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기 힘든 날에
상실은 예고도 없이 찾아와 생명의 소멸을 전한다. 그러나 한 생의 소멸은 그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남겨진 이들의 삶 속에서 오래도록 계속되는 사건이다. 심장에 새겨진 이의 부재를,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한 생명이 태어나기 전까지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 축하가 넉넉히 주어진다. 태어난 뒤에도 해마다 축하를 받으며 자라난다. 작은 아이는 어느새 두 발로 세상에 나아가고, 또 하나의 작은 세상을 이루며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서 물들어간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자리에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낮은 명도의 아침을 맞는 것조차 괴롭고, 밥을 먹는 일마저 버거울 수 있다. 그 하루를 매일 견디는 일이 얼마나 힘겹고, 또 대단한 일인지 정작 스스로는 모를 수 있다.
우리는 사회에 속해 살아가지만, 때로는 사회 안에 있는 나 자신을 너무나 작게 여기고, 내 마음을 자꾸만 무시하려 할 때가 있다.
내쉬는 숨, 흘리는 눈물, 머릿속을 반복해 도는 생각의 회로들. 그 과정의 무게와 소중함을 스스로 보지 못할 때, 감당하기 어려운 비극이 조용히 자라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없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사람도 없다.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 말한다면, 아마도 감정을 돌아보지 않기로 하며 회피를 결심한 사람일 것이다.
사실 이 모든 과정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은 따뜻하고 포근하기만 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아픔을 마주하고도 다시 일어서는 시간까지 포함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은 나와 멀리 떨어진 과제 같은 것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고 고민하는 시간 속에 이미 녹아 있다.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하다’는 말은 어떤 이에게는 사실이 되지만, 또 어떤 이에게는 오히려 마음의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다. 그래서 세상을 보기보다 먼저, 당신 자신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다’라는 변함없는 사실을.
이것을 계속 기억하는 일도 결코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소중한 사람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거기에는 복잡한 이유가 없다. 소중하니까.
당신이 어디에 있든, 잠시 앉아 있기만 해도 온기는 머물고, 체중만큼의 흔적이 그 자리에 남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존재의 충분한 의미가 된다.
아픔과 슬픔이 많은 사람이 일어선다는 것은, 뒤따라오는 비슷한 이들을 품어주고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다는 커다란 능력이 된다.
괜찮으니, 이 길 위에서 천천히, 같이 걸어가 보자고.
어려운 시간과 힘겨운 마음으로 하루를 견디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잠시라도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온기와 여유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