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펜하이머, 2023> 리뷰 에세이
.장르: 드라마, 스릴러
.등급: 15세 이상 관람
.러닝타임: 180분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주연: 킬리언 머피
영화 <오펜하이머>는 전쟁 중 개발된 원자폭탄과 과학자, 정치인 사이에 있었던 사건흐름을 다룬 실화기반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될 것이다. "저 자리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
오펜하이머는 유럽에서 양자역학의 창시자들과 함께 공부한 뒤, 미국 대학 교수로 활동하며 본격적인 이론물리학을 가르쳤다. 그는 우주를 이루는 에너지의 원리를 이해하고 증명하려 했고, 그 지식은 전쟁 상황 속에서 핵폭탄 개발로 이어진다. 그렇게 그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개발 책임자가 된다.
핵폭탄 실험이 이루어진 날. 실패한다면 3년간 프로젝트에 투입된 모든 인력과 어마어마한 비용들이 물거품이 되고, 성공한다면 곧이어 전쟁에 사용되는 것이다. 폭발하기 직전까지 음악소리와 내 심장박동이 구분되지 않을 만큼 압박감이 엄청나다. 거대한 불기둥이 솟아나는 순간, 붉고 검은 뜨거운 구름이 화면을 가린다. 실험은 성공했고 화면 속 사람들은 환호하지만, 나는 어딘가 슬프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우주의 자연법칙이 사람의 '의도'를 가지는 순간, 그 힘은 별의 생애가 아니라 파멸로 향한다. 별은 사람의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
영화에서는 죄책감에 대해서도 계속 질문한다. 과학자도, 정치인도 그 엄청난 무게 앞에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어디까지일까. 감당할 수 없다면 피할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혼자서만 지는 게 맞는 걸까.
세상에는 수많은 원리들이 있고 이를 선하게 사용한다면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사회적 구조, 가치, 환경.. 톱니바퀴처럼 연결된 시스템으로 하루가 흘러간다. 한 사람의 책임을 논하기 이전에 그 자리가 먼저 있었다. 선택할 수밖에 없는 압박감, 상황, 환경 등 모든 것이 만들어낸 자리. 내 이름 석자가 서명되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되는 자리, 누군가라도 그 자리에 앉아 있어야 사회는 돌아간다.
'연쇄반응'이라는 말은 과학 이론을 넘어서, 인류 역사 내내 연달아 발생하는 사회적인 현상에도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정도의 차이일 뿐, 누구나 불안과 두려움을 품고 살아간다. 그런 사람에게 감당 가능한 선택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세상은 곳곳에서 여전히 그런 불안정한 위험을 감수하는 방식으로 흘러간다.
플루토늄과 우라늄은 임계점을 넘는 순간 연쇄반응하며 폭발한다. 이미 그 폭발은 아주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수소폭탄에 대한 윤리적 고민이 언제부터 커졌는가?
"우리가 무기를 실제로 쓸 때가 많다는 걸 깨달았을 때부터.."
비공식 청문회에서의 질문과 그의 답변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제로"와 "깨달았을 때부터"이다. 사람은 이론적으로 미래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사회적인 현상과 파급력은 실제상황이 되어야 알 수 있다. 사회를 구성하고 움직이는 것도 결국 사람이고, 각 개인의 상황과 변수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복잡하다. 이 영화에서 언급된 전쟁들이 발생한 계기들을 찾아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깨닫는다는 것은, 지식적으로 아는 차원이 아니라 사건의 발생부터 결과까지 모든 흐름과 영향력을 보고 행동을 변화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핵폭탄이 아니더라도 지금도 어디선가 '의도'하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오펜하이머, 아인슈타인, 트루먼 미국 전 대통령의 회고록 속에는 평생 빼낼 수 없는 가시 같은 기억이 기록되어 있다. 차라리 스스로 깊숙이 박아 심장에서 아예 빼낼 수 없게 눌러버렸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마음이 감당할 수 없는 선택과 책임은 무엇을 기준으로 미리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여전히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그 답을 찾으려는 마음만은 잃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건 이후에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다시 바라보며, 어떤 인과관계로 이해하려 하는가? 그 과정들이 결국, 이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