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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숭아 Dec 22. 2023


2023년의 끝자락에서

한동안 방향성을 잃었던 내게 해주고 싶은 말을 옮겨적으며

2019년 대학교 졸업 이후 쉴 새 없이 달려온 내게 올해 중순부터 시작해 번아웃이라는 것이 오고 말았다. 이 전에도 한 번씩 조짐은 보였어도 잠깐 쉬면 금세 회복하고 다시 일에 에너지를 잔뜩 쏟을 수 있었지만 이번은 다르다는 것을 느끼고 있던 시점에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며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면역 체계가 떨어진 듯 가벼운 감기에도 골골 앓았고 회복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런 증세는 몸 곳곳에서 나타났는데 특히 호르몬에 이상이 생긴 것을 알아챘을 때는 생각보다 몸 상태가 많이 좋지 않구나 싶었다. 이런 고민을 친구에게 이야기했더니 어떤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지 물어보았다. 내 대답은 간단하게도 "일"이었다. 올해 중반 기존에 맡은 업무에 더해 새로운 직책을 맡으며 많은 변화를 겪었는데 전임자보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에 막중한 책임감과 동시에 압박을 받았다.


"일 때문인 것 같아. 여러 가지로 바빠서..."

"일은 계속 해왔었잖아. 특별히 뭔가 달라진 게 있는 거야?"

"새로운 업무를 맡게 돼서 정신도 없고 그렇네."

"음... 새로운 업무가 많이 어려운 거야? 아니면 기존에 하던 일이랑 많이 달라서 적응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거야?"


친구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왜냐면 새로 맡은 일이 특별히 어렵다거나 기존 업무와 완전히 다른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 난 왜 이토록 힘들어하는 거지? 너무도 답답한데 무어라 설명할 길이 없었다. 그렇게 그 대화는 흐지부지 끝이 났지만 나는 오래도록 그 대화를 내 안에서 이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결국 이유를 찾아냈다.


어릴 적부터 잠깐이라도 발전하지 못하고 머물러있는 듯 느껴지면 나는 곧잘 불안해하곤 했는데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부턴 그 정도가 더 심해졌다. 그래서 주말도 자발적으로 반납하고 일을 하는 날들이 많아졌는데 그 한계가 극에 달했던 게 8월부터 10월까지 세 달 간이 었다. 주중 야근은 물론이고 주말에는 아침부터 집 근처 카페로 가서 일을 하다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되돌아보면 어떻게 그런 생활을 지속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다. 그땐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그런 에너지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쉬어야 할 시간에도 일을 하며 뒤처질 수 없다는 불안감과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애써 달래고 있었던 듯하다. 


또한 어느 순간 내가 가진 색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력, 나의 가치관에 따라 소신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타인을 돕는 자세. 이 모든 것들이 희미해짐에 따라 '나'라는 존재도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모름을 인정하고 알아가려 노력하는 대신 모른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고 나의 가치관과 생각을 이야기하는 대신 다수의 생각과 같은 시선을 가지려 했으며 타인의 장점을 바라보고 공생을 생각하는 대신 그들의 약점을 보고 내가 돋보일 수 있는 방법에 집착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아무도 나에게 그런 생각을 안겨준 사람은 없다. 그건 내 불안이 내 마음에게 남겨둔 부담이었다. 같은 맥락으로 결국 찾아오고야 만 번아웃도 계속해서 나 자신을 꽉 잡아두고 숨 쉴 틈을 주지 않아 생긴 일이지 않을까. 내 능력을 인정받고 남들보다 더 일찍 높이 올라가야 이 집단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조급한 생각이 결국 역효과를 일으켰다. 그리고 지금 드디어 내가 그토록 힘들어했던 이유를 찾았지만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어떻게 다시 '나'를 되찾아야 할지는 모르겠다. 다만 새해가 2주도 남지 않은 지금 이 시점에서 내년으로 넘어갈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5년 동안 쉴 새 없이 달려오느라 수고했어. 늘 생각으로 가득 차서 뒤척이며 지새운 밤들이 얼마나 많았어. 여태까지 이루어 낸 것들을 생각하면 고민으로 가득 찼던 밤들이, 숨차게 달려온 그 시간들이 절대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이제 나를 좀 놓아줘도 되지 않을까? 물론 아직 이루어가야 할 것들이 훨씬 많아. 그리고 그걸 이뤄냄으로써 비로소 내 마음속 불안이 해소가 될 것이란 걸 알아. 그렇지만 그 불안이 결국 나라는 사람을 지워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무엇보다도 내가 나로 온전히 존재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내게 숨 쉴 틈을 주고 싶어. 그렇게 하자. 조금만 여유롭게 그리고 자유롭게 걸어가자."


#2023 #연말 #기록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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