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시대 글쓰기 노동자의 일상기록(10)
그다지 중요하지 않지만,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남산 초입에 있던 서울애니메이션센터는 연애시절 집사람과 내가 자주 찾았던 데이트코스다. 첫 데이트도 그곳에서 했다. 그날 나는 명동역에서 집사람과 만나 퍼시픽호텔 옆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갔다. 오르막길 끝에서 소파로(疏璠路)를 건너야 하는데 신호등 앞에서 집사람과 손을 처음 잡았다. 햇살이 떨어지던 그날 초여름 휴일 오후의 일에 대해 집사람은 결혼 후에도 몇 번이나 이야기하곤 했다. 결혼한 지 30년 가까이 지난 요즘은 그날의 기억보다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서 본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우가 더 많다.
1990년대까지 우리나라는 일본영화 상영이 금지된 나라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일이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TV 채널마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틀어줬는데 정작 일본영화는 상영이 금지됐다. 내 기억이 맞다면 우리나라에서 정식으로 개봉한 일본영화는 이와이 슌지 감독의 <러브레터>다. 이 영화는 1995년 작이고 1999년 국내에서 개봉했다.
집사람과 나는 첫 데이트 후에도 서울애니메이션센터에 자주 갔다. 정확히는 영사기와 빔프로젝트가 설치된 그 안의 작은 극장에 자주 갔다. PC통신 영화동호회에서 주최하는 상영회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몇 번이나 복사되면서 열화된 국내 미개봉작들을 VHS테이프로 봤고, 대다수가 일본영화였다. 1991년작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あの夏、いちばん静かな海)>도 그렇게 우리 부부 연애사에 끼어든 영화 중 하나다.
지금은 일본에서조차 그런 영화가 잘 보이지 않는데, 얼핏 보면 어떤 일본영화에는 줄거리가 없다. 사람의 말이 아닌 소리와 장면만으로 느낌을 만들어낸다. 말이 되지 않는 표현이지만 마치 움직이는 장면을 엮어놓은 슬라이드쇼와 비슷하다. 나는 이런 풍의 일본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좋아한다’고는 해도 그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내러티브 집착형 인간이다. 노래를 들을 때 멜로디나 박자보다는 가사가 먼저 귀에 와서 꽂힌다. 묘사 위주의 소설은 빨리 읽지 못한다. 일본영화는 이런 내 취향에서 거의 유일한 예외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나 짐 자무시의 영화를 지루해하면서도 오고가미 나오코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본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는 대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는 청춘영화다. 하지만 다른 청춘영화들처럼 멋지고 예쁜 커플이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들이 어설프고 부족해 보인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알게 되지만 남주인공 시게루는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고, 여주인공 다카코는 따돌림당하는 외톨이다. 청소부로 일하는 시게루가 누군가가 버린 서핑보드를 주으면서 영화가 시작되고, 그들은 내내 함께 바다로 나간다.
시게루는 ‘조용한’ 바다에서 서핑을 하고, 다카코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본다. 상대방이 들을 수 없으니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카메라는 서핑보드를 들고 바닷가로 나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비춘다. 둘을 연결해 주는 것은 서핑보드다. 다른 연인들처럼 손을 잡지도 않고, 입을 맞추지도 않는다. 그냥 서핑보드를 들뿐이다. 시게루는 서핑보드의 중간을 들고, 다카코는 끄트머리에서 약간의 무게를 받친다. 보드를 들고 바다로 향하는 둘에게 불량배들이 돌팔매질을 한다. 시게루는 흔들림 없이 앞을 보며 바다로 나아가고, 다카코는 시게루의 뒷모습을 보며 바다로 나아간다.
서핑은 시게루가 발견해낸 놀이다.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서핑보드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게루를 보고 방수복을 차려입은 서퍼들이 웃음을 터트린다. 같은 모습을 보며 다카코도 웃는다. 그때 어렸던, 지금도 어린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깨달았던 것 같다. 말없는 위안이 가장 강력하고 아름답다.
시게루가 보드 위에 서지 못하고 쓰러지는 사이 서핑보드가 망가진다. 돌아오는 길 시게루가 보드를 들고 가고, 떨어져나간 조각을 든 다카코가 뒤따른다. 그들은 각자의 조각을 들고 있지만, 하나로 연결된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은 이 영화 안에서 손 잡지 않고, 입 맞추지 않는다. 그저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을 뿐이다.
다카코가 서핑보드숍에서 8만 엔짜리 보드를 6만 엔에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다. 시게루는 월급날 12만 엔짜리 보드를 산다. 하지만 사실 그 보드는 9만 8000엔짜리다. 대신 그들은 몇 개의 장비를 덤으로 얻는다. 장비들의 사용법을 추측하면서 시게루가 알지 못했던 세계가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서핑보드를 든 시게루는 버스를 탈 수 없다. 다카코가 혼자 버스를 타고, 시게루가 뛰어서 버스를 쫓는다, 하나의 세계가 열리는 순간, 하나의 세계와 멀어지기 시작한다.
그때 알았어야 할까,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노래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보드를 타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을 말릴 수 없는 사람. 다카코는 빈자리가 많은 버스에서도 앉지 못한다.
어느 비 오는 날 시게루는 혼자 보드를 들고 바다에 나간다. 얼마 후 우산을 받쳐든 다카코가 시게루가 간 길을 따라 걸어간다. 바다에 도착했지만 시게루는 보이지 않고, 시게루의 보드만 혼자 파도에 떠밀려온다. 다카코가 서서 멀리 바다를 바라본다. 그녀는 울지 않고, 슬픈 표정을 짓지도 않는다.
내가 책상 앞에 앉으면 집사람은 말없이 커피를 내려 갖다 준다. 그리고 거실에서 혼자 책을 보거나, 텔레비전을 본다. 밥때를 두 번 넘길 정도가 아니면 어지간해선 말을 걸지 않는다. 말을 걸면 신경질을 내지만, 신경질을 내면서도 말을 걸어주고, 걱정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매일은 아니고 아주 가끔씩 나도 바다에 나가 돌아오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왜 그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사람이 하는 모든 일에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집사람은 내가 모르는 그 이유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