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기대 사이에서
‘배달의 민족‘과 같은 중개 플랫폼은 어느새 우리 삶 깊숙이 자리 잡아 일상이 되었다. 심지어는 배달해 주시는 라이더 분이 지금 어디쯤 오고 계시는지 위치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배달 음식을 받아 들고 한 입, 두 입.
상승하는 혈당과 함께 텐션이 올라올 즈음이면 어김없이 알림이 하나 뜬다.
“이번 주문은 만족하셨나요?”
별점을 매겨달라는 만족도 조사이다.
배달완료 후 별점 알림이 오는 시간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타이밍은 확실히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상담센터 직원과 통화 후에도, 물건을 새로 구매한 후에도,
특정 서비스를 제공받은 이후면 우리는 ‘만족도 조사’를 요청받는다.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나 또한 고객을 대상으로 만족도 조사를 요청할 때가 있다.
내가 제공한 서비스의 효과성, 성과를 확인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만족을 평가할까?
만족이란 무엇일까?
조사의 목적과 내용에 따라 ‘만족’을 정의하고 측정하는 수많은 지표와 산식들이 있겠지만, 근원적으로 아주 단순한 구조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만족 = 현실/기대"
내가 기대한 것 대비 실제로 경험한 효용의 크기.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만족이다.
현실이 기대보다 크면 우리는 만족을 느낀다.
반대로 기대가 현실보다 크면 우리는 부족함을 느낀다.
이 간단한 공식만으로도 인간은 왜 끊임없이 레이스를 펼치는지 조금은 설명이 된다.
사람들이 만족을 느낄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현실을 상승시키는 방법이다.
더 성장하고, 더 성취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한다. 승진을 하고, 더 좋은 집에 살고, 더 좋은 물건을 얻는다.
이 방법은 ‘결과’ 중심이다.
무언가를 얻었을 때 생기는 만족이다.
하지만 이 만족은 오래가지 않는다.
또, 인간은 결과 중심의 성취에 금세 ‘적응’한다.
오늘의 성장은 내일의 부족함이 된다.
그래서 현실이 올라가면 기대도 함께 올라가게 된다.
열심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어딘가 항상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 남아 있는 상태. 우리가 종종 그런 감각에 놓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족을 얻는 두 번째 방법은 기대를 조절하는 것이다.
욕망의 속도를 늦추거나 크기를 줄이는 것이다.
이 방식은 ‘결과’라기보다는 ‘상태’와 관련이 있다.
무언가에 몰입하거나, 의미를 찾거나, 충만감을 느낄 때 우리는 무언가를 얻지 않았음에도 만족을 느낀다.
이런 종류의 만족은 보통 성취보다는 행복이라는 단어에 더 가깝다.
현실을 높이는 첫 번째 방법은 우리를 성장하고 도전하고 더 멀리 나아가게 한다.
하지만 이런 삶만 추구한다면 우리는 끝없이 달리기만 하는 피곤하고 지치는 삶을 살 것이다.
기대를 낮추는 두 번째 방법은 지금 이 순간을 충분하다고 느끼게 하며 안정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런 삶만 좇는다면 우리는 그 자리에 멈추어 세상과 사회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
결국 더 좋은 방법이나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성장을 추구하되 물질적, 사회적인 외부의 목표가 아니라 자기실현과 같은 내면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기대를 줄이되 무기력한 체념이나 자기 위로, 합리화가 아니라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아는 겸손함을 바탕으로 조절해 나가는 것.
즉, 성장하면서도 충분함을 느낄 수 있는 삶.
그것이 내가 지향하고 싶은 방식이다.
만족하는 삶이란 어쩌면,
현실을 키워가면서도 기대가 그보다 앞서 달리지 않도록 하는 균형 있는 삶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