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미 드 구르몽은 무엇을 보았나
레미 드 구르몽의 「낙엽」은 보통 가을만 되면 라디오나 낭독 프로그램에서 분위기용으로 소환되는 시다. 사람들 머릿속에는 대충 이런 식으로 박혀 있다. “아~ 낙엽 밟는 소리 좋지~ 가을 감성~” 그리고 대부분은 거기서 끝난다. 누구도 “왜 굳이 매번 시몬을 불러 세우고, ‘좋으냐?’라고, 그것도 반복해서 묻지?”까지는 잘 안 간다.
이 시의 출발점은 아주 단순해 보인다. “시몬, 숲으로 가자. 나무 잎이 다 져버렸다.” 낙엽은 이끼와 돌, 오솔길을 덮고 있다. 겉으로 보면 그냥 가을 숲 산책 제안이다. 그런데 화자는 곧바로 이렇게 묻는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여기서 중요한 건 “좋냐?” 같은 툭 던지는 말투가 아니라, 조금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또렷한 “좋으냐?”라는 어조다. 이건 단순히 “기분 좋지?”가 아니라, “너 지금 이 소리를 어떻게 듣고 있니?”에 가까운 질문이다.
시몬은 이 시에서 단 한 번도 대답하지 않는다. 그 어떤 연에서도 시몬의 말, 시몬의 표정, 시몬의 생각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계속 불리고, 계속 질문만 받는다. 그래서 시몬은 이 시에서 “낙엽을 함께 보고 있는 청자”이면서 동시에 “아직 자기 운명, 자기 소멸을 자각하지 못한 사람”으로 읽힌다. 화자는 이미 어떤 걸 알고 있고, 시몬은 아직 모르는 상태로 끌려 들어오는 구조다.
낙엽의 이미지는 시가 진행될수록 변한다. 처음에는 그냥 환경 묘사다. 이끼와 돌, 오솔길 위를 덮고 있는 잎들. 그런데 곧 “빛깔은 다정하고, 모양은 쓸쓸하다” 같은 표현이 붙으면서 감정이 섞이기 시작한다. 대상의 색과 모양을 이야기하는데, 사실은 화자의 정서가 반사되고 있다. 그다음 단계로 가면, 낙엽은 더 이상 “물체”가 아니다. 바람에 흩어질 때 “상냥히 외친다”, 밟히면 “영혼처럼 운다”, “날개 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감각이 점점 인간적인 쪽으로 옮겨붙는다. 낙엽은 그냥 잎이 아니고, 이미 살아 있었던 것들의 잔해, 목소리, 흔적 같은 걸 대표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 내내 화자는 리프레인처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표면적으로는 낭만적이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꽤 시린 질문이다. ‘네가 발로 밟는 이 소리는 이미 끝난 생의 소리다. 이걸 너는 무엇으로 듣고 있니? 그냥 산책길 효과음으로 듣고 있니, 아니면 네 쪽으로 다가오는 무언가로 듣고 있니?’ 같은 느낌으로 읽힌다.
결정적인 건 마지막이다.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가벼운 낙엽이리니. 벌써 밤이 되고, 바람은 우리를 휩쓴다.” 여기서 처음으로 화자는 “우리”를 꺼내든다. 앞에서는 낙엽은 낙엽이고, 시몬은 낙엽을 밟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화자는 둘을 한 줄에 세운다. ‘우리도 언젠가 저쪽이 된다.’ 이때 비로소 시 전체의 논리가 드러난다. 이 시는 단순한 가을 풍경이 아니라, “시몬, 너도 결국 낙엽이 될 거다”라는 선언까지 이어지는 구조였던 거다.
그래서 이 시를 이렇게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시몬, 너도 낙엽이 될 것인데, 낙엽을 밟는 것이 좋으냐?”
이건 단순한 퀴즈가 아니라 인식 확인이다. ‘너는 지금 죽은 것들의 소리를 밟고 지나가면서, 그게 언젠가 너 자신의 자리라는 사실을 얼마나 자각하고 있니?’라는 질문인 셈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서, 이 구조를 그대로 다른 장면에 옮겨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도서관. “시몬, 도서관으로 가자. 고인들의 글이 쌓여 있다. 너는 좋으냐, 떠나간 자들이 남긴 글을 읽는 것이.” 낙엽은 죽은 나무의 잎이고, 책은 죽은 사람들의 언어다. 낙엽 밟는 소리 대신 페이지 넘기는 소리가 들어가면, “이미 떠난 자들의 흔적 위를 걷는 현재의 우리”라는 구조는 그대로 유지된다. 읽는다는 건 낙엽을 밟는 것과 비슷한 행위가 된다. 사라진 자들이 남긴 형상을 밟고, 넘기고, 지나가면서 그 안에서 의미를 듣는 것.
여기에서 또 한 발 더 나가면, 이런 말까지 자연스럽게 붙는다.
“시몬, 너는 단순히 글을 읽고 쓰기만 할 것이 아니다. 너는 네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남을 글을 써야 한다.”
낙엽의 논리를 삶으로 가져오면, 우리는 단순히 남이 떨어뜨린 잎 위를 밟고 사는 존재가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에게 밟힐, 누군가에게 읽힐, 어떤 흔적을 남길 존재가 된다. 시몬은 “무지한 청자”에서, “자기 소멸 이후까지를 상정하고 무엇인가를 남길 책임 있는 존재”로 올라간다.
결국 이 시를 그냥 “가을 낭만 시” 정도로 소비하면, 귀에 남는 건 “낙엽 밟는 소리”뿐이다. 라디오에서 틀어놓고 “가을엔 낙엽 밟는 소리죠~” 하고 웃으면서 넘어가기 딱 좋은 구조다. 하지만 화자가 시몬을 부르고, 반복해서 묻고, 마지막에야 “우리도 낙엽이 된다”라고 말하는 이 설계를 따라가면, 이 시는 훨씬 더 차갑고, 또렷한 얼굴을 드러낸다. ‘지금 네가 즐기는 이 풍경이, 사실은 네가 도착할 자리의 예고편이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