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정의하지 않고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불안할 때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릴까 스스로에게 자꾸 묻게 된다. 그런데 인생의 과도기나 중요한 일을 앞두고 느껴지는 이 불안을 잘 들여다보면, 그 자체가 보다 정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흔들리는 생각들 속에서도 심사숙고하며 애쓰는 나에게 "잘하고 있어" 한마디 건네는 일이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나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라는 것을 최근에 깨달았다.
우리가 살아온 사회에서는 매일의 성과가 정답이 되고, 그것이 곧 나라는 사람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삶의 다음 장을 준비하는 시기에도 자꾸 결론을 내리고 싶고, 질문에 빨리 답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직장이나 외부의 구조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내 내면의 속도까지 규정할 필요는 없다. 삶은 늘 곧은 길만 찾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조금 돌아가더라도, 나에게 맞는 길이 분명히 있다. 그 길을 나의 속도에 맞게 따라가다 보면, 넓은 바다도 보이고 쉬어갈 수 있는 의자도 보일 것이다.
어차피 떠오르는 모든 질문에 지금 당장 정답을 내릴 수는 없다. 우리는 언제나 타인과 상황, 사회라는 여러 층위를 함께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가장 쉽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질문은 언제나 '나'를 향한 것이 된다.
"나는 왜 이 정도의 선에 머물러 있지?"
"내가 무엇을 더 해내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을 반복할 때는 그만큼 인생의 중요한 재정비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충분한 시간 없이 당장 떠오르는 정답을 서둘러 대입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많은 정답을 찾고, 또 정의 내리고 싶어 하지만, 정작 그 속도에 대한 감각은 무뎌져 있다. 또한 스스로에게 가만히 머무르는 시간조차 잘 허용하지 않는다. 쉬는 중에도 계속 생각하고, 오늘의 나를 새롭게 정의 내려야 괜찮은 사람이란 것을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이 질문을 한 번 건네보고 싶다.
"햇살이 따스하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언제 느꼈나요?"
이것은 단순히 태양의 열기가 피부로 느껴졌는지가 아니라, 그 넓고 따뜻한 빛이 내 마음에 닿은 순간을 말한다. 데워진 마음이 복잡한 생각을 덮으며 잠시나마 쉬어간 적이 있었는지를 묻는 안부이다.
나 또한 지금도 그늘을 품고 살아갈 때가 많다. 그렇지만 어느 날 누군가가 건네준 온기, 땅에 머무는 밝고 투명한 창 속에 비치는 작은 행복 같은 순간들이 우리 삶을 분명히 좋게 만든다고 믿는다.
모든 질문을 할 필요도 없고, 모든 질문에 정답을 내릴 필요도 없다. 나라는 사람은 결국 내가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이며, 그래서 내가 가장 잘 돌볼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마음에도, 발이 닿지 않는 불안 속에서도, 그 시간은 정답을 몰라서 괴로운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인 것에 조금 더 집중해 본다. 그래서 불안을 바라보는 이 시간조차, 결국은 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게 될 거라는 기대를 조금씩 받아들이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