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메모하기 전에 까먹잖아

by 헤론 베누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드리퍼에서 물이 천천히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두 개의 아이디어가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하나는 며칠 전부터 붙잡고 있던 프로젝트의 핵심 구조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제 읽은 기사와 2018년 여행 중에 있었던 일이 갑자기 연결되는 통찰이었다. 두 생각 모두 선명했고, 중요했고,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는 이런 형태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평소에는 아이디어가 가뭄에 비라도 온 듯이 귀한데, 이런 날은 마치 장원영과 설윤이 동시에 말을 걸어오는 기분이다. 나는 황급히 휴대폰을 찾았다. 커피는 아직 추출 중이었고, 내 손은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고, 머릿속에서는 두 개의 생각이 동시에 "나 좀 붙잡아줘!" 하고 외치고 있었다.

휴대폰을 찾았다. 화면을 켰다. 잠금을 해제했다. 메모 앱을 찾았다. 탭 했다. 새 메모를 열었다. 커서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첫 번째 아이디어가 사라졌다.


"사라졌다"는 말이 정확하지는 않다. 사실 그것은 어딘가에 있다. 내 머릿속 어딘가의 서랍에, 혹은 구석에, 혹은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겠지. 프로젝트와 관련된 거였다는 건 안다. 구조에 관한 거였다. 중요했다. 그런데 뭐였지?

이게 이상한 게, 생각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그 생각의 윤곽은 남아 있다. 마치 방금 깬 꿈처럼. "아, 분명 뭔가 대단한 꿈이었는데..." 하면서도 내용은 하나도 기억 안 나는 그 느낌. 생각의 그림자만 남고 내용은 증발했다. 아니, 증발도 아니고, 그냥 손에서 미끄러져 나간 비누 같은 거. 잡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멀리 튀어나간다.

나는 두 번째 아이디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급하게 타이핑을 시작했다. "어제 기사, 2018년, 패턴인식의..." 손가락이 움직이는 동안, 두 번째 아이디어도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타이핑이라는 물리적 행위가 생각을 닻처럼 붙잡아주는 것 같았다.


여기서 잠깐,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라는 게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떠올리고 조작할 수 있는 정보를 임시로 저장하는 인지 시스템. 문제는 이게 터무니없이 작다는 것이다. 오래된 연구는 "7±2"라고 했지만, 최근 연구들은 훨씬 더 비관적이다. 실제로는 4개 정도, 어떤 연구는 3개라고도 한다. 3개. 세 개의 생각을 동시에 유지하는 게 우리 뇌의 한계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보는 "청크(chunk)"라는 단위로 저장된다. 청크. 이 단어 자체가 뭔가 투박하고 대충 뭉쳐놓은 느낌이다. 생각은 깔끔한 파일이 아니라 대충 던져진 덩어리라는 것. 우리는 세상을 덩어리로 인식한다. 문장도 단어 하나하나가 아니라 의미 덩어리로, 음악도 음표 하나하나가 아니라 프레이즈로. 그래서 "고양이가 매트 위에 있다"는 문장을 기억할 때, 우리는 단어 하나하나를 기억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청크, "고양이-매트-위치관계"를 기억한다. 청크가 효율적인 이유는 압축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압축을 풀려면 맥락이 필요한데, 그 맥락도 작업기억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맥락이 사라지면 청크는 그냥 의미 없는 덩어리로 남는다.

"어제 기사 2018년, 패턴인식의..." 이게 무슨 소린지 지금은 알겠는데, 내일 아침에 이걸 보면 알아볼 수 있을까?

5분 뒤, 커피를 마시며 메모를 다시 읽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첫 번째 아이디어가 돌아온 것이다. 정확히는, 내가 "구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마치 숨바꼭질하던 아이가 갑자기 "까꿍!" 하고 나타나듯 그 생각이 돌아왔다.

"아, 맞아, 그거!"

나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리고 메모하면서 깨달았다. 이게 원래 떠올랐던 것보다 덜하다는 것을. 지금 쓰고 있는 건 기본 골격일 뿐이고, 원래는 그 주변에 뭔가 더 있었다. 뉘앙스들, 구체적인 연결고리들, 그 생각을 특별하게 만들었던 무언가. 하지만 그게 뭐였는지는 이제 알 수 없다.

복구율 70%. 나쁘지 않다. 그런데 나머지 30%가 사실은 제일 중요한 부분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우리 뇌는 멀티태스킹이 안 된다. 빠르게 스위칭할 뿐이고, 매번 스위칭할 때마다 이전 작업의 내용이 조금씩 흐릿해진다. 주의 전환 비용(task switching cost)이라는 것이다. 휴대폰을 찾는 3초 동안, 내 작업기억은 이렇게 외쳤을 것이다: "지금 휴대폰 위치 파악 중! 손 움직임 제어 중! 화면 터치 좌표 계산 중! 아이디어? 미안, 그건 임시 캐시에 넣어뒀는데 용량 부족으로 삭제됨!"

운전 중에 문자를 확인하다 사고 날 뻔한 적 있지 않나. 아니면 요리하다가 전화받고 나서 불 끄는 거 까먹은 적. 그게 다 이거다. 우리는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 한다. 두 가지를 동시에 한다고 느낄 때도, 사실은 엄청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이고, 그 과정에서 정보가 새나간다. 물론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멀티태스킹을 요구한다. 회의하면서 메일 확인하고, 강의 들으면서 메모하고, 걸으면서 생각하고. 우리는 마치 여러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매 순간 뭔가를 잃어버리고 있다.

그리고 메모하려는 행위 자체가 주의를 전환시킨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과 메모하는 것은 다른 작업이다. 하나는 내면을 향하고, 하나는 외부를 향한다. 하나는 추상적이고, 하나는 물리적이다. 그 전환의 순간에, 아이디어는 미끄러진다.

모든 정보가 똑같이 취약한 건 아니다. 전화번호는 괜찮다. "010-1234-5678" 같은 건 구조가 명확하고, 반복할 수 있고, 각 덩어리가 독립적이다. 쇼핑 목록도 비교적 견고하다. "우유, 계란, 빵." 하나를 잊어도 나머지는 유지된다.

하지만 아이디어는 다르다. 특히 창의적이거나 통찰적인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연결이다. A와 B가 만나서 C가 되는 순간. 평소에는 분리되어 있던 두 영역이 갑자기 다리로 이어지는 그 섬광. 문제는 이 연결 자체가 약하다는 것이다. A도 기억하고, B도 기억하지만, 그 둘이 왜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는 잊어버리기 쉽다.


꿈에서 본 천재적 발상을 생각해 보자. 꿈속에서는 완벽하게 말이 됐다. 코끼리가 자전거를 타고 우주로 날아가는 게 중력의 본질을 설명한다는 게 너무나 명확했다. 근데 깨어나서 그걸 설명하려고 하면? 횡설수설. 왜냐하면 꿈속의 논리, 그 연결을 가능하게 했던 맥락이 깨어난 의식에는 없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도 비슷하다. 그것은 특정한 정신 상태, 특정한 맥락 안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그 맥락이 사라지면, 남는 건 단편들뿐이다. "어제 기사 + 2018 파리"가 대체 무슨 의미인지, 지금의 나는 알지만 내일의 나는 모를 수 있다.

더구나 아이디어는 언어화되기 전의 상태로 찾아올 때가 많다. 어떤 느낌, 어떤 방향성, "아, 이거다!" 싶은 감각만 있고, 그것을 정확한 단어로 옮기기 전에 증발한다. 언어는 생각을 고정시키는 못이다. 못을 박기 전의 생각은 그저 허공에 떠다닐 뿐이고, 바람이 불면—주의가 분산되면—날아가 버린다.


나는 메모장을 자주 연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메모한다. 아니, 하려고 한다. 실제로는 메모하려고 휴대폰을 꺼내는 순간 이미 반쯤 잊어버리고, 메모 앱을 열 때쯤이면 윤곽만 남고, 타이핑을 시작할 때쯤이면 "어... 뭐였더라?" 하고 있다.

가끔은 성공한다. 빠르게, 거의 반사적으로 메모하면, 생각이 온전히 옮겨간다. 하지만 그런 날은 드물다. 대부분은 파편만 남는다. "구조 재배치?" "패턴, 시간?" "그거 그 느낌?" 같은 암호문들. 나중에 보면 이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과거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수수께끼만 남기고 사라진다.

그래도 메모는 계속한다. 왜? 습관이라서? 미신처럼 믿어서? 아니면 메모하지 않으면 더 나쁠 거라는 막연한 확신?

어쩌면 이유는 다른 데 있을지도 모른다. 메모는 기록이 아니라 제스처일 수도 있다. "이 생각은 중요하다"라고 선언하는 행위. 실제로 저장되느냐 안 되느냐는 사실 부차적이고, 중요한 건 그 순간 내가 그 생각에 주의를 기울였다는 것. 메모는 생각을 보존하는 게 아니라, 생각과의 관계를 표시하는 것.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좌절스럽다. 까먹는 게 당연하다. 우리는 애초에 모든 걸 기억하도록 설계되지 않았다. 작업기억의 용량이 3개라는 건, 우리가 한 번에 세 개 이상은 떠올리지 말라는 뜻이다. 그 이상은 버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증발은 버그가 아니라 피처(feature)다. 정보 과잉의 시대에, 우리 뇌는 여전히 구석기시대 사양으로 돌아가고 있다. 모든 걸 저장하려고 하면 시스템이 다운된다. 그래서 자동으로 삭제한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그리고 사실 중요한 것들도 가차 없이 지워버린다.

그럼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는? 그건 어떻게 되는가?


그대로 잊힐 수도 있다. 하지만 돌아올지도 모른다. 심지어 이전보다 더 발전된 형태로.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말이다. 언제든 또 다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다. 떠올리고 기억하려 시도해도 좋지만, 잊어도 집착할 필요는 없다.


제목이 "어차피 메모하기 전에 까먹잖아"인 이유가 있다. 이건 체념이다. 하지만 동시에 해방이기도 하다.

메모를 더 잘하면 해결될 거라는 환상을 버리는 것. 더 빠른 앱, 더 나은 시스템, 음성인식, 자동 동기화, 그 무엇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문제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있으니까. 작업기억이라는 병목, 주의 전환이라는 비용, 언어화라는 장벽. 이건 우리가 인간인 한 피할 수 없다.

그렇다고 메모를 그만두는 건 아니다. 여전히 메모한다. 여전히 휴대폰을 꺼낸다. 여전히 타이핑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는 것을.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메모는 저항이다. 무의미할 수도 있는 저항. 까먹을 거 뻔히 알면서도 적는 행위. 이게 습관인지 고집인지 의례인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셋 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어쩌면, 기억하는 게 아니라 계속 떠올리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생각은 소유되는 게 아니라 계속 생성되는 것. 한 번 떠올렸다고 끝이 아니라, 계속 다시 만들어내야 하는 것. 증발은 그래서 끝이 아니라 과정의 일부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메모장을 연다. 어차피 까먹을 거 알면서도. 커서가 깜빡이고, 손가락이 움직이고, 단어들이 화면에 나타난다. 그리고 며칠 뒤 그 메모를 보면서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하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어차피 메모하기 전에 까먹잖아? 그래도 손은 움직인다.