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글쓰기 노동자의 일상기록(9)
내 나이쯤 되면 학교에서 뭘 배웠는지 기억해내기 어렵다. 그 배움들은 이후의 삶을 통해 내게로 스며들었거나 소멸했을 것이다. 온전한 내 것이 됐거나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방금 전에 읽은 책장의 문장처럼 또렷한 내용이 하나 있다. 나는 대학에서 시창작 이론을 수강했다. 전공필수 과목이라서 피해갈 수가 없었다. 아마도 1학년 첫 수업이었을 거다. 자기소개를 마친 교수가 칠판에 커다랗게 다섯 자를 썼다. 낯설게 하기.
넥타이 매고 홍보실에 출근하던 때 얘기다. 신문사 등의 매체 관리와 함께 홍보실의 중견사원으로서 나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사보를 만드는 것이었다. 계간(季刊)으로 나오는 사보를 위해 계절마다 취재를 다녔다. 촌스럽고 폐스럽게도 ‘가정탐방’ 코너도 있었다. 말 그대로 전국 어딘가에서 근무하는 사원의 가정을 찾아가 사진을 찍고, 원고를 작성해 사보에 실었다.
취재라고 해봐야 사진을 찍는 게 가장 큰일이었고, 길어야 한 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에게 간단한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일상을 아주 조금 관찰한 후에 기사를 썼다. 추가 취재가 필요한 경우에는 전화를 해서 물었고, 작성된 원고를 사전에 읽도록 해 혹여 있을지 모르는 민감한 내용을 걸러냈다.
취재대상 중에는 다른 동료들까지 데리고 가 고기를 굽고, 술판을 벌이는 ‘가정’도 적지 않았는데 나는 그런 상황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별다른 친분도 없는 남의 집에 찾아가 모르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일이 즐거울 리 없었다.
그날의 가정탐방은 그런 면에서 매우 바람직했다. 퇴근과 동시에 집에 가 가족의 얼굴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차를 마시며 몇 가지를 묻고 30분 만에 ‘탐방’을 끝냈다. 먼 곳까지 출장을 왔으니 저녁은 먹고 가라며 탐방을 마친 ‘가장’이 옷을 챙겨 입었다. 지방의 한 공단에서 생산부장으로 근무하는 그와 사보 취재기자인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호프집에 들어가 치맥을 했다. 조부장은 어디 가서 소고기라도 굽자며 잡아끌었지만 나는 소고기보다 닭고기가 더 좋다며 사양했다.
“○대리는 아직 결혼 전이지? 애인은 있어? 내가 좋은 것 하나 알려줄까?”
조부장과 나는 몇 번 인사를 한 적이 있는 사이였다. 하지만 의례적인 인사 외에 사담을 나눈 적은 전혀 없어서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본사 회의실이 아닌 호프집에서 마주 앉은 조부장은 수려한 말솜씨를 지닌,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를 꼬시려면 말야··· 처음이 어렵잖아? 기회를 만드는 방법을 알려줄게.”
조부장의 비결은 간단했다. 궁금하게 만들어라.
예를 들어 술집 마담을 꼬시려면 남들이 시키지 않는 술을 시켜.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두 시간을 있다 나와. 그걸 사흘 연속하는 거야. 그러면 마담이 생각하기 시작해. “뭐하는 놈인데 매일 와서 저러고 있다 가는 거지?” 그리고 일주일 정도 술집에 가지 않고 뜸을 들여. 어느날 불쑥 나타나서 같은 술을 시키는 거야.
“100퍼센트야. 무조건 마담이 먼저 말을 걸어. 어떤 일을 하시는 분이세요? 고민 있으세요?”
나는 조부장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들었다. 그리고 대학시절에 배운 ‘낯설게 하기’를 떠올렸다. 그가 하라고 하는 일이 정확하게 그거였다. 상대방에게 나를 낯설게 보이도록 유도해라. 의외성을 느끼게 해라. 사람들은 익숙한 일에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런 면에서 ‘익숙함’은 ‘노잼’과 동의어다. 비단 이성을 유혹하는 일이나 글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어디선가 본 듯한 드라마나 유튜브 콘텐츠에 ‘좋아요’를 찍어주지 않는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를 주장한 사람은 러시아의 형식주의자 빅토르 쉬클로프스키(Viktor Shklovsky)다. 이 단어 하나를 알게 됨으로써 나는 적어도 한 학기 등록금을 뽑아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100년 전의 고루한 문학이론에 ‘낯설게 하기’를 가둬둘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된다. 조부장은 이 말을 몰랐지만 누구보다도 ‘낯설게 하기’에 정통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한국은 시를 참 못 가르치는 나라였다. 좋은 시를 갖다 놓고, 그 시가 왜 좋은지 가르쳐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의 좋은 부분을 가리고 엉뚱한 곳을 보여주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의 ‘나빌레라’ 아래에 밑줄을 긋고 ‘시적허용’이라고 적도록 했다. 아무렇게나 써놓고 시적허용이라고 변명하는 습작생들이 생기도록 방치했다.
시는 지식이 아니다. 시를 마음으로 읽고, 제대로 느끼는 방법부터 잘 가르쳤으면 관념어 투성이에 시적허용을 남발하는 습작품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을 거다. 지금은 학교에서 시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그러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스며들고, 세상에 흩뿌려진 오해들을 주워 담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도 세상에는 시와 글에 대한 오해가 여전하다. 그래서 오히려 제때 학교에 다니지 못해, 글자를 뒤늦게 배운 사람들이 좋은 글과 시를 쓰는 경우가 많다.
나는 가끔 문해교육을 받고 한글을 깨우친 노인들의 시를 일부러 찾아 읽는다. 시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젊은 시절에나 할 법한 경험을 나이 먹어서 한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서 굴곡진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솔직한 글은 그 자체로 낯설게 보인다. ‘진솔함’이 곧 ‘낯설게 하기’인 경우다. 어려운 말, 그럴싸한 말을 늘어놓은 게 시가 아니고, 글이 아니라는 본질을 매번 상기시켜 준다.
1987년에 초판이 나온 <달 뜨면 씨 뿌리리리라>는 내가 가장 아끼는 시집 중 하나다. 시를 쓴 이정표는 당시 농고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이었다. 도시의 동년배들이 문학청년이랍시고 개폼 잡으며 백일장에 어슬렁거릴 때 어린 농부 이정표는 벼를 보고, 소를 치면서 시를 썼다.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보다 ‘모래를 뒤집고 열무씨를 뿌리며 그리워하는’ 미치게 푸르른 날이 그 시절의 내 마음을 더 크게 움직였다.
폭우가 지나간 다음 날, 그 다음날도
우리는
맑은 하늘을 보지 못했지
썩은 벼들은 무릎 아래 비적거리고
텃밭은 사라지고 강폭만 넓어졌지
저 강물이 우리밭인데
강물 속에 배추씨 뿌릴 순 없겠지
우리는
미치게 푸르른 날을 그리워하며
강 속에 울타리를 치고 물을 뺐지
모래를 뒤집고 열무씨를 뿌리며
우리는 늘
미치게 푸르른 날을 그리워했지.
- <미치게 푸르른 날>, 이정표
나는 글쓰기 노동자이지만 시는 쓰지 않는다. 아니 못 쓴다. 정확하게는 못 본다. 한참 시를 쓰고 싶었던 나이에 내게 남들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볼 수 없으니 쓸 수도 없다.
나는 AI와 함께 글을 쓴다. 하지만 전적으로 AI에게 글을 맡기지는 않는다. 세간에 알려진 바와 다르게 AI는 글을 쓸 줄 모른다. 저작도구이지, 저작자가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되묻는다.
“어째서요? AI는 스스로 사고할 줄 알고, 당신은 그걸로 저작물을 생성해내는데요?”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은 결과다. 나는 AI로 저작물을 생성하지 않는다. 조력을 받을 뿐 글은 내가 쓴다. 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글쓰기가 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남들이 한 대답에서 최적의 대답을 골라내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AI에게서 낯설게 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오리지널리티를 기대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Yes’라고 대답할 수 없다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AI로는 오리지널리티가 살아 있는 글을 쓸 수 없다. 그게 가능해진다 해도 한참은 더 남았다.
나는 글을 쓴다. 가능한 낯선 글을 만들어서 클라이언트를 끌어들이고, 독자를 유혹한다. 나도 이걸 AI가 다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데 불가능하다. 그러니 제발 이렇게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AI로 글을 쓴다고요? 너무 무책임한 거 아닌가요? 글쓰기 노동이 AI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직접 해보라. 한강 작가와 같은 AI를 쓴다고 누구나 <소년이 온다>를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차이를 모르겠다면, 인정하지 않겠다면 어쩔 수 없다. 글쓰기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타인을 만족시키면서 생계를 잇거나 명성을 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글을 쓰며 노는 것은 자유지만, 글을 쓰며 살기는 어렵다. AI시대가 왔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재능이 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멍청한 짓은 없다. 제발 나에게 AI시대가 왔어요. AI가 글을 쓰고 책을 낸데요. 당신들은 이제 끝장났어요, 라고 겁 좀 주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