야기하였다. 물리적인 절도 행각은 개인정보를 활용한 스미싱과 같은 사기로 그 양태가 바뀌어져 갔다.
앞으로는 AI와의 대화, 개인의 LLM 데이터를 훔쳐가고 잃어버리게 되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AI 발전에 따라 GPT와 같은 LLM, 생성형 AI가 진화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정보를 묻고 얻으며 데이터를 교환한다. AI와의 대화에는 단순히 누군가의 생활 습관이나 정보를 넘어 고민, 가치관, 판단 방식, 사고 패턴 등 많은 것이 담긴다. 대화가 쌓여갈수록 생성형 AI는 그 사용자의 자아를 닮게(또는 얻게) 된다. 생성형 AI의 분실은 곧 누군가의 자아를 잃어버리는 꼴과 유사하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새로운 범죄가 생겨났듯이, 생성형 AI를 활용한 더욱 고도화된 범죄가 우려되기도 한다.
학창 시절 내가 잃어버릴 수 있었던 것은 물건이나 돈이었는데, 스무 살 성인이 되어서는 정보를 잃어버렸다.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서 나는 내 자아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잃어버리는 것의 변화는 곧 우리가 무엇을 가치로 여겨왔는지를 보여준다.
수 차례의 산업혁명을 포함한 많은 변화에도 인간의 경제활동은 늘 동일한 구조를 가져왔다. 우리는 늘 시간을 팔았다. 정확히는, 시간을 노동이라는 형태로 변환해서 팔아왔다. 공장 노동, 사무 노동, 서비스 노동, 지식 노동 등 다양한 양태를 가져왔지만 본질은 늘 같았다. 그리고 노동, 생산활동의 주체인 인간은 다양한 소비활동을 하며 경제 생태계를 구축해 왔다.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 취미 활동을 위해, 때로는 사치를 위해 소비활동을 했다. 이러한 인간의 소비 수요는 또 다른 생산활동의 매개나 트리거가 되어 경제를 확장시키는 등 순환을 만들어냈다.
AI에게는 인간과 다른 특징이 있다. AI는 노동, 즉 생산활동을 무한히 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노동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쉬지 않고, 임금도 없고, 생산량 제한도 없다. 소비에 대한 욕망도 없다. 무한한 생산활동으로 가치를 창출하지만 건강한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소비, 수요의 영역에서는 비중이 없다. 과연 그 속에서 그간의 경제 생태계는 유지될 수 있을까? 생산활동 후 AI에게 남는 것은 사용자가 가진 삶의 경험과 통찰, 판단 등의 가치관뿐이다.
앞으로 인간이 사고팔 수 있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자아와 통찰일 수도 있다. 일론 머스크의 인사이트를 얻기 위해 , 일론 머스크 Ego AI와의 1시간 대화권을 $1,000에 구매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간 깊숙이 자리 잡은 생산력 기반의 노동 가치는 모두 AI에 대체될 것이다. 그 대신 어떤 형태의 역량이 새로이 대두되고 물질적인 가치가 될지는 알 수 없다.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이겠으나, 인간은 이제 "얼마나 오래 일했는가?", "단위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유를 할 수 있는가?"로 평가받을지도 모른다.
노동의 시대가 종말 한다면 사유의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일은 무엇이 될까?
AI는 노동을 무한히 복제하고 생산할 수 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 인간은 왜 일해야 할까? 우리가 하는 활동의 주요한 목적은 무엇이 될까? 과거 COVID-19와의 전쟁으로 비대면 수업, 재택근무가 일상을 차지하던 시간은 인간에게 새로운 결핍을 인지시켜주었다. 교우와의 스킨십 부족은 자라나는 학생들의 사회성 함양과 조직행동 규범의 이해를 저하시켰으며, 재택에서 근무하던 직장인들은 일종의 우울감과 의욕 저하를 느끼며 사무실 근무로의 복귀 의지를 보였다.
흔히 우리는 일을 생산활동, 금전적 수익을 얻기 위한 대가로 여기지만 일은 인간에게 사회적 활동으로써 보다 넓고 깊은 역할을 가진다. 본디 인간은 관계 속에 살아가는 동물이다. 일은 그 관계를 맺기 위한 사회 장치이자 생존적 도구이기도 하다. 단지 너무나 당연시 느껴지고 자리 잡은 역할이기에 우리가 그것을 느끼는 감수성이 부재했을 뿐이다.
AI가 인간이 수행하던 대부분의 일을 대체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일이 아닌, 관계를 만들어주는 행위"를 찾는 것이다. AI 시대는 인간이 노동을 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특수히 고도화된 생산성으로 인간이 일하지 않아도 기본적인 생활권은 보장이 되는 새로운 시대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그간 노동이 차지하던 포션만큼의 새로운 "생계형 관계 형성 활동"이 필요하다.
현시대의 인간은 돈 잘 버는 노동을 하거나 그러한 가치를 창출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다가올 시대의 인간은 새로운 생각을 하거나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진 통찰과 식견을 가진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것이다.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가?
당신은 어떤 통찰을 지니고 있는가?
당신은 통찰을 얻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